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le_05_01.gif
총 게시물 461건, 최근 1 건

속이는 자 - 제 1과 - 2018년 12월 2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창세기 27장 18 -29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8-11-26 (월) 12:43 조회 : 39

장년성경연구 교사 지침

2018년 12월 2일 주일 용  


제 1과



속이는 자



학습구절: 창세기 27장 18 -29절


성경진리:

하나님은 그의 언약의 백성들의 범죄행위에도 불구하고 그의 목적을 성취 하신다.     


주요교리:  가정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영적 및 도덕적 가치를 가르쳐주며, 일관된 삶의 모본과 사랑의 훈련을 통해, 그들이 성경적 진리에 기초하여 바른 선택을 하도록 인도해야 한다. (신 6: 4 - 9).


암송구절:  창세기 25장 23절

여호와께서 그(리브가)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The LORD said to her, “Two nations are in your womb, and two peoples from within you will be separated; one people will be stronger than the other, and the older will serve the younger.”



시작하는 글:


훼이스 북(facebook)이나 트위터 (twitter) 등의 소셜미디어에 보니 무료휴양지를 약속해주는 게시물이 있고 그것은 친구에게서 온 것으로 되어있다.

무료라는 말에 마음이 끌리기도 했지만 친구가 보낸 소개문이라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영상을 클릭하여 열어보았다.

그러나 실제로 그 내용을 읽어보니, 그것은 소셜미디어를 이용하여 항공사와 호텔 등을 광고하는 홍보물이다.

무료휴양지를 이용하려면, 가외의 경비도 지불해야 되었다.

또 다른 혜택을 받으려면, 다른 친구들에게 이 포스트를 전해야 하는 규정도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좋아 보이는데, 실제로는 여러 가지 속임수가 들어 있다. 



본문배경설명 


창세기 25장 19절부터 27장 40절까지       

우리는 1915년 9월 10월 11월 학기에는 창세기를 다 공부하지 못하고 절반만 공부하고 중단했었다.

이번 학기에는 창세기 2부로 나머지 부분을 공부하여, 12월부터 내년 2월까지 3개월 동안에 나머지 부분을 마치게 된다.

아브라함은 이삭과 이스마엘 두 아들을 남겨두고 175세에 기력이 다하여 죽었다 (창 25: 7 -9).

두 아들은 아버지를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다.

이스마엘은 언약의 아들이 아니었기 때문에(17: 18 -19), 이삭이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포함하여 (12: 1 -3; 26: 3 -5),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 (25: 11).

이삭은 비교적 늦게 결혼을 한데다가, 그의 아내 리브가는 오랫동안 임신하지 못하였다.  

결혼 후 20년이 지났을 때에야(25: 20, 25), 여호와께서 자식을 위한 이삭의 간구를 들어주셔서 아내 리브가가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쌍둥이 아들이었다 (25: 21 -.

특별한 방법으로, 하나님은 리브가에게 “큰 자”인 에서가 “어린 자”인 야곱을 섬기게 될 것을 알려주셨다 (25: 23).

“야곱”이란 이름은 ‘발꿈치를 잡다’ 혹은 ‘속이다’나 ‘대신하다’는 뜻이 되고 있다.         

두 소년은 자라나면서, 그들 사이의 극적인 차이가 분명해졌다.  

에서는 들 사람과 사냥꾼으로서의 기술을 연마하였다.

야곱은, 그와는 뚜렷한 대조를 이루어, 장막생활을 선호하였다.

그러므로, 아버지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였으므로 동생 야곱보다 형 에서를 더 사랑하였다.

다른 한편, 리브가는 야곱을 더 사랑하였다.

동시에, 두 아들의 성격에 결함도 나타났다.

에서는 자신의 “장자의 명분”을 한 그릇의 죽과 바꾸었다 (25: 27 -34).

야곱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가족 구성원의 약점들을 이용하려고 하였다.

 26장이 시작될 때, 하나님은 이삭을 아브라함과의 언약의 상속자로 재확인하셨다 (1 ~ 6 절).

이삭은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아버지의 최악의 행동을 복사하였다 (7-11).

리브가에 대한 거짓주장의 문제는 싸움이 없이 해결되었지만, 그는 곧 우물들에 대한 권리의 문제로 인해 지역 이웃들과 싸움에 휘말리게 되었다 (12-22 절).

하나님께서 이삭과 함께 해 주시며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으로 인해 이삭과 이웃 주민들 사이에 평화 계약이 맺어지게 되었다 (23 ~ 35 절).

27장은 야곱이 아버지의 축복을 훔치는 일을 기록하고 있다.

야곱은 이전에 형 에서로부터 장자의 명분을 받기는 했지만, 그것은 두 사람 사이의 약속이었지, 권리들과 소유물들을 원하는 대로 나누어주는 특권은 여전히 아버지인 이삭에게 속해 있었다.



학습구절 연구 


속이는 아들 (창세기 27장 18 -23절)


27장 18 -20절

야곱이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내 아버지여 하고 부르니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야곱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원하건대 일어나 앉아서 내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이삭이 그의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그가 이르되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조롭게 만나게 하였음이니이다


아버지가 에서를 축복할 경우, 자기가 에서에게서 얻은 장자의 명분이 무효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야고보는 어머니의 지시대로 따랐다.

형 에서로 위장한 야곱은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예의를 갖추어 “내 아버지여”라고 불렀다. 

이삭의 정확한 건강 상태는 불확실한 일이 되고 있다.

비록 수년을 더 살았을지라도, 당시에 그는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는 것)”으로 믿었다 (27: 2).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나이와 밝혀지지 않고 있는 어떤 병은 그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었다.

특별히 그는 시력장애가 극심하였고 그의 몸은 많이 쇠약하였다.

내가 여기 있노라”라는 그의 처음 말은 주변을 보지 못하는 사람의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보인다.

야곱은 아버지의 질문에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는 말로 계략적이고도 속임수의 대답을 하였다.

그런 다음 야곱은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원하건대 일어나 앉아서 내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라고 하였다.

그 말은 실제로 아버지 이삭이 야곱에게 한 말이 아니라, 형 에서에게 한 말인데, 야곱은 아버지에게 자기가 에서라는 거짓말을 확신시킬 목적으로 되풀이 한 것이다.

실제로, 아버지 이삭이 지시한 아들은 에서이지 야곱이 아니었다.

그리고 야곱은 아버지 이삭이 에서에게 명한대로 행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만든 음식은 사냥한 고기가 아니라, 어머니 리브가가 집의 염소를 잡아 만든 것이었다.

그러므로, 야곱이 아버지 앞에 가지고 나간 음식은 짧은 시간에 준비되었다.

이삭은 에서가 사냥을 하여 음식을 준비하려면, 시간이 더 오래 걸려야 될 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삭은 야곱에게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고 물었다.

야곱은 하나님의 이름을 들어 자신의 거짓을 정당화하려고 하였다.
그는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조롭게 만나게 하였음이니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야곱이 하나님을 거짓된 일에 연관시킨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었다.

적어도, 야곱은 하나님을 “아버지의 하나님”으로 부름으로 자신을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하려고 하였다.

“아버지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여호와를 야곱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삭의 하나님을 가리키는 명칭이 되고 있다.


27장 21 -23절

이삭이 야곱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내가 너를 만져보려 하노라

야곱이 그 아버지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만지며 이르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

그의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분별하지 못하고 축복하였더라


이삭은 아들의 정체와 정직성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은 것이 분명하다.  

목소리는 그가 에서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음성과 상황은 그가 다른 사람인 것을 나타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들에게 “가까이 오라”고 함으로서, 이삭은 에서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좀더 잘 조사하려고 하였다.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내가 너를 만져보려 하노라”는 이삭의 말에서는 그의 혼란과 불확실성의 정도가 얼마나 컸던 지를 나타내 주고 있다.

어쩌면 그는 속임을 당하고 있지 않나 불안해 했을 수도 있다.   

실명으로 인해 시각적인 식별이 불가능하였지만, 그가 들은 청각은 목소리의 주인공이 에서가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었다.

혼란과 혼동에 빠진 이삭은 아들의 정체성을 촉각으로 확인하는 방법을 택하였던 것이다.

이삭은 야곱은 몸이 매끈매끈하고, 에서는 몸에 털이 많이 나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27장 11절부터 17절을 보면, 어머니 리브가가 이삭을 속이기 위해 그 문제를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어머니 리브가는 염소 새끼의 가죽을 야곱의 매끈매끈한 손과 팔 그리고 목 부분에다 입혀서 털이 난 것처럼 만들었다.

야곱이 아버지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아들을 만지면서 말하였다.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이삭은 야곱의 두 손이 에서의 손처럼 털이 나 있으므로 그가 야곱인 줄 모르고 그에게 축복해 주기로 하였다.

구약성경 당시에, 아버지의 축복은 애정과 기원의 표현 이상의 것이었다.

족장 혹은 가장으로서의 아버지의 축복은 그 자손이 뛰어나고 풍성해 지기를 바라는 기원과 함께 가계를 후손에게 물려주는 공식적이고도 법적 구속력이 있는 성격의 것이었다.

이삭의 축복은 또한 축복을 받는 자와 그의 자손들이 하나님께서 본래 아브라함과 맺으시고 (12: 1 -3) 이삭에게까지 미치게 된 (26: 1-5) 언약의 상속자가 되는 것을 의미하였다.

장자가 아버지로부터 받는 축복은 그 같은 영적인 것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것과 사회적인 면에서도 엄청난 것이었다.

야곱은 장자의 축복을 받는데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리브가가 쌍둥이 에서와 야곱을 임신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그들 쌍둥이가 마침내 두 민족을 이루게 되고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신 것이다 (25: 23).

그것은 리브가로 하여금 야곱에 대한 편애를 키워주고 야곱으로 하여금 장자 명분에 대한 더 큰 관심과 욕심을 갖게 한 요인이 되었을 수 있다.

문제는 리브가와 야곱이 하나님께서 그 계획을 그의 때에 따라 이루어 주시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장자의 축복을 훔치려고 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야곱은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속은 아버지 (창세기 27장 24 -27절)  


27장 24절: 

이삭이 이르되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 그가 대답하되 그러하나이다


이삭은 아들의 진짜 정체성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을 품고 있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노쇠한 아버지는 한 번 더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고 물었다.

다시 한 번 야곱은 “그러하니이다”라는 말로 아버지에게 거짓 말을 하였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이 구절은 가족의 실패라는 강한 징후를 나타내주고 있다.

하나님은 자녀들이, 나이에 상관없이, 부모를 공경하기를 기대하신다 (엡 6: 1 -2).

야곱의 행동에서 어떤 것도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동시에, 부모들은 부당하게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아야 한다.

대신에 부모들은 자녀들을 경건하게 훈련시키며 양육해야 한다 (엡 6: 3).

이삭과 리브가가 보여주는 편애(偏愛)는 경건 대신에 이기심을 키워준다.

편애는 또한 그들의 아들들의 사이뿐만 아니라, 아내와 남편 사이에도 경쟁심리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그 같은 경쟁은 남편과 아내가 한 몸이 되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명령을 정반대로 만드는 일이 되고 있다 (창 2: 24).

신자로서, 결혼생활은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산 증거가 되어야 한다 (엡 5: 22 -32).

그 같은 일은 경쟁관계 속에서는 불가능하다.


27장 25절

이삭이 이르되 내게로 가져오라 내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먹고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리라 야고보가 그에게로 가져가매 그가 먹고 또 포도주를 가져가매 그가 마시고


이삭은 야곱에게 음식을 “가져오라”고 하며, 음식을 먹을 마음의 준비가 되었음을 나타냈다.

그는 음식을 “내 아들이 사냥한 고기”로 부르며, 그것을 먹고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리라”고 하였다.

계속 속임수를 써서, 야곱은 음식을 아버지에게 가져왔고, 아버지는 그것을 먹었다.

그 음식도 속임 수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 음식은 “사냥한 고기”로 만든 것이 아니라, 어머니 리브가가 집에서 기르는 염소 떼에서 “좋은 염소 새끼 두 마리”를 골라다가 만든 것이었다 (27: 9).

본문은 에서가 음식을 먹는 동안 두 사람이 어떤 말을 했는지를 밝히지 않고 있다.

야곱은 잠잠히 기다리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야곱은 말을 계속함으로 자기의 정체가 밝혀지게 되거나 시간을 끌어 에서가 돌아올 경우 일이 낭패가 될 것을 두려워했음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야곱은 또한 포도주를 가져다가 아버지에 드렸다.

축복의 시간이 거의 가까워 왔다.   


27장 26-27절):


그의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와서 내게 입맞추라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버지가 그의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이삭은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마지막 요청을 하였다.

그는 아들에게 “내 아들아 가까이 와서 내게 입맞추라”고 하였다.

당시의 문화권에서 사람들은 만나거나 헤어질 때 양쪽 뺨에 입맞추는 것으로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또한 가까운 친지들은 애정의 표시로 입을 맞추기도 하였다.

오늘 날에도 비슷한 형태의 인사를 하는 문화권들이 있다.

이삭은 부모의 애정의 표시로 아들에게 입맞춤을 요구했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그 요구는 이삭이 축복을 정식으로 선언하기 전에 아들의 정체성을 좀 더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또 다른 방법이 되었을 수도 있다.

어떤 경우가 되었건, 아버지 이삭에게 한 야곱의 거짓 입맞춤은 그리스도인 독자들에게 가롯 유다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 했던 악명 높은 배신의 입맞춤을 연상케 하는 일이 되고 있다 (마 26: 48-49 참조).

야곱은 아버지의 요구에 그대로 응하였다.

야곱은 아버지에게 가까이 가서 입을 맞추었다.

이삭은 그의 큰 아들의 특유한 냄새를 알고 있었다.

이삭은 그 냄새를 가리켜,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고 하였다.

사냥꾼으로서, 에서는 들판과 산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오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의 옷에는 그 특별한 냄새가 가득 차게 되었다.

이삭이 야곱을 포옹했을 때, 에서의 옷을 입고 있던 야곱에게서는, 결과적으로, 에서의 냄새가 났고, 이삭은 에서가 그 앞에 서 있다고 확신한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본 단원의 중심구절인 24절부터 27절까지는 속아넘어간 아버지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속임 수는, 어떤 형태로든, 하나님의 품성과 뜻에 위배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기에게 잘못된 일을 행할 때 상처를 받는다는 것에 동의 한다.

잘못 행하는 자가 자기가 알고, 신뢰하고, 사랑하는 사람 일 경우에 특히 더 큰 상처를  받는다.

야곱은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아버지와 형을 속이려고 하고 있었다.


도난 당한 축복 (창세기 27장 28 -29절)


27장 28절: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23절에서 시작한 것을 마치면서, 이삭은 에서가 아니라, 야곱을 축복하였다.

28 절은 추수 때에 준비해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주제로서, 그 자체가 주목할 만한 것이다.

족장들은 농부가 아니었다.

그들은 유목민이었다.

이삭이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을 때, “네게””라는 인칭대명사는 단수이다.

그러나,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했을 때, 그의 대상은 그의 아들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것이었다.

야곱은 그의 후손들이 성취하게 될 미래의 세대를 대표하였다.

이삭은 큰 부자였다.

그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은 한때 자기 경비로 잘 훈련된 군사를 거느리기 까지 하였다 (창 14 : 14).

이삭은 그 부와 명성을 물려 받았던 것이다.

그 지역의 도시국가 형태의 왕들은 이삭을 그들의 동료로 인정해 주었다 (26: 28 -29).

그러나 이삭에게 가장 값진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해 주신 것들에 대한 상속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 약속들의 한 가지는 그의 자손들이 가나안 땅의 소유권을 얻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삭은 하나님께 그 땅이 기름지게 그리고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해 달라고 간구하였다.

두 가지 자원이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하는데 필요한 구성요소가 되었는데, 그것들은 신뢰할 수 있는 비와 기름진 토양이 되었다.

가나안 땅에서는 매년 약 25 인치의 비가 내리고 있다.

그 강수량은 매년 몇 달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이슬은 일년 내내 수분 공급원이 되었다.

하늘과 땅을 짝 지우는 것은 자연의 충만함을 나타내었다.

곡식”은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주된 식품인 빵을 만드는 재료였다.

”(새) 포도주”는 처음 익은 포도 주스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작물의 첫 번째 열매를 따는 것은 일반적으로 성공적인 수확을 예고해주는 일이 되고 있다.

실제로, 이삭은 장차 생기게 될 나라와 백성들의 생활 필수품들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인간의 행동에 의해 좌절 될 수 없다.


27장 29절: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이삭은 야곱에 대한 축복을 계속하였다.

그는 아들이 성공적인 토지 소유자가 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아들이 “만민”과 “열국”과 “형제”들을 다스리는 자가 되기를 원하였다.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라는 말은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이해되어야 한다.

리브가의 아들들은 단지 에서와 야곱뿐이었다.

그러므로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라는 말은 에서의 후손들을 가리키고 있다.

에돔 족속은 에서의 후손들이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은 대부분의 기간 동안 에돔을 지배하였다.

이 구절의 후반부인,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라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본래의 약속의 말씀이 인용된 것이다 (창 12: 3).

그 말씀이 여기서 인용된 것은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바르게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은 이 약속이 사라의 아들을 통해 성취될 것을 확실하게 밝혀주셨다.

이삭은 리브가의 유일한 아들이었고, 그러므로 그 약속의 상속인이었다.

하나님은 직접 이삭이 그 언약의 상속인임을 재확인해 주셨다 (26: 4).

마찬가지로, 리브가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에는 야곱도 그 언약의 상속자가 되고 있음이 암시되고 있다. 

우리는 이 과의 학습구절들을 공부하면서 몇 가지 영적 교훈을 배울 수 있다.

야곱의 개탄스러운 행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셨다.

하나님의 목적은 인간의 행동에 의해 좌절 될 수 없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의 지혜와 신실하심에 기초한 것으로, 불변하며, 인간의 그릇된 행위에 좌우되지 않는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그의 계획을 그의 시간과 방법에 따라 성취하시기를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거짓된 방법과 계획으로 이루려고 했을 때, 값 비싼 대가를 치렀다.

야곱이 하나님보다 앞서가려고 했을 때에 어떤 결과들이 생겼는가?

첫째로, 그의 형인 에서는 몹시 분노했고 동생을 죽이려고 결심까지 했다 (27: 41).

둘째로, 그는 목숨을 위해 피신하는 신세가 되었다 (27: 43).

셋째로, 그는 외삼촌인 라반에게 속아 아내 라헬을 위해 십사 년을 섬겼다 (29: 30).

넷째로, 그의 형인 에서는 적대국의 창립자가 되었고, 후손들은 계속 반목관계를 이루었다 (32: 3; 삼상 14: 47 -48).

다섯째로, 야곱은 어머니를 다시 보지 못하였다 (49: 31).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신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정직하고도 투명성 있게 대해야 한다.

  신자들은 편애하는 것이 속임수로 이어지는 것을 깨닫고 편애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은 죄인들의 이기적인 행위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권적인 목적을 성취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