contle_05_01.gif
총 게시물 465건, 최근 1 건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 - 제 4과 - 2018년 12월 23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1장 26 -38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8-12-16 (일) 14:35 조회 : 42

장년성경연구 교사 지침


2018년 12월 23일 주일 용  



제 4과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



학습구절: 누가복음 1장 26 -38절


성경진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야는 그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주요교리:  아들 하나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시다. 

그가 인간의 몸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찾아오셨을 때에,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고 처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태어나셨다 (눅 1: 31 -33).


암송구절:  누가복음 1장 33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And he will reign over Jacob’s descendants forever; his kingdom will never end.”   



시작하는 글:


많은 사람들이 성탄절을 축하하기 위해 집을 장식한다.

크리스마스 츄리는 물론이고 갖가지 장식품들과 빛을 발하는 전구들로 장식을 한다.

우리들 대부분은 자기가 좋아하는 장식들이 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을 나타내는 말구유나 특별한 인물이나 사건을 상기시키는 장식품들, 혹은 ‘nutcracker soldier’로 불리는 인형 병사들을 들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장식물들이 전시되거나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거나 혹은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어떤 특정한 전통에 참여하여야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낀다.


당신이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장식물이나 전통은 어떤 것들인가?

크리스마스가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어지도록 돕는 장식물이나 전통으로 어떤 것을 들 수 있는가



본문배경설명 


누가복음 1 -2장; 창세기 27: 29; 28: 14; 49: 8 -12


아담과 이브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의 정죄와 심판을 받았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의 후손인 인류가 죄를 이기고 승리 할 것을 약속 하셨다 (창 3: 15).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하나님은 그 약속을 좀더 자세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설명해 주셨다.

이삭이 야곱을 축복했을 때, 아버지 이삭은 열국이 야곱의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을 예언하였다 (창 27: 29).

벧엘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고 하셨다 (창 28: 14).

숨을 거두기 전, 야곱이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가 될 아들들을 위해 마지막 기도를 했을 때 (창 49: 28, 33), 그는 하나님의 복이 땅의 모든 족속에게 임하는 통로가 될 지파로 “유다”를 지목하였다 (49: 8 -12).

야곱은 유다에게,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라”고 하였다 (49: 8).

더욱이, “규(홀 혹은 임금의 지휘봉)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자손 만대에까지 이를 것이다)”라는 말로, 영원한 왕국이 축복의 수단 혹은 통로가 될 것을 예언하였다 (49: 10).

수세기가 지난 후에, 그 약속에는 새로운 특징들이 첨가되었다.

그 왕은 다윗 왕조에서 나올 것이다 (삼하 7: 11-16).

점점 더, 약속의 초점은 죄로부터의 구원에 맞추어 졌다.

그 약속의 일부 계시들은 자세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시 22: 1-31; 사 52: 13 -53: 12).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들을 무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원전 1 세기 말경에는 구세주가 오신다는 분명한 묘사를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기원전 1 세기가 끝날 무렵에,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의 정복을 받고 있었다.

그 영토는 로마 군대에 의해 점령되어 있었다.

그 통치자는 꼭두각시 왕으로, 야곱이 아닌 에서의 후손이었다.

그 인구는 지중해 연안 주변에 흩어져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메시야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세주를 보내주실 것을 계속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대중들의 견해와 종교적인 교리의 면에서 그 기대는 영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으로 변모되었다.

사람들은 약속된 메시야가 로마인들을 추방하고 예루살렘에서 다윗 왕조를 회복시켜 주기를 희망했다.

하나님은 실제로 그의 약속을 지키는 일을 행하였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은 당시 널리 퍼져있던 메시야에 대한 기대와 생각에 부응하는 것이 아니었다.

또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도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지키셨다.

메시야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마지막 단계는 한 천사가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던 한 늙은 제사장을 찾아왔을 때 시작되고 있다 (누가 1: 5-24).

6 개월이 지난 후, 그 천사는 약혼한 한 처녀에게 나타났다 (1: 26 ~ 38).

다시 3개월이 지난 후. 그 제사장의 늙은 아내는 메시야의 오심을 알리도록 택함을 받은 선지자가 될 아기를 낳았다 (1: 39 ~ 80).

그 다음 육 개월 후에, 그 정혼한 처녀와 남편은 호적 등록을 하라는 로마 황제의 칙령을 이행하기 위하여 베들레헴으로 갔다 (2: 1-7).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아들을 출산하였고, 새로 태어난 아기를 구유에 뉘었다.

하나님은 그의 약속을 지키셨다.



학습구절 연구 


놀라운 인사 (누가복음 1장 26 -29절)


1장 26 -27절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여섯째 달에”라는 말은  가브리엘 천사가 엘리사벳에게 나타난 후 육 개월이 지난 때를 가리키고 있다.

가브리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강한 자”라는 뜻이 되고 있다.

가브리엘 천사는 성경에서 네 번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데, 두 번은 다니엘에게 (단 8: 15 -27; 9: 20 -27), 한 번은 사가랴에게 (눅 1: 8 -20). 그리고 또 한번은 마리아에게 나타났다.

매번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중요한 메시지를 받아 전달하였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라는 말은 그가 마리아에게 전한 메시지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같이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천사 가브리엘은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렀다.

로마제국의 통치하에서, 약속의 땅은 수개의 지역으로 조직되어 있었다.

갈릴리”는 최 북단에 위치한 지역이었고, 서쪽으로는 갈릴리 바다를 에워 싸고 있었다.

유대지방 (예루살렘을 포함하여)은 남쪽 지역에 위치해 있었고, 사마리아는 갈릴리와 유대의 중간에 위치해 있었다.

일세기 당시의 “나사렛”은 갈릴리 지역의 작은 “동네”로, 이스르엘 골짜기의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그 동네는 이스르 골짜기를 가로지르는 주요 도로에서 멀리 떨어져있었다.

나사렛까지 온 여행자들은 그곳을 목적지로 삼았거나 아니면 길을 잃고 헤매다가 잘못 들어 온 사람들이었다.

당시의 그 마을에 대한 평판(評判)이 어떠했는지는 종종 예수님의 사역 초기 제자들 중의 하나가 던진 질문에서 잘 요약되고 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요 1: 46).

나사렛의 남쪽 가장자리에는 산등성이 있는데, 거기서 이스르엘 계곡을 내려다 볼 수 있다.

그 계곡에서는 많은 중요한 성경 사건들이 일어났다.

사사 드보라와 바락은 그 계곡에서 시스라의 군사들을 무찌르고 큰 승리를 거두었다 (사 4 -5장).

거기서 사사 기드온은 미디안 군대를 파멸시켰다 ( 사 8: 15 -23).

사울 왕은 계곡의 동쪽 가장자리에 서있는 길 보아 산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다 죽었다 (삼상 31: 1 ~ 8 참조).

선지자 엘리야는 계곡의 서쪽 끝 부분에 있는 갈멜 산에서 바알의 선지자들과 맞서서 싸웠다 (왕상 18: 16 ~ 39 참조).

1 세기 당시에 나사렛은 많은 사람들에게 하찮은 동네처럼 보였을 지라도, 하나님의 계획에서 그 동네는 인류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분인 메시야의 고향이 되었던 것이다.

가브리엘 천사의 메시지의 수신자는 “마리아”인데, 먼저 그녀는 먼저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로 소개되고 있다.  

여기서 “처녀”라는 설명은 결코 무시해 버릴 수 없는 매우 중요한 말이 되고 있다.

누가복음서의 저자인 누가는 아이의 임신과 출산에 대해 지식과 경험이 없는 순진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본래 직업이 의사였다.

그가 받은 훈련과 교육은 동정녀 출산에 대해 분명하게 반론을 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믿을 수 있는 기록은 그것이 사실임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예수님은 유일하게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누가가 두 번째 설명한 것은 그 처녀가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사이라는 점이다.   

당시에 “약혼” 혹은 “정혼”기간은 일반적으로 1 년 동안 지속되었다.

신랑과 신부의 아버지는 협상을 통해 신부가족이 딸을 주는 대가로 받을 지참금을 결정하여 신랑이 신부가족에게 주는 것으로 약혼은 성립되었고, 만일의 경우 혼사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신부가족은 신랑가족에게 지참금을 반환하였다. 

종종 약혼은 지참금을 주고 받는 것뿐 아니라, 약혼 예식이나 축하연으로 시작되었다.

당시에 약혼은 법적으로 결혼과 같았으며 불륜은 간통죄로 간주되었다.

약혼을 끊기 위해서는 이혼 증서가 필요하였다 (마 1: 19).

요셉은 직업이 목수였다 (마 13: 56).

요셉의 생애에 대해서는 성경에 기록된 것이 거의 없다.

그는 예수님의 법적인 아버지와 헌신적인 아버지가 되었다.

그는 독실한 유대인으로서, 아이의 출산과 관계된 모든 의식을 수행하는 책임을 다 하였다 (누가 2: 21 ~ 40).

당시의 관습을 따르면, 요셉은 예수님이 가업을 이어가도록 훈련을 시켰다 (마 13: 56, 막 6: 3).

예수님의 공 사역 중에 요셉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을 보면, 그는 예수님이 삼십 세에 이르기 전에 죽은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은 메시야가 다윗의 집에서 나올 것을 약속하셨다 (삼하 7: 11-16).

마리아와 요셉은 똑같이 다윗의 자손이었다.

요셉의 가계는 처녀가 낳은 아이가 다윗의 왕권을 합법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마리아의 가계는 그 아이가 다윗의 왕권에 대한 생물학적인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마리아”는 1 세기 유대인 여자들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름이었다.

누가는 다시 마리아를 “처녀”로 부름으로 마리아가 결혼하지 않은 사실을 강조하였다. 


1장 28 -29절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마리아를 찾아온 가브리엘 천사는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고 인사를 하였다.  

은혜를 받은 자”라는 말은 하님의 호의 혹은 은총을 받았다는 뜻이 되고 있다.

그런 다음 가브리엘 천사는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고 하였다.

그것은 가장 놀라운 약속과 함께 놀라운 인사가 되고 있다.

이사야 선지자가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 예언할 때,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하였다 (사 7: 14).

“임마누엘”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 되고 있다 (마 1: 23).

하나님의 가장 소중한 약속 중 하나는 그가 자신의 백성과 함께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마 28: 20, 히 13: 5).

예수님은 실제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약속의 말씀을 궁극적으로 성취하신 분이시자 그 증거가 되신다.

우리가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알면, 어떤 시련과 어려움이 닥칠지라도 우리는 마음에 확신과 평안을 가질 수 있다.

마리아는 가브리엘이 전해준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하고 도리어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놀라운 약속 (누가복음 1장 30 -33절)  


1장 30 -31절: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가브리엘 천사는 확신과 위안이 되는 말로 인사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마리아가 계속 불안해 하며 무서워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우리는 성경에서 사람들이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났을 때 두려워한 예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셨을 때 두려워하였다 (창 28: 17).

모세는 하나님이 불타는 떨기 나무 가운데서 자기에게 말씀하셨을 때 두려워하였다 (출 3: 6).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환상으로 거룩하신 만군의 여호와를 보고 두려움에 찼었다 (사 6: 5).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을 잠잠케 하셨을 때, 제자들은 심히 두려워하였다 (막 4: 39 -41).

따라서, 마리아의 두려움은 이례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는 격려의 말로 그녀를 진정 시키려고 하였다.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처음 만났을 때 그를 “은혜를 받은 자”로 부르면서 “평안할지어다”라고 인사를 했는데 (1: 28), 여기서는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느니라”는 말로 이를 강화시켰다.

여기서 “은혜”로 번역된 헬라어는 카리스로, 호의 혹은 친절의 뜻이 되고 있다.


예수님의 이름은 성육신의 목적을 드러내주고 있다.  


계속해서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라고 하였다.

그 말에서는 마리아가 낳을 아이의 인성(人性)이 강조되고 있다.

마리아가 임신한 아기는 정상적인 생물학적인 형태와 절차를 따라 성장할 것이다.

임신 자체를 제외하고는, 마리아의 임신과정에는 이례적인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예수님은 온전히 인간이었다.

그 안에서,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참된 중재자가 되기 위해, 예수님은 동시에 신과 인간이 되셔야 했다.

사가랴에게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낳게 될 아기의 이름을 요한으로 지으라고 지시했던 것처럼(1: 13),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아들의 이름을 “예수”로 지으라고 명령하였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을 아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예수"라는 이름은 "야훼 혹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또는 “여호와께서 구원하셨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천사를 통하여 마리아와 요셉에게 똑같이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지시하셨다.

특별히, 요셉에게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시기 때문에)” 그같이 지으라고 하셨다(마 1: 21).

예수님의 이름은 성육신의 목적을 드러내주고 있다.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이름인 여호수아의 헬라어 형태가 되고 있다.


1장 32 -33절: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가브리엘은 31절에서 마리아가 메시야에 대한 예언의 성취가 될 아들을 낳게 될 것을 선언했다.

이제 가브리엘은 말하기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 질 것”이라고 하였다.

지극히 높으신 이”라는 명칭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가장 오래된 이름 중 하나가 되었다.

그것은 족장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그 당시에, 이름은 그 이름을 지닌 당사자의 어떤 본질이나 특성을 드러내 주었다.

살렘 왕 멜기세덱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 (창 14: 18).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당시 문화권에서 사람들이 섬기고 있던 다른 모든 신들보다 높고 뛰어나신 것을 가리켰다.

마리아에게서 태어날 아기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태어날 아이에게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주실 것이라고 하였다.

사무엘 하 7장은 다윗이 어떻게 하나님을 위해 그의 집, 즉 성전을 지어드리고 싶어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대신에 다윗을 위해 견고하고 영원한 집, 즉 왕국을 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어느 날, 다윗의 후손이 성전을 지을 것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 왕국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세우실 것이라는 약속이 되고 있다 (삼하 7: 13-16).

선지자 이사야는, 예레미야와 마찬가지로(렘 23: 5 -6), 나중에 이 주제를 반복하였다 (사 9: 7).

하나님은 사무엘 하 7 장에서 하신 약속을 예수님 안에서 완성하시고 최종적으로 성취하셨다.

그러나 구세주를 보내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다윗 왕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범죄한 아담과 이브를 에덴 동산에서 추방하실 때조차도, 하나님은 어느 날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창 3: 15).

메시야에 대한 구약의 모든 예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다.

메시야가 탄생하신 날 밤에 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양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눅 2: 8 -14).

예수님이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고 한 말은 예수님이 약속된 메시야가 되심을 나타내고 있다.

예수님의 초기 사역의 대상은 유대인들이었다 (마 15: 21 -28; 요 1: 11).

동시에, 예수님은 종종 이방인들과도 관계를 가지시면서,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깊이 사랑하시고 계시다는 소망과 확신을 보여주셨다 (요 12: 20 21).

선교사역을 할 때, 사도 바울은 일반적으로 복음을, 일차적으로 유대인들에게, 그 다음에는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방법을 썼다 (롬 1: 16).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그는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을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적대의 벽을 깨뜨리시고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셨다고 기록하였다 (엡 2: 14 -16).

나라” 혹은 “왕국”이라는 말은 영토가 아니라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통치권을 가리키고 있다.

예수님이 청중들에게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하셨을 때 (마 4: 17), 그는 인류 역사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통치를 묘사하고 있었다.

가브리엘 천사는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고 하였다.


놀라운 설명 (누가복음 1장 34 -37절)


1장 34 -35절: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라라


마리아는 천사가 전해주는 메시지를 들었다.

그 것은 이해될 수 없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말이었다.

그래서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에게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라고 물었다.

그 녀의 생각에 천사가 말해준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아기들은 남녀의 성적 관계가 없이는 임신될 수가 없다.

마리아의 질문은 믿음이 없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에 대한 정직한 질문이었다.


가브리엘 천사는, 이 기적이 어떻게 일어날 것인지를 설명하는 대신에, 누가 그 일을 성취 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마리아가 결혼하지 않은 처녀가 어떻게 아이를 임신하여 출산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했을 때, 가브리엘 천사는 그 임신이 초자연적인 사건이 되고 있음을 밝혔다.

가브리엘 천사는 그 기적의 사건을 하나님의 능력과 목적을 나타내는 관점에서 설명하였다.

그는 마리아에게 말하기를,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 지리라”고 하였다.

첫째로, 성령님이 마리아에게 임하실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의 능력이 마리아를 덮으실 것이다.

“덮다”라는 말은 그림자처럼 덮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 말의 본뜻은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마리아에게 임하셔서 그의 능력으로 마리아로 하여금 생물학적 생식과 별개로 잉태하게 만드실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의 범위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으신 것을 기록한 성경의 첫 번째 장에 잘 명시되고 있다.

임신되는 과정에서의 하나님의 역할로 인하여, 그 태어날 아이는 하나님이 되실 것이다.


1장 36 -37절: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는 유다 지파의 자손이었고, 엘리사벳은 레위 지파에 속해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여인은 집 안의 혼인 관계로 인하여 서로 “친족”이 되었다.  

친족 관계였기 때문에, 마리아는 엘리사벳이 아이가 없었고 임신할 나이가 훨씬 지난 것을 알고 있었다.

가브리엘은 엘리자베스의 임신을 하나님께서 마리아에게 약속하신 것을 성취하실 수 있는 증거로 제시하였다.

2 천년 전에, 하나님의 천사들이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내 사라가 12 개월 이내에 출산 하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주었다 (창 18: 10).

그 말을 들은 사라는 어리석은 일이라는 생각에 웃었다.

당시 사라는 89세였고 아브라함은 99세였다.

그때 하나님은 천사들을 통하여 마리아에게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는 강조목적의 질문을 하셨다 (창 18: 14).

그 다음 해에 사라는 이삭을 낳았다.

엘리사벳의 임신은 사라의 경험을 되풀이 한 것이 되고 있다.

그러나 마리아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이 두 경우의 상황을 훨씬 초월하는 성격의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가브리엘 천사는 전에 하나님께서 강조 목적으로 사라에게 ‘여호와께서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고 물으셨던 질문에 대한 단호한 대답으로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말했던 것이다.

신자들은 예수님이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확신할 수 있다.


놀라운 결단과 헌신 (누가복음 1장 34 -37절)


1장 38절: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 지리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 가니라


주의 여종이오니”라는 마리아의 대답은 하나님의 목적에 자신을 전적으로 드리겠다는 놀라운 결단과 헌신을 보여주는 완벽한 본이 되고 있다.

그 말에서는 절대적인 복종이 강조되고 있다.

당시에 종이나 노예는 자신의 권리나 뜻을 전혀 주장할 수 없었다.

종이 존재하는 유일한 목적은 주인의 뜻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어린 십대의 소녀였던 마리아에게, 그 같은 결단과 헌신은 하나님에 대한 큰 믿음이 요구되는 일이었다.

그 같은 뜻은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 지리이다”는 마리아의 말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 순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약혼을 했을지라도 결혼하지 않은 처녀로서, 마리아는 임신한 것이 발견될 경우 그것은 창피와 심지어 죽음의 위험까지도 각오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그것은 또한 요셉과의 관계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 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자신의 일생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았을 때, 하나님께 온전히 그리고 전적으로 순종하였다.

하나님의 메시지에 대해 그 같은 응답을 얻은 후에, 가브리엘 천사는 떠났다.

성탄절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세상의 구세주로 이 땅에 보내신 것을 축하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삶을 헌신하는 신자들을 통해 주권적 목적을 계속 수행해 나가신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하나님께서는 주도적으로 구원의 길을 베풀어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확실하게 지키시며 완전하게 성취하신다.   

  신자들은 예수님이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진리에 순종하는 마음과 겸손한 태도로 응답해야 한다.


당신은 이번 성탄절에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당신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에 대해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를 표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