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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하며 기다리는 믿음 - 제 13과 - 2018년 11월 25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야고보서 5장 7 -9, 13 -20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8-11-19 (월) 13:47 조회 : 49

장년성경연구 교사 지침

2018년 11월 25일 주일 용  


제 13 과



고대하며 기다리는 믿음



학습구절: 야고보서 5장 7 -9, 13 -20절


성경진리:

믿는 자들은 삶의 시련과 역경에 직면할 때 하나님께로 향해야 한다.    


주요교리:  구 원

영화는 구원이 절정을 이루는 단계로, 구속 받은 자들이 최종적인 축복의 상태에 거하는 단계이다(요일 3: 2).


암송구절:  야고보서 5장 16 절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Therefore confess your sins each other and pray for each other so that you may be healed. The prayer of righteous person is powerful and effective.”  



시작하는 글:


당신은 지금 무엇을 고대하며 기다라고 있는가?

어쩌면, 여행이나 휴가, 새 가족의 출생, 혹은 월급 날을 고대하며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

어떤 것을 고대하며 기다리는 일을 삶을 즐겁게 해 준다.

미래에 대한 바램이나 기대가 없는 사람은 희망이 없는 사람이다.

종종 기대하는 일에는 두려움이나 걱정이 포함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미래에 도래할 어떤 것을 간절히 바라며 기다리는 것이 되고 있다. 


당신이 가장 간절하게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이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기대하는 것이 개인 생활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본문배경설명 


야고보서 5장 1절부터 20절까지

이 시점까지, 야고보는 몇 번에 걸쳐 부자들에 대해 언급하였다.

1장 10절에서, 그는 부자들에게 인생은 부서지기 쉽고 불확실한 점을 경고하였다.

2장 2 -4절에서, 야고보가 예로 든 부자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2장 5 -7절에서, 야고보는 믿는 자들을 억압한 부자들을 간접적으로 고발하였다.

그 모든 경우에 있어서, 그같이 언급 된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인지 또는 불신자인지에 관한 단서는 단지 문맥을 통해서만 제공되고 있다.

5: 1-6에서, 야고보가 정죄한 부자들이 불신자였음은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야고보는 부한 자들에게 먼저 그들에게 임할 극심한 고생을 생각하고 “울고 통곡하라”고 하였다 (5 : 1).

야고보는 부한 자들이 의지하고 있는 재물들이 없어져 버릴 것을 경고하였다.

부한 사람들의 곡식은 썩을 것이고, 좀이 그들의 옷을 먹을 것이며, 그들의 귀금속은 녹이 쓸고 부식될 것이다 (5: 2 -3).

그들의 부는, 불이 가연물질을 파괴하듯, 그들을 먹을 것이다. 그것은 무서운 마지막 심판의 그림으로, 야고보는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고 하였다 (5:: 3).

야고보의 생생한 비유적 표현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나서 재물의 무가치 함을 강조하고 있다.

야고보가 언급한 부자 불신자들은 고용한 일꾼들에게 삯을 주지 아니한 지주들이었다 (5: 4).

유대 법에 따르면 고용주는 당시 일꾼들이 하루의 일을 끝내면 매일 그날의 품삯을 지불해야 하였다.

당시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난하였고 하루 벌어야 사는 여유 없는 생활을 하였다.

악한 지주들은 일꾼들에게 품삯을 주지 않아서, 그들을 위험에 빠뜨렸다.

힘이 약한 일꾼들은 지주들한테 품삯을 받아낼 방법이 없었다.

고통가운데서,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야고보는 일꾼들이 그같이 하는 것을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그 말에 담겨있는 불길한 뜻은 하나님께서 그들 압제자들에게 책임을 물으실 것이라는 것이다.

야고보는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비용으로 사치와 쾌락을 누리며 사는 것을 비난하였다 (5: 5).

그들 부자들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들에게 대한 심판을 쌓아가고 있었다.   

야고보는 또한 부자들에게 “너희는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다)”고 하였다 (5: 6).

그 말은 악한 부자들이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부의 힘과 영향력을 이용하여 합법적으로 힘없고 가난한 사람을 억압하고 착취한 것을 가리키고 있다.

그가 고소하려고 법정에 가면, 법정은 이미 부자들이 점유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는 부자들에게 대항하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가난한 자는 그같이 할 힘이 없었다.



학습구절 연구 


길이 참으라 (야고보서 5장 7 -9절)


5장 7 -8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5장 1절부터 6절까지에서, 야고보는 가난한 자들에게 행한 부자들의 불의에 대해 말했다.

이제 야고보는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를 사용하여, 앞부분과 7절을 연결시켜 인내에 대한 권면의 말을 시작하였다.

야고보는 억압받는 가난한 사람들과 그들이 부자들의 손에 당한 부당한 일들의 결과에 대해 말하고 있다.  

야고보는 독자들을 “형제들”로 부르면서 그들에게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고 하였다.

길이 참는다”는 희랍어는 ‘길다’라는 makro와 ‘화를 내다’라는 thumia가 합쳐진 합성어로, ‘오래 참는다’는 뜻이 되고 있다.

그 말은 쉽사리 상대방에게 보복하지 않는 자제의 모습을 나타내 준다.

‘마크로두미아’라는 말을 사람들에게 사용하면, 인내심이나 희망을 결코 잃지 않는 것을 뜻하며, 일의 경우에는 결코 좌절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어떤 것을 오랫동안 생각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본문에서 그 말은 자제력을 보이며, 분을 빨리 내지 않고, 해를 당한 것에 대해 쉽게 보복하지 않는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그 용어는 베드로 후서 3장 9절에서도 사용되고 있는데, 사람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하며 그리스도의 재림이 지연되고 있는 것같이 보이는 것을 설명하는 용도로 쓰여지고 있다.

야고보는 ‘길이 참는 일’을 얼마나 오래 동안 그리고 왜 해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주께서 강림하시기 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은 신자들에게 고통에서 벗어날 소망을 주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억압을 당한 사람들에게 공의를 이루어 주실 것이다.

그 때를 정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마 24: 24: 36).

그 동안 믿는 자들은 매일매일을 그를 위해 살면서 적극적인 자세로 기다린다.

야고보는 ‘주님이 오실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일’을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기다리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농부는 토양을 준비하고, 씨앗을 심고, 김을 매주며 곡식이 자라나기를 기다린다.  

농부는 자기가 맡은 일을 충실하게 해야 했지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려야)” 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이른 비”는 10월과 11월에 내렸고, “늦은 비”는 4월과 5월에 내렸다.

그 두 기간 사이에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농사를 짓기 위해서 농부들은 그들 비에 의존하였다.

그리고 비를 내려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농부들의 예를 든 다음, 야고보는 믿음의 성도들에게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고 하였다.

이 표현은 신약성경 전체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롬 13: 12; 히 10: 25; 벧전 4: 7).


5장 9절: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서 계시니라


야고보의 독자들처럼(1: 1), 시련과 역경을 겪으며 고통을 당하게 되면 마음이 완악해 지고 불평을 하거나 서로 원망하기가 쉽다.

야고보는 어려움을 겪으며 고통을 당하고 있는 신자들에게 “서로 원망하지 말라”고 하였다.

‘원망하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탄식하다"또는 "한숨 짓다"를 뜻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대한 악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본문에서, ‘원망하지 말라’는 말은 ‘어려운 일에 대해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원망하다’는 말은 또한 다른 사람들에 대한 비판적인 혹은 판단적인 태도를 묘사한다.

야고보는 그의 독자들에게 서로 원망을 하지 말아야 “심판을 면하리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비판적인 성도들이 불평과 원망으로 신앙공동체를 분열시키는 것을 보신다.

그것은 교회의 목적을 해치는 일이 되고 있다.

야고보는 그의 독자들에게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고 경고하였다.  

보라”는 말은 경고를 강조해 주고 있다.

즉 심판 주이신 예수님이 문 밖에 서서 들어오시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은 주의 강림이 가까우시다는 뜻이다(5: 8).

재판주가 그렇게 가까이 계신데, 어떻게 우리는 계속 서로 원망하며 잘못을 찾을 수 있는가?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시며 그 안에 있는 죄를 심판하신다.

모든 신자들은 그들의 행동이 교회와 주님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지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저지른 죄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해를 끼치는 우리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에, 특별히 그것이 그리스도의 몸에 영향을 끼칠 때, 책임을 진다.


약속된 예수님의 재림이 신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쳐야 하는가?

불신자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쳐야 하는가?


기도하라 (야고보서 5장 13 -18절) 


5장 13 -15절: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야고보는 신자들이 기도의 사람들이 될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세 가지 질문을 제기하였다.

첫째로. 그는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고 물었다.

고난 당하다”로 번역된 단어는 고통이나 박해의 때를 나타내고 있다.

야고보의 독자들은 그들을 흩어지게 만든 박해를 받은 사람들이었다 (1: 1).

신자는 고난을 당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기도할 것이요”라는 말로, 야고보는 신자들에게 기도하라고 한다.

야고보가 사용한 동사의 시제는 "계속 기도하라"는 뜻이 되고 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일관되고 지속적인 태도와 생활이 되어야 한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힘과 권세를 인정하고 우리의 사정과 상황을 아뢴다.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는 고난의 때에 인내할 수 있는 기초가 된다.

둘째로, 야고보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고 물었다.

여기서 말하는 기쁨 혹은 즐거움은 현재의 외적 상황에 의해 결정되는 일시적인 것보다 더 깊은 것이 되고 있다.

대신, 참 기쁨은, 외적 상태나 영향과 관계 없이, 내적 평안을 주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비롯된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기뻐하는 자들에게 야고보는 “그는 찬송할지니라”는 말로,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하였다.

찬송은 오랫동안 기도와 관련되어 오고 있다.

히브리 사람들은 종종 그들의 기도를 찬송이나 시로 하나님께 드렸다.

5장 13절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똑같이 기도하는 것이 적절함을 강조해 주고 있다.

셋째로, 야고보는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심지어 가장 강한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직면하게 되는 특정한 유형의 고난을 제시하였다.

병에 걸리면, 병은 삶을 지배할 수 있다.  

야고보는 심한 병이 들어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는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라는 말로 병든 자에게 장로들을 청하라고 하였다.

장로”는 일반적으로 나이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그런데, 그 말은 정신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성숙한 남자를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  

유대인들은 종종 장로라는 호칭을 존경 받는 랍비에게 사용하였다.  

교회가 보다 조직 된 형태를 취함에 따라, 장로는 교회의 영적 지도자들에게 붙이는 호칭이자 직분이 되었다.

야고보는 병자의 청함을 받고 찾아 온 장로들에게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고 하였다.  

구약과 신약에 언급되고 있는 내용들을 보면 올리브 기름에 치료효과가 들어있다는 믿음이 나타나고 있다 (사 1: 6; 렘 8: 22; 막 6: 13; 눅 10: 34 참조).

더 중요한 것은, 기름은 하나님께서 기도를 통해 그의 백성에게 가까이 계시며 능력을 베풀어 주시는 것에 대한 상징이 되고 있는 점이다.

야고보는 치료의 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오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래서 장로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여야 하였다. 

15절에서, 야고보는 말하기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고 하였다.

믿음의 기도”라는 말은 장로들의 기도와 병자의 기도를 함께 가리킬 수 있다.

여기서 “구원한다”는 말은 회복되는 것을 뜻하고 있다.

야고보는 또한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는 말로 병든 것을 죄를 범한 것에다 연결시켰다.

모든 병이 죄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죄 때문에 병에 걸렸을 경우, 그 병이 치료될 때 그것은 그 죄도 사함을 받은 증거가 된다고 하였다.


5장 16절: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니라


죄를 사함 받을 수 있고 병을 고침 받을 수 있는 기도의 힘과 효과를 생각할 때, 믿는 자들은 열심히 기도해야 마땅하였다.

그래서 야고보는 “너희 죄를 서로 고벡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고 하였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1장 9절에서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고 하였다.

특별히, 야고보는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고 하였다.

야고보가 여기서 언급한 “의인”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기를 힘쓰는 사람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힘이 나타나는 기도는 자신의 죄를 인정할 만큼 겸손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며,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기를 힘쓰는 마음에서 나온다.

하나님은 그 같은 믿음을 통해 역사하신다.


5장 17 -18절: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 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구약에서 엘리야가 행하고 겪은 일들은 기도의 힘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되고 있다.

그가 행한 일들과 이적들로 인하여, 엘리야는 구약의 선지자들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져 있었고, 심지어 인간 이상의 특별한 존재로 취급되기까지 하였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라는 말로, 야고보는 먼저 엘리야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보통 인간이 되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엘리야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 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안 일)”을 언급한 후(왕상 17: 1),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고 하였다 (왕상 18: 41 -48).   

하늘이 비를 주었다”는 말은 비를 주시는 하나님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방법이 되고 있다.

야고보가 밝히려는 의도와 요점은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보통 인간인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같이 놀라운 방법으로 응답해 주셨다면, 다른 믿는 자들이 서로를 위해 하나님께 엘리야처럼 간절한 마음과 믿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이다.   

조건은 엘리야처럼, 간절한 믿음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초대 교회는 교인들이 죄에 빠질 때 행동을 취해야 될 필요성을 분명히 보았다.


지켜주다  (야고보서 5장 19 -20) 


5장 19 -20절: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 


“너희 중에 미혹되어”라는 말은 가정된 상황을 알려주고 있다.

헬라어로 “미혹되다”라는 용어는 "방황하는 것"을 ‘잘못 이끌림을 받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진리”라는 말은 기독교의 행위나 교리를 가리킬 수 있지만, 두 가지를 다 가리킬 수도 있다.

바른 길에서 벗어난 신자를 진리의 길로 돌아 오게 하는 그리스도인은 죄를 범한 사람에게 엄청난 봉사를 하고 있다.

죄인을 진리의 길로 돌아오게 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는 신자는 “그(죄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다 

여기서 “사망”이라는 말은 육신의 죽음을 포함해서, 사람들에 대한 ‘죄의 파괴적인 영향력’을 가리키고 있다.

그 말은 하나님과의 영원한 분리상태인 영적 죽음이나 구원을 잃게 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또한,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일”은 “허다한 죄를 덮(는 일)”이 된다.

덮다”라는 말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가리다’ (시 32: 1) 혹은 ‘덮다’ (시 85: 2)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면, ‘죄를 사람 받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베드로도 같은 표현을 사용하였다: “무엇보다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벧전 4: 8).  

“허다한”이라는 단어는 많은 죄와 죄의 심각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 구절이 나타내고 있는 개념은 진리를 떠났던 신자가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다는 것이 되고 있다.

초대 교회는 교인들이 죄에 빠질 때 행동을 취해야 될 필요성을 분명히 보았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성도들에게 “형제들아 사람이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고 하였다 (갈 6: 1).

초대교회는 죄인들과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구속사역과 회복사역을 열심히 하였다.

그 같은 일은 교인들의 영적 상태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관심을 나타내었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대하고 그 기대에 맞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을 믿고,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가지고 나가 기도로 그에게 맡겨야 한다.

●  신자들은 영적으로 시험에 빠져있는 신자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어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더 굳게 가지도록 도와 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