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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의 믿음 - 제 12과 - 2018년 11월 18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야고보서 4장 6 – 17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8-11-15 (목) 04:28 조회 : 34

장년성경연구 교사 지침

2018년 11월 18일 주일 용  


제 12 과



순종의 믿음



학습구절: 야고보서 4장 6 – 17절


성경진리:

신자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를 힘써야 한다.    


주요교리:  구 원

중생한 신자가 은혜로 계속 자라나는 과정은 삶 전체를 통해 계속되어야 한다 (벧전 2: 2).


암송구절:  야고보서 4장 17 절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If anyone, then, knows the good they ought to do and does not do it, it sin for them.”



시작하는 글:



‘복종하다’ 혹은 ‘순종한다’는 말에는 갖가지 정서적인 혹은 감정적인 반응(反應)이 따르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거나 양보하는 행동이나 자세를 취하는 것은 인간의 생각이나 기질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그같이 행동하는 것은 우리가 복종하거나 순종하는 사람이나 대상이 어떤 면에서 우리들보다 낫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잠언은 말하기를,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잠 13: 10).


어떤 사람이나 대상에게 복종하거나 순종하는 것은 좋은 일인가? 아니면 나쁜 일인가?

바른 상황에서 복종하는 것은 복종하는 사람에게 어떤 유익이 될 수 있는가?  



본문배경설명 


야고보서 3장 13절부터 4장 17절까지

신자들은 자기 중심적인 삶과 하나님 중심의 삶 사이에서 매일 갈등하거나 싸움을 한다.

사도 바울은 그 같은 현상을 다음과 같은 말로 묘사하였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 잡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 22 -24).   

하나님께 복종하려는 의지가 매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열쇠이다.

3장 13절에서 야고보는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 있는 자가 누구냐”고 묻는다.

일부 주석가들은 여기서 야고보는 3장 1절에서 언급했던 “선생”이라는 주제로 돌아가서 그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만일 그렇다 하더라도, 1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그의 말은 교사들에게뿐만 아니라 신자들 모두에게 적용되고 있다.   

야고보는 1장 5절에서 처음 ‘지혜의 주제’를 소개하였다.

3장 13절부터 18절까지에서, 그는 세상의 지혜와 경건한 지혜의 차이점을 강조하고 있다.

세상의 지혜는 시기와 다툼과 혼란을 내는 이기심에서 생긴다.

경건한 지혜는 위로부터 오는 것으로, 화평과 관용과 긍휼을 내며 교회를 하나가 되게 한다.

 4장 1절부터 5절에서, 야고보는 그의 독자들인, 신자들에게 나타나고 있던 심각한 문제에 대해 말하였다.

그들 신자들은 야고보가 3장 17절과 18절에서 언급한 위로부터 나는 지혜를 받아 화평의 관계를 이루지 못하고 있었음이 분명하였다.

갈등은 심각하였고 지속적인 것이었다.

야고보는 그 같은 행동을 책망하면서, 그같이 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 보다는 세상을 벗삼고 있는 것을 나타낸다고 하였다.

야고보는 다른 사람들과의 갈등 관계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받을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 은혜에 기초하여, 야고보는 그의 독자들에게 회개와 겸손을 통해 하나님께 복종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할 것을 촉구하였다 (4: 6 -10).  

 신자들은 서로 비방하며 판단하고 있었다.

 4장 11 -12절에서, 야고보는 믿는 자들이 서로 헐뜯을 뿐 아니라, 서로 판단하며 심판하는 하나님의 권리를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을 책망하였다.

4장 13 -17절에서, 야고보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않고 생활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에게 경고하였다.

야고보는 그러한 계획의 오만한 점을 강조하였다.



학습구절 연구 


겸손함으로 (야고보서 4장 6 -10절)


4장 6절: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야고보는 독자들에게 겸손의 삶을 요구하였다.

1절부터 5절까지에서, 야고보는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고 하면서, 참 지혜가 부족한 신자들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다툼과 분쟁의 문제에 대해 말하였다.

6절에서 그는 그 같은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하나님은 “더욱 큰 은혜를 주(신다)”고 하였다.

서로 싸우며 지배하려는 경향에도 불구하고 (1 -2 절),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더욱 큰 은혜”를 주셔서 적대감을 극복하고 사랑 안에서 서로 대하게 해 주신다.

야고보는 잠언 3장 34절을 인용하여 교만의 위험성과 겸손의 필요성을 상기시켜 주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는데)” 이는 그들이 하나님 대신 자신들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데,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필요를 깨닫기 때문이다.


4장 7절: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파하리라 


7절부터 10절까지에서 야고보는 꼭 지켜야 될 열 가지의 명령을 제시하였다.

그들 명령을 지키는 일은 ‘더욱 큰 은혜’에 대한 지혜의 응답이 되고 있다.  

하나님께 복종할 지어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권세에 복종하라는 뜻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인도 하심을 따르고 그의 지시에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도들이 하나님께 복종하려는 마음을 새롭게 하고 결의를 다지고 나면, “마귀를 대적하게 된다).”  

대적하다”라는 용어는, 전투에서 명령으로 사용 되었던 것으로, 전면적인 공격에 맞서서 적극적으로 방어하며 대항하는 것을 뜻하였다.     

적대’ 혹은 ‘저항’이라는 말에서는 적의 공격을 격퇴하기 위해 항상 준비를 갖추고 있는 일이 요구되고 있다.

마귀 혹은 사탄의 의도와 목적을 알고,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그의 힘을 알 때, 신자들은 마귀를 대적할 수 있고 마귀로 하여금 그들로부터 피하게 할 수 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이 원리의 모범을 보여 주셨다 (마 4: 1-11).

예수님은 성경 말씀으로 마귀를 대적하셨다.

결국, 마귀는 포기하고 예수님을 떠났다.


마귀를 대적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4장 8절: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야고보는 8절에서 추가로 성도들이 꼭 지켜야 될 세 가지 명령을 제시하였다.  

그는 신자들에게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고 하였다.

그 말은 우리에게 희생제물을 드리기 위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구약의 제사장을 생각나게 한다 (출 19: 22).

가까이 한다’는 말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의도적인 행동을 나타낸다.

우리는 예배, 기도 및 경건한 삶을 통해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그 앞에 나아갈 수 있다.  


믿는 자들은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그에게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가?


야고보는 그의 독자들에게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고 하면서, “그리하면 [하나님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고 한다.

탕자의 비유’ 혹은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의 비유’는 그 같은 원리를 생생하게 묘사해 주고 있다 (눅 15: 11 -31).

탕자가 집으로 돌아 가기로 결정했을 때, 아버지는 멀리서 오고 있는 그를 발견하고,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보고, 잃어버렸던 아들을 만나러 달려나갔다 (눅 15: 20).

하나님은 그를 떠났던 자녀들이 회개하고 그에게로 돌아오면, 기뻐하시며 맞아주신다.

죄인인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공로로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두 가지가 필요하다.

죄인들은 깨끗한 손과 청결한 마음이 필요하다 (시 24: 4).

야고보는 그의 독자들에게 “손을 깨끗이”하고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고 하였다.

마음이 지시하는 것을 손이 하고 있는 점에서, 마음과 손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또한 손을 깨끗이 씻는 것은 마음을 깨끗이 씻는 것을 상징하는 일이 되었다.

유대인들에게, 마음은 인간의 감정과 생각 그리고 의지가 자리잡고 있는 곳이었다.

성결한 마음 혹은 깨끗한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갈리지 않은 헌신된 마음을 상징하였다.

야고보는 그의 독자들을 “죄인들”과 “두 마음을 품은 자들”로 부름으로, 회개의 필요성을 더 강하게 깨닫게 하였다.    

두 마음을 품다’라는 말은 ‘망설이다’ 혹은 ‘헌신감이 흔들리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그 같은 사람은 충성심이 갈린 사람이다.

믿는 자가 갈리지 않은 온전한 마음과 믿음으로 하나님께 헌신할 때에만, 죄와 마귀를 이기고 승리할 수 있다.


4장 9 -10절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야고보는 두 마음을 품은 자들에게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라고 하였다.

그 슬픔과 애통은 진정한 회개의 표시가 되고 있다.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은 마음이 너무 슬프고 아파서 눈물을 흘리며 애통해 하여야 했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라는 절박한 명령은 모든 웃음과 기쁨을 피할 필요를 암시하는 말이 아니다.

이 상황에서, 웃음과 즐거움은 죄에 대한 경박한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회개한 죄인이 인간의 사악함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깨닫게 될 때 웃음이 애통으로, 즐거움이 근심으로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야고보는 그의 독자들에게, “주 앞에서 낮추라”는 말로 겸손을 강조하였다.

겸손은 7 ~ 10 절에 열거 된 명령들을 순종하게 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겸손은 이 단원을 양쪽에서 세워주고 붙들어 주는 북 엔드(bookends) 역할을 하고 있다 (6, 10절). 

야고보는 말하기를, 우리가 주 앞에서 자신을 낮추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하였다.


은혜를 베풀므로 (4장 11 -12절) 


4장 11절: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4장 6절에서, 야고보는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이 믿음생활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더 큰 은혜"를 주시는 사실을 확신시켜주었다.

4장 11 -12절에서, 야고보는 은혜를 받은 자들은 은혜를 베풀어야 됨을 강조하였다.

그 같은 일환으로, 야고보는 믿는 자들에게 “서로 비방하지 말라”고 하였다.

“비방하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어떤 사람에 대해, 특별히 그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해, 악하게 혹은 부정적으로 말한다는 뜻이 되고 있다.

그르므로, 그 말은 험담이나 모략중상 혹은 비방이나 흠을 잡는 것 등의 뜻을 담고 있다.  

다른 사람에 대해 악의적으로 말하는 배후의 동기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 사람이 나쁘게 보이게 하거나, 자신을 더 잘 보이게 하려는 것이 될 수 있다.

야고보는 신자들이 서로 흠을 잡거나 비방하는 것의 심각성을 지적하였다.

어떤 성도들은 습관적으로 서로 공박하거나 헐뜯은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들의 그 같은 행위는 믿음의 공동체를 심각하게 손상시키는 일이 될 뿐 아니라 불신자들에 대한 전도의 길을 막는 일이 되었다.

때로는, 믿는 자들은 다른 믿는 자를 직접 대면하여 사랑으로 건설적인 비판이나 꾸중을 해야 될 경우가 있다.

잠언은 말하기를,”사람을 경책하는 자는 혀로 아첨하는 자보다 나중에 더욱 사랑을 받느니라”고 한다 (잠 28: 23).

그렇지만, 믿는 자들은 다른 사람을 비방하거나 흠 잡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야고보는 믿는 자들에게 “서로 비방하지 말라”고 하면서, 형제나 자매를 비방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율법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야고보는 어떤 뜻과 목적으로 그같이 말했을까?

야고보가 언급한 “율법”이란 말은 예수님이 정의하신 “사랑의 법”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은 가장 큰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되는 것으로 밝혀주셨다 (마 22: 37 -39).

야고보는 그것을 “최고의 법”으로 밝혔다(2: 8 -9).

하나님은 믿는 자들이 “최고의 법”을 판단하는 자가 아니라, “준행하는 자”가 되기를 기대하시며 원하신다.

야고보는 말하기를, 믿는 자들이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라 재판관이로다”고 하였다.

실제로, 그 사람은 하나님의 역할을 맡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비판하고 판단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말과 태도는 교회를 분열시키며 하나님이 주신 목적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4장 12절: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야고보는 신자들이 율법을 판단하려고 할 때, 그것은 “입법자와 재판관”으로서의 하나님의 특권을 주장하는 일이 됨을 그들에게 강력하게 상기시켰다.

실제로, 그것은 하나님보다 더 지혜롭다고 주장하는 일이 되었다.

야고보는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으로, 오직 그 만이 ‘구원하실 수도 있고 멸망시킬 수도 있다’고 하 였다.

야고보는 신자들에게 율법의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만 계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었다.

오직 그분만이 “능히 구원하시기도 하시며 멸하시기도 하(신다).”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삶을 위한 지침을 세울 수 없고 재판 석에 앉아있을 수 없다.

하나님 혼자서만 인생에 대한 완전한 지식과 힘을 갖고 계신다.

구원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용어는 '구조하다,’ '치유하다,’ '죄에서 구원하다'는 뜻이 되고 있다.

야고보는 그 용어를 ‘죄에서 구원하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멸하다”로 번역된 용어는 죽이는 것을 뜻하며 영원한 파멸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야고보는 하나님만이 주권자가 되시며 최고 통치권자이시자 심판자가 되심을 강조하는 것이 분명하다.

서로 비방하며 판단하는 신자들에게 야고보는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고 물었다.

그 질문에는 누가 당신을 재판관의 자리에 임명을 했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여기서 이웃이라는 말은 다른 믿는 자를 가리키고 있다.

야고보는 파괴적이고도, 비방하는 언사를 일삼는 것은 가벼운 문제는 아님을 강조했다.

오늘날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고 비방하며 판단하고 있다 (마 7: 1 5).


복종함으로 (야고보서 4장 13 -16절)


4장 13 -14절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기로 작정한 신자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

야고보는 13절에서 그와는 정반대되는 태도를 가진 사람들을 묘사하고 있다.  

그가 묘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신자들로 보이는 상인들로, 그들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모든 것을 철저하게 계획하고 준비하였다. (누가 복음 12: 16 ~ 21 참조).

야고보는 계획을 세우는데 반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이 빠진 인간의 계획이 허무함을 강조하며 그같이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오만한 일인지를 보여주려는데 목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고 하며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인생은 하나님만이 아시는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고 예측할 수도 없다.

야고보는 사람들의 생명을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에다 비교하였다.  

그는 이른 아침 안개를 연상했는데, 아침에 해가 떠오르면 안개는 없어져 버린다.

시편 기자도 마찬가지로, “내 날이 연기 같이 소멸하며”라는 말로, 인생의 짧음과 덧없음을 강조하였다 (시 102: 3).


주의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혹은 우리와 아무 관계가 없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다.     


4장 15 -16절: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13절에서 상인들은 추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대신에 오히려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고 말해야 하였다.

15절에서 “말하다”라는 헬라어의 현재형 부정사는 믿는 자들이 그들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를 계속 인정해야 됨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매일 마음 속으로 “주의 뜻이면”이라고 말하거나 속삭임으로 하나님을 인정해야 한다.

주님의 뜻이면”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태도를 밝히는 말과 같다.

믿는 자들은 어떤 이유로든 어떤 계획을 세울 때,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맡겨야 한다.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우는 것은 좋지만, 하나님은 그 계획의 중심에 계셔야 한다.

하나님께 순복하는 삶을 사는 대신에, 야고보가 목격한 것은 성도들이 “허탄한 자랑을 하(는 것)”이었다.

자랑하는 일은 죄가 될 수도 있고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자신의 인생을 계획하고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자랑하는 것은 이기적인 자만심의 죄이다.

조심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실제로 무신론자처럼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능력에 의존하여 미래를 계획함으로 하나님께 무례함과 오만의 죄를 나타낼 수 있다.

하나님께 순복하는 삶에는 우리가 결정을 하거나 계획을 세우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오만한 태도와 행동을 제거하는 일이 포함되고 있다.


하나님을 포함시키지 않는 계획을 세우는 것의 위험성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포함시키는 계획을 세울 수 있는가?


순종함으로 (야고보서 4장 17절)


4장 17절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이 구절은 13절부터 16절까지의 내용에 대한 폭넓은 적용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라는 말은 바로 앞의 세 구절들과 17절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앞의 구절들에서, 야고보는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는 것은 죄가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우리가 하나님께 의존하고 있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매일의 삶을 계획한다면, 우리는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17절에서 야고보는 우리가 선을 행할 것을 알지만 그것을 행하지 아니할 때, 그것은 죄가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이 맥락에서 신자들이 행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는 선은 그들이 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에 대한 의존을 고백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13-16 절).

우리는 종종 죄라고 하면 우리가 범하는 잘못된 것들을 생각한다.

여기서 야고보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죄” (sins of omission)라는 새로운 범주의 죄를 소개하고 있다.

‘해야 될 것을 하지 않은 죄’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행하는 죄, 즉 고의적인 죄’ (sins of commission) 만큼이나 죄가 크고 중요하다.

그 같은 종류의 죄의 본보기는 마태 복음 23장 23 절과 야고보서 5 장 4 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무엇이 ‘해야 될 선한 일을 하지 않는 죄’ (‘sins of omission)를 짓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을까?

어떤 신자들은 믿음 생활을 부주의한 태도로 한다.

그들은 단순히 자신들이 해야 할 일들을 하지 않는다.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이기적이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한 희생적인 행동은 피한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오직 하나님께 순종함으로써만, 우리는 죄와 사탄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할 수 있다.  

●  신자들은 순종하기를 힘들어 하는 다른 신자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

●  믿는 자들은 그들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한다.

●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그를 순종하며 따르기를 원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