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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의 믿음 - 제 11과 - 2018년 11월 1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야고보서 3장 1 – 12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8-11-07 (수) 06:26 조회 : 30

장년성경연구 교사 지침

2018년 11월 11일 주일 용  


제 11 과



절제의 믿음



학습구절: 야고보서 3장 1 – 12절


성경진리:

믿는 자들은 경건하고도 절제 있는 말을 함으로 믿음의 성숙을 나타낸다.   


주요교리:  구 원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신자는 하나님과 화평과 은혜의 관계를 맺는다 (딛 3: 7).

그들의 말에서는 그 같은 화평과 은혜가 나타나야 한다.


암송구절:  야고보서 3장 1 절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Not many of you should become teachers, because you know that we who teach will be judged more strictly.”



시작하는 글:


“말”은 사람이 임의로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도구(道具)이자 강한 무기(武器)가 될 수 있다.

말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상처를 치유를 할 수도 있으며, 격려하거나 낙심시킬 수도 있으며, 고무 시키거나 기를 꺾을 수도 있다.

말은 상처를 입히는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잠언은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라는 말로 말의 힘과 그 영향력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잠 18: 21).

어떤 상처들은 어린 시절에 입은 것이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남아 있을 수 있다.

반면에, 긍정적인 말은 듣는 사람들에게 건전한 자아상을 심어주어 삶의 어려운 문제들을 자신감을 갖고 이겨나갈 수 있게 해 줄 수 있다.

우리는, 유익이 되게 혹은 해가 되게, 영향을 끼치는 말의 힘을 과소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잠언은 말에 대해 경고하기를,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고 한다 (잠 12: 18).  

야고보는 그 당시에 믿는 자들이 다른 믿는 자들과 혹은 믿지 않는 자들과 관계할 때 말을 절제 있게 하는 것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이해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제자들로서, 그들은 말의 강한 힘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하였다. 

사도 바울도 믿는 성도들에게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하였다 (엡 4: 29).



본문배경설명 


야고보서 3장 1절부터 12절까지


지난 주의 학습에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며 “헛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약 2: 14 -26).

그러면서 그는 행함으로 참된 믿음을 나타낸 구약의 인물로 아브라함과 라합과 그리고 그들이 행한 일을 소개하였다.

오늘의 본문인 3장 1절부터 12절까지에서, 야고보는 행함으로 참된 믿음을 나타내는 방법의 하나로, 혀를 사용하는 문제를 들었다  

구원의 믿음은 구원받은 신자의 말에서도 입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수 많은 말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말을 많이 하다 보면 말을 잘못하거나 남용 할 위험도 더 커지게 마련이다.

본문에서 야고보는 말과 관계되고 있는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그는 특별히 그리스도인 교사들의 중요성과 책임감을 강조하였다.    

이는 그들의 지도력과 그들이 가르치며 말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기 때문이다.  

야고보서 3장 3 ~ 6절은 말의 힘, 즉 절제되지 않은 말과 관련된 위험성과 그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세 가지 예를 들고 있다.

혀는 몸의 아주 작은 지체인데, 그 크기보다 훨씬 더 큰 힘과 영향력을 행사한다.

야고보는 그 같이 작은 혀를 말들의 입에 물리는 재갈과 큰 배에 붙어 놓은 방향타, 그리고 많은 나무를 태우는 작은 불, 즉 훨씬 더 큰 것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작은 것들에다 비교하였다.

야고보는 혀가 미칠 수 있는 잠재적인 영향력 때문에, 말을 깊이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해야 될 필요성을 그의 독자들에게 상기시켜 주었다.

야고보는 더욱이 신자들의 말에서 일관성이 나타나야 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3: 7 -12).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데 쓰이는 혀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을 저주하는데 사용되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 그 같은 일이 가능한지는 야고보를 혼란과 좌절에 빠지게 하였다.

야고보는 독자들에게 혀가 인간의 마음의 상태를 들여다 보게 하는 창문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야고보는 왜 말(혀)을 구원의 믿음을 나타내는 지표로 택했다고 생각하는가?



학습구절 연구 


진리를 가르칠 때 (야고보서 3장 1 -2절)


3장 1절: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내 형제들아라는 말은 새 단원이 시작되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야고보는 말로 짓는 죄에 대해 깊이 염려하였다.

그는 3장 1절부터 12절까지에서 말의 문제에 대해 길게 언급하고 있지만, 1장 26절과 2장 12절 그리고 4장 11절과 5장 9절에서도 언급하였다.

이 단원에서 그는 가르치는 사람들이 말을 조심스럽게 해야 될 책임에 대해 언급하였다.

야고보는 먼저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는 경고의 말로 새 단원을 시작하고 있다.

초대교회는 교사들을 높이 평가하였다.

초대 교회의 많은 교인들은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랍비, 즉 교사들을 존경하였다.

유대인 교사들에 대한 그 같은 존경심은 교회의 교사들에게 부여된 존경심에 영향을 준 것이 분명해 보인다.

야고보는 교회의 일부 교인들이 그릇된 이유와 동기로 선생이 되려고 하는 것을 우려하였다. 

야고보는 신자들이 교사가 되는 것을 경고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단순히 가르치는 직책에 따르는 명성과 인정과 영예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데 자격을 갖추고 헌신적이며 동기가 바른 교사들이 필요하다.


야고보는 왜 자기가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고 말했는지 그 이유를 밝혔다.

그는 “우리”라는 말로 자신을 포함시켜,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는(다)”고 하였다.  

헬라어로 “더 큰 심판을 받는다”는 말은 ‘더 엄격한 판단을 받는다’의 뜻이 되고 있다.

여기서 “심판”이라는 용어는 하나님에 대한 책임을 의미한다.

교사들은 정확하고도 바르게 가르쳐야 될 책임이 있다.

교사들은 하나님에 관해 가르치는 일에 대해 하나님께 책임을 진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가르치는 사역을 맡기면서 부탁하기를,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고 하였다 (딤후 2: 15).    

실제로, 하나님은 모든 신자들에게 높은 수준을 기대하신다.

더욱이, 교사들은 면밀한 주시(注視)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교사들에게 더 높은 수준과 기준이 요구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우리는 야고보의 경고를 하나님께서 가르치는 사역으로 부르셨다고 믿는 신자들을 낙심시키는 방식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야고보는 일부 교인들이, 그릇된 동기로, 사람들의 각광을 받기 위해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데 자격을 갖추고 헌신적이며 동기가 바른 교사들이 필요하다.


3장 2절: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야고보가 3장 2절에서 한 말은 특별히 선생들에게 적용되는 것이긴 하지만, 모든 신자들에게도 적용되고 있다.

야고보는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라고 하였다.

우리”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야고보는 심지어 그 자신도 예루살렘 교회의 선생으로 때로는 실수를 하고 있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실수를 하다”라는 말은 ‘발을 헛디디다’로, ‘잘못을 하다’는 뜻이 되고 있다.

종종 그 말은 영적인 실패와 관계되고 있다.

야고보는 말하기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믿음이 성숙한 사람은 말을 지혜 있게 한다.

잠언은 말을 절제하는 것에 대한 현명한 가르침으로 가득 차 있다 (10: 8, 11; 16: 27 -28; 18: 7 -8).  

여기서 “온전하다”라는 말은 영적으로 성숙한 것을 가리키고 있다.

야고보는 말을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은 온 몸을 다스릴 수 있는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야고보는 말하기를, 몸의 아주 작은 지체인 혀를 잘 절제하거나 통제하여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믿음이 성숙한 사람으로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고 하였다.


선생들에게 높은 기준 혹은 수준의 책임이 따른다면, 왜 사람들은 그 역할을 맡으려고 하는가?



말은 중요하다


말은 강한 힘이 있다


 잠언 12: 6, 18; 15: 4; 18: 21

 에베소서 4: 29 



말은 마음을 비쳐주는 창이다



마태복음 12: 34; 야고보서 1: 26;

3: 11 -12



혀를 다스리는 것이 성공적인 삶의 열쇠이다



잠 언 13: 3; 21: 23


하나님은 믿는 자들이 부주의하게 하는 모든 말에 대해 책임을 물으신다



마태복음 12: 36 -37


우리는 혀를 다스리려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시 편 19: 14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때 (야고보서 3장 3 -6절) 


3장 3절: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3장 3절부터 6절까지에서, 야고보는 작은 물체들과 그들 물체들이 발휘하는 엄청난 힘을 생생하게 대조시키고 있는 세 가지 실례(實例)를 들었다.

그 실례들은 1 세기 당시의 일상 생활에서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야고보는 먼저 말들을 제어하는 방법에 주의를 환기시켰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 때부터 말들을 폭넓게 사용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왕상 10: 26 -29).

성경저자들은 성경에서 속도나 힘 혹은 꾸준함을 비유적으로 나타낼 목적으로 말을 사용하였다.

야고보는 짐승과 그 속성을 예로 든 다음 그 크기와 힘을 그것을 제어하는 작은 도구에다 대조시켰다.

말을 타려는 사람들이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말들이 그들에게 “순종하게” 하고 “말의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 되고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사람은 어느 누구도 말의 힘을 당해낼 수 없다.

말을 잘 타는 사람들은 말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고삐를 묶어서 크고 힘이 센 말을 끌고 다닐 수 있다.


3장 4절: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야고보는 예화를 다른 것으로 바꾸었지만, 그가 지적하고 강조하려는 요점은 똑같다.  

즉 혀는 작은 지체이지만 온 몸을 제어하며 놀라운 힘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야고보는 이번에는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라는 말로, 매우 작은 배의 키를 예로 들었다.

당시 배는 바다를 항해할 때 두 가지 도전에 직면하였다.   

첫째는, 바다를 항해하는 배들은 엄청나게 컸다.

둘째는, 강한 바람이 불어 닥치면, 배들은 바람의 처분에 맡길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주 작은 방향타를 사용하면, 배의 선장은 원하는 방향으로 배를 조종 할 수 있었다.

같은 방식으로, 혀를 자제하거나 통제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강한 힘과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야고보가 지적하며 강조한 점은 자갈이나 방향타를 조정하는 사람은 누구나 말이나 배를 지배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되고 있다.  

신자들은 그들이 하는 말이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강한 수단과 도구가 된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말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일은 중요하다.


3장 5 - 6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혀는 말을 하는데 필수적인 요소가 되고 있기 때문에, 야고보는 혀를 일반적인 말을 대표하는 것으로 사용하였다.

야고보는 말하기를,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고 하였다.

야고보는 혀를 의인화시켜 독립적인 존재인 것처럼 표현하였다.

실제로, 혀는 한 사람의 생각이나 의지에 대한 반응이 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은 종종 어떤 것을 생각하지 않고 말하기 때문에, 야고보의 요점은 타당하다.

야고보는 절제되지 않은 혀 혹은 말이 초래할 수 있는 커다란 피해나 해악에 초점을 맞추었다.

‘큰 것을 자랑하다’는 말은 자기 자랑을 일삼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잠언은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고 한다 (잠 10: 19).

야고보는 6절에서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고 했는데, 그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말이다.

잠언 16장 27절은 “불량한 자는 악을 꾀하나니 그 입술에는 맹렬한 불 같은 것이 있느니라”고 한다.

잠언 26장 21절은 또한 “나무가 다 하면 불이 꺼지고 말쟁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고 한다.  

야고보는 혀를 “불의의 세계’로 불렀다.  

그 말은 몸의 지체들 중에서 혀가 잠재적인 악의 중심점이 되고 있는 것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혀는 중립적인 성격의 것이지만, 그것은 악에게 쉽게 이용될 위험성과 가능성이 더 크다.

어떤 언어학자에 의하면, 인간이 사용하는 단어 중에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가 3천여 개정도가 되는데, 그 중에서 긍정적인 단어가 1천여 개이고, 부정적인 단어가 2천여 개 정도라고 한다.

그러니까, 부정적인 언어가 긍정적인 언어보다 두 배 정도로 더 많다는 것이다. 

혀는 우리 몸의 여러 지체들 중의 하나이지만, 우리는 그 중요성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야고보는 또한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른다)”고 함으로, 혀가 우리의 삶에 끼치는 강한 힘과 영향력을 강조 하였다.   

그러면서 야고보는 그 혀도 지옥 불에 타버린다고 하였다.

지옥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게헨나”인데, 그 말은 예루살렘 성 밖에 있던 힌놈 골짜기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곳은 쓰레기를 버려서 태우는 장소였다.

예수님도 그 장소를 사용하여 지옥에다 비유하셨다 (마 10: 28).

야고보가 지옥을 언급한 것은 절제되지 않은 혀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암시한 것 같이 보인다.


하나님을 찬양할 때 (야고보서 3장 7 -12절) 


3장 7- 8절: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야고보는 7절과 8 절에서 역설적(逆說的)인 말을 사용하여 자신의 요점을 납득시키려고 하였다.

그는 먼저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라는 말로, 인간이 생명체들을 길들일 수 있는 점을 지적하였다.  

우리는 지상의 생명체들을 지배하고 이용하여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고 있다.

동물들은 식료품으로, 혹은 땅을 경작하거나 교통편의를 제공하는 수단과 방법으로 사용될 수 있다.

그같이 동물들을 길들이기까지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혀는 절제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야고보는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다)”고 한탄하였다.

길들이다’로 번역된 용어는 "압도하다 혹은 ‘강한 힘으로 이기다’는 뜻이 될 수 있다.

어느 인간도 혀를 이길 수 없다.

야고보는 또한 혀를 “쉬지 아니하는 악”과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으로 묘사하였다.

혀는 그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니지만,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게 할 수 있다 (6절).

혀의 불안정한 본성 때문에, 아무도 혀를 믿을 수 없다.

혀는 어느 순간에든지 많은 문제를 일으킬 준비가 되어있다.

야고보는 또한 혀를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에다 비유하고 있는데, 시편 기자는 그 비유를 분명하게 밝혀 주고 있다.  

시편 140편 3절은 “뱀 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니 그 입술 아래에는 독사의 독이 있나이다”는 말로 혀를 독사의 독에다 비유하고 있다.


혀를 가장 선하게 사용하는 방법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을 세우는 것이다


3장 9 -10절: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 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야고보는 상반되는 두 가지 사실을 제시하여 신자들의 극심한 말의 오용을 강조하였다.

한 사람이 혀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그것으로 “주 아버지를 찬송(하는 것)”이다.

“찬송하다”로 번역된 헬라어에서 ‘찬사’ 혹은 ‘조사’를 뜻하는 영어의 ‘eulogy’라는 말이 생겨났다.

야고보의 가차 없는 고발은 믿는 자들이 가장 높은 차원의 말의 사용이 되고 있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에서 쉽게 돌이켜 말의 가장 낮은 차원의 사용이 되고 있는 것으로, 사람들을 저주하는 것이었다.

저주하다”는 말은 어떤 사람에게 악한 일이 생기기를 바라는 것을 뜻한다.

야고보는 특별히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실을 강조하였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형상대로 만드신 사람을 향하여 저주의 말을 내뱉을 권리가 없다.

그의 서신에서 세 번째로, 야고보는 두 마음을 품는 인간의 문제를 지적하였다 (야 1: 7-8, 2: 14 -26 참조).   

여기서 그는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 도다”고 한탄하며, 형제들이 그같이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고 하였다.  


3장 11 -12절: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 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비록 인간의 언어가 일관성이 없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방법이 아니다.

야고보는 자연계로부터 예를 들어 악한 말은 선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자신의 주장을 설명하였다.

두 개의 수사학적인 질문은 “아니오”라는 대답이 요구되는 것으로, 일관성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이 의도된 대답이다.

사해 주변의 지역에서는 짠물이 생성되었다.

그러나, 갈릴리 지역의 샘들은 담수를 쏟아내어 요단 강을 만들었다.

결코 한 샘이 두 가지의 물을 함께 내지 않는다.

야고보가, 독자들을 “내 형제들아”라고 부른 후, 제시한 두 번째의 질문은 “어찌 무화과 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라는 것이다.

그것도 ‘결코 그럴 수 없다’는 분명한 대답이 요구되는 질문이다.   

무화과와 감람 열매, 그리고 포도는 이들 지중해 지역의 사람들이 잘 아는 과일들이었다.

과일 나무는 그 나무와 같은 종류의 열매를 맺는다.

무화과 나무는 무화과 열매를 맺는다.

감람나무에서는 감람 열매가 맺힌다.

포도나무에서는 포도가 열리게 마련이다.

야고보의 독자들은 포도 나무에서 무화과가 그리고 무화과 나무에서 올리브가 열릴 수가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같이 과장된 예들은 마음에 있는 것이 말로 표현된다는 점을 납득시키는데 목적이 있었다.


구속 받은 신자의 입에서는 파괴와 거짓이 아니라, 건강과 치유가 나타냐야 한다. 


한 과일나무에서는 다른 종류의 과일이 열릴 수 없다.

그 같은 예를 든 다음 야고보는 “이와 같이 짠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고 하였다.

인간의 혀에서 발견되는 이중 잣대는 하나님의 다른 창조물에 존재하지 않는다.   

구속 받은 신자의 입에서는 파괴와 거짓이 아니라, 건강과 치유가 나타나야 한다.

신자들은 그들의 말이 그들의 마음 상태를 들여다 보는 창이 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마음의 변화와 혀를 다스리는 일은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가르치는 자들은 높은 수준과 기준을 유지해야 하며, 하나님은 그들이 가르치는 것에 대해 책임을 물으신다.

믿는 자들은 자신들의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믿는 자들은 자신들의 말이 자신들의 마음의 상태를 들여다 보게 하는 유리 창문이 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