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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아니다 - 제 2과 - 2018년 12월 9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창세기 28장 10 -22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8-12-02 (일) 07:53 조회 : 40

장년성경연구 교사 지침


2018년 12월 9일 주일 용  



제 2과



혼자가 아니다



학습구절: 창세기 28장 10 -22절



성경진리:

 하나님은 그의 택함을 받는 자들에게 자신의 목적을 밝혀주시며, 그같이 하시는 중에 삶의 목적을 주신다.


주요교리:  하나님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시며, 그의 완전한 지식은 자유의지로 행하는 인간들의 결정을 포함하여,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것들에까지 미친다 (출 15: 11-17).


암송구절:  창세기 28장 15절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I am with you and will watch over you wherever you go, and I will bring you back to this land. I will not leave you until I have done what I have promised you.”  



시작하는 글:


고독이나 외로움은 지역이나 장소 이상의 것이 되고 있다.

우리는 정든 지역이나 잘 아는 장소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외로울 수 있다.

우리는 중요한 물건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아파트나 집에 살고 있으면서도 외로움이나 고독감에 쌓일 수 있다.

심지어 벽에 걸려있는 사진들조차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우리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방에 앉아 있거나 군중들로 붐비는 거리를 걸으면서도 고독감을 느낄 수 있다.

누구나 나 혼자만이라는 느낌을 떨쳐버리지 못할 때가 있다.  



본문배경설명 


창세기 27장 41절부터 28장 22절까지


진짜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가지고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나와서 “아버지여 일어나서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라고 하였다.

이삭은 “심히 크게 떨며” 묻기를, “그러면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고 하였다.

이어서 이삭은 에서에게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고 하였다.

그 축복은 변경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었다.

“소리 질러 슬피 울며,” 에서는 아버지에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라고 하였다 (27: 34).

그러나 이삭이 에서에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축복은 두려운 것이었다 (27: 38 -40).

그의 땅은 야곱의 것처럼 풍성한 결실을 맺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 열국과 가족을 다스리는 대신에, 그의 삶은 싸움과 굴종의 연속이 될 것이다.

에서는 분노로 가득 차서, 아버지 이삭이 죽을 때가 가까웠으므로 그 후에는 쌍둥이 동생을 죽이겠다고 맹세하였다 (27: 41).

그러나, 이삭은 여러 해를 더 살다가 “백팔십 세”에 죽었다 (35: 28).

격노한 맏아들이 위협한대로 행할 것을 두려워한 리브가는 재빨리 이중적인 계획을 고안해 내었다.

먼저, 리브가는 야곱을 불러 “형 에서가 너를 죽여 그 한을 풀려 하니” 하란에사는 자기  오라버니 라반에게로 피신하여 형의 노가 풀릴 때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주하라고 하였다 (27: 42 -43).

에서의 분노가 오래 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리브가는 야곱에게 형의 분노가 풀리면 사람을 보내어 그를 불러오리라고 약속하였다.

그러면서, 기브가는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고 하였다 (27: 45).

하란은 그들이 사는 브엘세바에서 약 오백 마일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다음으로리브가는 이삭에게 자기의 삶이 에서가 결혼한 이방 여인으로 인하여 행복하지 못하며 도리어 비참하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만일 야곱이 에서처럼 가나안 땅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면 더 불행해 질 것이라고 하였다 (27: 46 -28: 1).

리브가는 야곱이 가나안 땅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면 견딜 수 없다고 하면서, 자기 오라버니 집으로 야곱을 보내어 아내를 구하게 하자고 하였다 (27: 46 -28: 1).

이삭은 그 계획에 동의하여,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보냈다 (28: 2 -5).

리브가의 계획에 생긴 유일한 문제점은 짧은 기간에 끝날 줄 기대했던 야곱의 여정이 21년이나 걸린 것이었다 (33: 1-4).

리브가는 자기가 총애하는 아들을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 것을 알지 못했다 (49:31).

형을 피해 도망치던 야곱은 하란에 도착하기 전에 예기치 않았던 삶의 전환점을 겪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학습구절 연구 


삶의 목적을 계시해 주신 하나님 (창세기 28장 10 -15절)


28장 10 -11절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야곱은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갔는데, 브엘세바에서 하란까지의 가리는 대략 600마일이 되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인 데라는 그의 가족과 함께 하란에 정착했었다 (창 11: 31 -32).

그 장소는 양들을 기르는데 아주 적절한 곳이었고 양들은 가족의 주요 재산이 되었다.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 그리고 조카인 롯만이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였다.

나머지 친지들은 하란에 남아 있었다.

야곱 당시에 그들은 하란에서 경제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잘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하란은 야곱이 가나안 땅을 떠나 망명 생활을 하는데 유리한 점들이 있었다.

하란으로 가던 길에, 야곱은 한 곳에 머물러 쉬어서 가기로 하였다.

성경은 야곱의 여행 방식을 밝히지 않고 있는데, 짐승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을 보면 그가 걸어서 여행하고 있던 것이 분명하다.

“해가 진지라”는 말은 그가 처음 날이 밝은 때부터 어두워 진 후까지 여행하고 있었던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는 될 수 있는 한 속히 격노한 형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기를 원했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걸었을 것이 확실하다.

야곱은 지쳐있었고 잠잘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근처에는 “루스더”라는 작은 성이 있었다 (28: 19).

그러나, 될 수 있는 한 하란에 빨리 도착하는 것이 목표였으므로, 야곱은 지역 주민들과의 접촉을 피하였다.

다른 한편 가나안 땅을 벗어 날 때까지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했으므로, 그는 사람들을 멀리하였다.

그는 하룻밤을 지낼 수 있는 한적한 “한 곳”을 발견하였다. 

그는 적당한 크기의 돌을 가져다가 그것을 “베개”로 삼았다.   

그는 곧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28장 12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잠을 자던 야곱은 놀라운 꿈을 꾸기 시작하였다.

꿈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환상을 주시며 야곱에 대한 그의 계획을 계시해 주기 시작하였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몇 가지 사례를 기록하고 있다 (창 40 : 5-8, 단 2 : 1-3, 마 1 : 20-21, 2 : 12, 19, 22).

실제로, 하나님은 여러 시대를 통해 꿈과 환상과 다른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히브리서 기자는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히 1: 1 -2).

오늘날 하나님께서 그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기록된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건이나 사람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주신다고 믿을 때, 우리가 그 메시지를 성경말씀에 비추어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은 결코 성경말씀과 다르게 말씀하는 법이 없으시다.

사도 베드로는 자신이 변화 산에서 겪었던 일을 말하면서(마 17: 1 -5) , 기록된 성경말씀을 “더 확실한 예언”으로 불렀다 (벧전 1: 19).

                                                                                                                     

 “사닥다리”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층계”라는 말로도 번역될 수 있다.

그러므로,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고”라는 말은 “층계가 있고,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있고”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다 (표준 새 번역).

그 히브리 단어는 구약전체를 통해 여기서만 나타나고 있다.

그 형태가 사다리이든 층계이든 간에, 그것은 하나님이 계신 곳과 야곱이 자고 있던 곳을 연결시켜 주었다.

하나님의 사자들”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천사들이었다.

그 사자들은 하늘과 땅 사이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활동하였다.

그 자신의 행동으로 생긴 상황은 야곱이 이전에 알고 있었고 누렸던 모든 것에서 그를 분리시킨 결과가 되었다.

막대한 재산의 상속자인 그는 이제 자신이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이 아주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의 머리는 베개와는 정 반대의 것인 돌 위에서 쉬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낯선 땅인 외국나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유일한 희망은 결코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계셨고 자신을 그에게 계시해 주셨다.


28장 13절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하나님의 사자들이 사다리 위에서 천국과 땅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하는 형상자체만도 놀라움을 금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그 환상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뚜렷하고도 분명하게 깨닫게 해 주는 것이 추가되었다.

하나님은 직접 야곱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첫 계시는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그는 “나는 여호와니”라는 말씀으로 자신을 “여호와”로 밝히셨다.

여호와” 혹은 “야웨”라는 명칭은 이스라엘 자손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하나님의 언약의 이름이 되고 있다.

여호와라는 이름이 하나님의 주된 호칭으로 아직 사용되고 있진 않았을지라도 (출 6: 3), 그 호칭은 인격적인 언약관계를 맺으시려는 하나님의 갈망을 강조해 주고 있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자신을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과 “이삭의 하나님”으로 특징지었다.

시간이 흘러가자, 야곱의 이름이 덧붙여져서 하나님은 삼 겹으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그리고 야곱의 하나님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출 3: 6, 15 -16).

아브라함의 이름 앞에다 “너의 조부”라는 말이 삽입된 것은 야곱에게 아브라함은 육체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똑같이 조상이 되고 있음을 상기시켜주며 강조해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오신 일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함께 계시기 위하여 메시야로 세상에 찾아오신 것을 가리키고 있다.  

메시야에 대한 구약의 예언 (사 7: 14)과 신약의 성취(마 1: 23)는 똑같이 그리스도께서 새롭고 독특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이 땅에 나타내신 것을 강조해주고 있다.

사도 요한은 그것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표현하였다 (요 1: 14).

그 다음으로, 하나님은 “네가 누워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는 말씀으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하셨던 약속을 다시 하셨다.

먼저,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약속을 상기하셨다 (창 13: 14 -15; 26: 2 -3).

네가 누워있는 땅”이란 말은 야곱의 쉬는 장소보다 훨씬 더 넓은, 포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말은 가나안 땅 전체를 가리켰다.

하나님은 그 땅을 야곱의 자손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28장 14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전에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하신 약속을 되풀이하고 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늙을 때까지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 (창 17: 17).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라가 임신을 할 수 있게 해주시고 사라는 이삭을 낳았다 (창 21: 2).

이삭과 리브가는 결혼하고 20년이 지나서야 쌍둥이 아들인 에서와 야곱이 태어났다(창 25: 20, 26).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 족장들에게 계속해서 약속 하시기를, 그들의 자손이 셀 수 없이 많아지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창 22: 17; 26: 4).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야곱의 자손들이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 (것)”을 약속하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실 때에는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에다 비유하여 그들의 자손이 많아지게 하리라고 하셨는데, 야곱에게는 “땅의 티끌”에다 비유하셨다.

하나님은 또한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고 약속하셨다.

그 것은 메시야를 가리키는 말이 되고 있다.

야곱의 후손 중에서 약속된 자가 나오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하신 이 부분의 약속은 그가 아브라함(창 12: 3)과 이삭 (창 26: 4)에개 하신 이전의 약속이 반복된 것이다.

궁극적으로 “땅의 모든 족속”에 대한 이 언약의 축복은 야곱의 궁극적 인 후손인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 될 것이었다.

사도 바울도 갈라디아서 3장 8절에서 그같이 중요한 결론을 표현하였다.


28장 15절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니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라는 하나님의 간단한 말씀은 도망가는 야곱에게 강력한 약속의 말이었다.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해 주시며 그가 “어디로 가든지” 그를 지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였다.

모든 것을 버리고 가족을 떠나 미지의 땅으로 가고 있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며 지켜주시겠다는 약속보다 더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어디”라는 말에는 지역을 가리키는 것 이상의 뜻이 담겨 있을 수도 있다.

그 말은 야곱이 직면하게 될 상황을 가리킬 수도 있다.  

야곱은 앞으로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혹은 어떤 일을 겪게 될지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하나님께서 항상 자기와 함께해 주시며 자기를 지켜주실 것을 알았다.

그런 다음, 하나님은 그 같은 확약의 말씀에다 야곱을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첨가시키셨다.

야곱은 하란으로 도망가면서 그가 고향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혹은 가족을 다시 볼 수 있을지 크게 궁금해했을 것으로 보인다.

여호와는 이제 야곱에게 그가 고향으로 돌아오게 될 것을 확신시켜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약속의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더 나아가서,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르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말은 야곱의 삶에 어떤 어렵고 힘든 일이 혹은 장애물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를 위한 계획을 성취하실 것을 그에게 확신시켜 주는 것이 되고 있다.

하나님은 야곱이 하란으로 갈 때 그를 지켜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또한 그의 섭리로 하란에서 야곱을 지켜주시고 번영케 해 주실 것이다.

마침내 하나님은 야곱이 하란으로부터 언약의 땅으로 돌아오게 해 주실 것이다.

 신자들은 마찬가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결코 그들을 버리지 않으실 것이며 그의 목적들을 그들 안에서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성취 하실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그의 약속을 지키는 하나님이심을 확신시켜 주고 있다(수 21: 43-45; 고린도후서 1: 20).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빌 1: 6).


하나님의 임재를 깨달은 야곱 (창세기 28장 16 -19절)  


28장 16절: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잠에서 깨어난 야곱은 꿈을 통해 경험한 놀라운 일을 곰곰이 생각하였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라는 그의 고백은 하나의 정직하고도 변화된 관점을 나타내고 있다.

전날 저녁, 야곱이 하루 밤을 지내기 위해 머문 그 곳은 특별하거나 유별난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 곳으로, 도망자인 야곱이 여정을 계속하기 전에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몇 시간의 잠을 청하기에 아주 적당한 장소였다.  

그는 그 곳이 거룩한 장소가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야곱은 아무도 없는 외로운 들판으로 생각하고 잠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곳이 특별했던 것은 하나님이 그 곳에 계셨고 야곱이 그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더욱이,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라고 한 야곱의 고백은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지 않고 있을 때에도 하나님이 임재해 계심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준다.


28장 17절: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깨닫게 되자, 야곱은 경외감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는 깊은 경외감으로 두려움에 사로 잡혔던 것이다.

두렵도다 이 곳이여”라는 말은 “이 곳이 얼마나 경외감을 갖게 하는 곳인가!”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때 경외감을 갖게 된다.

야곱은 상징적으로 그 곳을 “하나님의 집”과 “하늘의 문”으로 표현하였다.

바꾸어 말하면, 야곱에게 그곳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자 그의 처소의 출입구가 되었다.

“벧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의 말이다.

그 곳은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 삶의 변화를 얻게 해 준 장소가 되었으므로, 야곱에게 귀중하고 특별한 곳이 되었다.


28장 18 - 19절: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야곱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전에 돌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었다.

이제 야곱은 “베개로 삼았던 돌”을 세워서 표적으로 삼았다.

그것은 야곱의 영적 순례 여행에서 그가 세운 첫 번째 돌이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야곱은 가나안으로 돌아올 때 바로 이 장소에다 돌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고 불렀다 (창 35: 7).

수 세기 후에는, 그의 자손들이 애굽의 노예생활로부터 가나안으로 돌아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요단 강 강바닥에서 가져온 12 개의 돌을 길갈에 세웠다 (수 4: 20-24).

심지어 나중에, 사무엘은 이스라엘이 블레셋을 쳐서 승리하도록 하나님이 도와주신 것을 기념하기 위해 “미스바”에다 돌을 세우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불렀다 (삼하 7: 12).

그 말은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뜻이다.   

성경에서 개인에게 기름을 부어주는 일은 종종 종교 의식의 일부였다.

왕들과 제사장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직분에 임명하신 것을 나타내는 증거로 기름부음을 받았다.

기름 부음을 받는 것은 그 사람이 맡겨진 직분을 잘 수행하도록 하나님의 능력이 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을 나타내 주었다.

야곱은 구약 성경에서 유일하게 돌기둥에다 기름을 부은 사람이다.

그는 두 번이나 그같이 하였는데, 이곳과 창세기 35장 14절에서 하였다.

처음 것은 그가 가나안을 떠날 때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신 것을 기념하였다 (28: 17 -19).

나중 것은 가나안으로 돌아 올 때 한 것이다.

신자들은 그들의 삶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들을 기쁜 마음과 감사한 마음으로 기념할 수 있다.

벧엘”이라는 이름은 17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집”을 뜻하는 히브리어를 줄여서 쓴 합성어이다.

야고보는 그 이름을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그 곳에서 계시해 주신 것을 기념하였다.

루스더”는 가나안 성의 옛 이름이었다.

그 같은 이름의 변경은 그 지역이 우상 숭배를 하는 가나안 사람들로부터 여호와를 경배하는 야곱의 후손들에게로 바뀌는 것을 예고해주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 속에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축하하거나 기념 할 수 있는 방법들로 어떤 것을 들 수 있는가?  


하나님께 서원한 야곱 (창세기 28장 20 -22절)


28장 20-22절: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 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야곱은 서원을 한 유일한 족장이 되고있다.

먹을 떡과 입을 옷”이라는 말은 생필품들을 대표하고 있다.

야곱은 부유 한 가정의 출신이고, 아버지의 축복을 받고 떠났지만, 떠날 때의 그의 형편과 사정은 당장 꼭 필요한 것들만 챙겨야 하고 가진 것이 없는 빈 몸이었다. 

당시는 돈이 발명되지 않은 때였고, 금이나 은은 무게로 달아 특별한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당시의 재산은 가축들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형의 낯을 피하여 도망가는 야곱에게 그것들은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따라서 야곱의 서원은 그의 생존을 위해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신뢰한다는 표현이었다.

야곱이 꿈에서 본 환상과 그 후에 한 서원은 그의 믿음의 영적 순례의 정점(頂點)이 아니라, 시작을 나타냈다.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해 주시고 지켜 주셔서 그의 필요물들을 공급해 주실뿐 아니라, 그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게 해 주시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하나님만을 믿고 섬기겠다는 믿음의 고백이 되고 있다.

그것은 또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겠다는 믿음의 고백이 되고 있다.

속이는 자로 알려졌던 야곱에게 그것은 놀라운 삶의 변화이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하신 약속을 꼭 이루어 주실 것을 확실히 믿고 세 가지의 약속을 하였다.

1)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그것은 어떤 거래조건의 면보다 고백의 뜻이 더 강하게 나타나는 말이 되고 있다.

2)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야곱은 벧엘로 다시 돌아와 제단을 쌓고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할 것이다.

3)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지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그것은 미래의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의 행동이자,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감사의 응답이 되고 있다.


십일조 드리기: 개 요


  •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왕들과 싸워 승리한 후 탈취물의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다 (창 14: 20).
  • 야곱은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믿음과 헌신의 자발적인 표현으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약하였다 (창 28: 22).
  • 모세의 율법은 땅의 소산물의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성물로 규정하였다 (레 27: 30).
  • 백성들이 드린 십일조는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의 생활을 지원하는 수단과 방법이 되었다 (민 18: 21, 24).
  •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일이 되었다; 하나님은 십일조를 드리는 그의 백성에게 축복을 약속하셨다.
  • 예수님은, 율법의 더 중요한 요구 사항인 정의와 긍휼과 믿음에 관심이 없이,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무의미한 종교의식에 불과하다고 경고하셨다 (마 23: 23; 눅 11: 42).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해 주시며 그들을 위한 그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그들을 인도해 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확신을 가질 수 있다.

●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 속에서 행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기억하고 기쁜 마음과 감사한 마음으로 기념 할 수 있다.

●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응답으로 믿음의 단계를 취해야 한다.


당신의 삶 속에서 일어난 영적으로 중요한 일들을,그들이 일어난 때를 포함하여, 열거해 보라.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삶 속에서 일하시며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