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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함으로 온전하게 되는 믿음 - 제 10과 - 2018년 11월 4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야고보서 2장 14 – 26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8-10-28 (일) 12:43 조회 : 46

장년성경연구 교사 지침

2018년 11월 4일 주일 용  

 

제 10 과

 

 

행함으로 온전하게 되는 믿음

 

 

학습구절: 야고보서 2장 14 – 26절

 

성경진리:

참된 믿음은 눈에 보이는 변화를 나타낸다.  

 

주요교리:  구 원

중생”(重生) 또는 “새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은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고후 5: 17).

 

암송구절:  야고보서 2장 17 절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니라  

“In the same way, faith itself, if it is not accompanied by action, is dead.”

 

 

시작하는 글:

 

많은 사람들은 식습관과 운동습관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어떤 사람들은 의사(醫師)의 지시에 따라 특정 음식들을 먹기도 하고 금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체중을 줄이기 위해 갖가지 다이어트를 한다.

기분전환이나 원기회복을 위해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동기가 어떤 것이 되었건, 많은 사람들은 건강에 좋다는 음식을 더 많이 먹으려고 하며 운동을 더 많이 하려고 한다.

 

당신의 삶 속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을 때는 어떤 경우인가

그 같은 변화를 일으킨 원인 혹은 계기는 무엇이었나?

 

 

본문배경설명                                       

 

야고보서 2장 14절부터 26절까지

참된 믿음에는 눈에 보이는 변화가 나타난다.   

그것이 야고보서 2장 14절부터 26절까지의 주제이다.

야고보는 14절부터 26절에서 대화식 방법을 사용하여 그의 독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믿음의 본질을 평가할 수 있도록 설득하였다.

참된 믿음과 행함은 동반자 관계로 계획되었다.

그것은 마치 동전의 앞면과 뒷면의 관계와 같다.

야고보는 선행으로 나타나지 않는 종류의 믿음은 참되지 못하고 가치가 없다고 가르쳤다.

야고보는 믿음으로 생기는 내적인 변화가 외적인 행함으로 분명하게 나타나야지, 그렇지 않을 경우 그것은 구원하는 믿음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야고보가 지적했듯이, 심지어 귀신들도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고 떨기까지 하지만 (약 2: 19), 그들에게는 구원하는 믿음이 없다.

 야고보는 두 가지 구약의 예를 들어 참된 믿음은 실제로 행함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설명하였다.

첫째로, 그는 최초의 히브리 족장인 아브라함의 예를 들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지만 (2: 20-24, 창 15: 6), 그의 참된 믿음은 그의 아들 이삭을 희생 제물로 바치려고 했을 때 행함으로 입증되었다 (창 22: 1 -19).

야고보는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다)”는 말로 그 같은 사실을 설명하였다 (약 2: 22).

풀어서 말하면, ‘행함으로 믿음의 진실함이 입증된 것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아브라함의 예를 들면서 야곱은 말하기를,

둘째로, 야고보는 가나안 땅에 살았던 기생을 예로 들었다.

라합은 여리고 성에서 히브리 정탐꾼들을 보호해 줌으로 자신의 믿음을 나타냈다 (약 2: 25; 수 2: 1 -24).

라합이 정탐꾼들에 베푼 선행은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인정을 받는 일이 되지 않았다.

도리어, 라합의 선행은 여호와에 대한 믿음의 증거가 되었다.

라합은 정탐꾼들을 도와주면서 여호와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분명하게 고백하였다.

라합은 그들에게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고 하였다 (수 2: 11 -12).

결론적으로 말해서, 믿음과 행함의 관계는 마치 몸과 영혼의 관계와 같다.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행함은 구원을 얻기 위한 수단과 방법이 아니라, 구원하는 믿음의 결과가 되고 있다.

 

 

학습구절 연구 

 

죽은 믿음 (야고보서 2장 14 -17절)

 

2장 14절: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이 단원에서 야고보는 자신의 참된 믿음을 입증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단지 신앙고백만 가지고는, 그것이 전통적이고 진실된 것이라 할지라도, 구원을 받는 참된 믿음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이는 피상적인 혹은 거짓된 믿음을 가지고 믿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모태신앙’이나 ‘선행’ 혹은 ‘구원에 대한 자신의 확신’을 내 세우는 경우들이 될 수 있다.   

그 같은 믿음과 주장에 대해 야곱은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라고 하면서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고 묻는다.

야고보가 주장하고 있는 구원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영접함으로, 삶의 변화가 일어나고 행함의 증거가 나타나는 것이 되고 있다.

구원받는 믿음은 일련의 교리적 가르침에 생각으로 동의하거나 마음으로 확신하는 것으로만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구원받는 믿음에 대한 야고보의 가르침은.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고 한 바울의 것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바울도 구원의 믿음은 선행을 만들어 내는 것을 강조하였다 (엡 2: 8 -10).

야고보의 가르침과 바울의 가르침 사이의 한 가지 차이점은 그들의 강조점들이 되고 있다.

바울은 구원이 믿음에 의해 받게 되는 하나님의 선물임을 강조하였다.

야고보도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구원은 결코 노력이나 공로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구원의 선물을 받음으로 삶이 바뀌는 점을 강조하였다.

행함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게 구원의 참된 믿음을 나타내는 증거가 되고 있다.

더욱이, 참된 믿음의 증거로 야고보가 강조한 ‘믿음의 행함’과 구원의 조건으로 바울이 부인한 ‘율법의 행위’는 전혀 성격이 다른 것이 되고 있다.  

 

믿음과 행함의 관계

 

 

원은 행함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받는다

 

 

사도행전 15: 11; 로마서 3: 24, 28; 11: 6;

에베소서 2: 8; 디도서 3: 5

 

 

행함은 구원의 믿음에 대한 증거이다.

 

 

마 5: 16; 7: 17 -18; 요 14: 15; 엡 2: 10;

딛 3: 8; 히 10: 24; 요일 3: 18

 

 

 

2장 15-16절: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야고보는 독자들로 하여금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 “형제나 자매”를 마음에 연상케 함으로 자신의 요점을 설명하려고 하였다.

야고보 당시에는 경제사정이 열악하였고, 많은 사람들은 일용직 일꾼으로 생활하였다.

만일 할 일을 얻지 못해서 몇 일 동안 일을 하지 못할 경우, 많은 사람들은 금방 생활의 어려움과 위협을 느꼈다.

포도원의 품꾼들”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는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해주는 장면이 되고 있다 (마 20: 1 -16).

야고보가 15절에서 등장시킨 “형제” 혹은 “자매”는 헐벗고 그 날 먹을 것조차 없는 가난한 신자였다.

물질적으로 좀더 여유 있는 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그 같은 형제나 자매의 필요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야고보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라고 하였다.

만일 한 성도가 헐벗고 그날 먹을 것조차 없는 형제나 자매에게 말로만 호의와 친절을 베푼다면, 그것이 진짜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될까?

야고보는 2장 14절에 이어 17절에서도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라는 말로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사도 요한도 그의 서신에서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고 하였다 (요일 3: 17). 

그것은 야고보의 주장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말이다.

 

2장 17절: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야고보는 자신이 예를 들어 설명한 것을 요약하여 적용시켜 말하기를,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니라”고 하였다.

여기서 독자들이 이해하고 알아야 될 중요한 일은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한 바울의 가르침과 행함이 없는 믿음은 구원의 믿음이 아니라고 한 야고보의 가르침 사이의 차이점이 되고 있다.

두 사람은 서로 의견의 차이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믿음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갈라디아 지방에서 율법주의를 주장하는 거짓 교사들은 구원을 얻기 위하여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바울은 예수님만이 구원하실 수 있다고 가르쳤다.

반면에, 야고보는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마음에 참된 사랑과 변화가 없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야고보는, 누구든지 믿음이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그 믿음에 행함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가르쳤다. 

 

믿는 자가 자신의 믿음이 참되고 살아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하여 어떤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가?  한 신자가 자신의 삶 속에서 참된 믿음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는가? 

 

행하는 믿음 (야고보서 2장 18 -19절)

 

2장 18절: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야고보는 본문에서 “어떤 사람” 등장시켜 자신의 주장을 대변하게 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양한 영적 은사를 주셨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야고보는 그 사람의 입을 통해 자기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신자에게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라고 하였다.  

성경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너는 믿음이 있(다)”라는 말은 믿음의 은사를 받은 것을 가리키고, “나는 행함이 있(다)”라는 말은 또 다른 영적 은사를 받은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야고보가 이 시나리오에 등장시킨 두 사람은 모두 믿음을 고백한 신자들이 되고 있다.

그런데, 한 사람은 그 믿음을 입으로만 고백하였고, 다른 사람은 행함을 통해 믿음의 증거를 보여주었다.

행함으로 믿음의 증거를 보인 신자는 이제 단순히 입으로만 믿음을 고백한 신자에게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고 도전하고 나선 것이다.

보이다”는 말로 번역된 헬라어는 ‘드러내다,’ ‘입증하다,’ 혹은 ‘증거하다’는 뜻이 될 수 있다.

입으로만 믿음을 고백한 신자는 눈에 보이는 어떤 증거를 제시하고 있는가?

야고보가 도전하고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믿음의 증거, 즉 다른 사람들을 위한 선한 일들이 되고 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로 표현하였다 (엡 2: 10).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는 말씀으로 선한 행실이 나타나는 믿음을 강조하셨다 (요 15: 8).

 

2장 19절: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 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야고보는 이 과에서 믿음과 행함은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사실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를 세 가지를 들었는데, 2장 19절은 그 첫 번째이다.

첫 번째의 예는 믿음을 단지 교리(敎理)나 신조(信條)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언급되고 있다.  

야고보가 그 같은 예로 든 것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는 신앙고백이다.

야고보는 “잘하는 도다”라는 말로 그 신앙고백을 칭찬하였다.

신명기 6 장 4 절은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라고 진술하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유대인들의 기본적인 신앙고백이자 교리가 되고 있다.

야고보가 여기서 지적하며 강조하려는 점은 하나님의 존재를 교리적으로나 신조로 받아들이며 믿는 것만 가지고는 참 믿음의 증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야고보는 “귀신들로 믿고 떠느니라”는 말로 그 같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려고 하였다.   

복음서들과 사도행전에 보면, 귀신들과 귀신들린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그리고 그가 하시는 일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었다 (막 1: 24, 3: 11, 행 19: 15 참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마귀들을 떨게 하였지만, 그것은 구원의 믿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떤 사실을 인정하며 믿는 것과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인정하고 믿는 것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같은 점은 무엇인가? 

 

구원하는 믿음 (야고보서 2장 20 -26)

 

1장 20절: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줄을 알고자 하느냐

 

야곱은 행함이 없는 믿음을 고백하고 주장하는 신도를 “허탄한 사람”으로 불렀다.

‘허탄하다’는 말은 ‘어리석다’라는 뜻이 되고 있다.

이해력이 혹은 지혜가 부족한 사람은 어리석게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래서 야고보는 1장 5절에서 성도들에게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였다.  

여기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줄을 알고자 하느냐”고 물었다.

‘헛되다’라는 말은 ‘쓸모가 없다’ 혹은 ‘비생산적이다’는 뜻이 되고 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쓸모가 없다.

 

2장 21 -24절: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야고보는 믿음과 행함은 분리될 수 없다는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이 단원에서 세 가지 예를 들었는데, 두 가지는 구약에 등장하는 두 인물들로, 아브라함과 기생 라합이 되고 있다.

야고보서의 대부분의 독자층은 유대계 신자들로 이루어져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에게 “우리 조상 아브라함”은 크게 존경 받는 인물이었다.

아브라함의 이름만 대도 그들의 주의와 관심을 끌었을 것으로 보인다.

야고보는 아브라함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주장하였다.   

의롭다 하심을 받다”라는 용어는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의롭다고 선언하심으로 구원을 베풀어 주셨다는 뜻이 되고 있다.

바울도 아브라함의 예를 들었지만, 그는 구원은 믿음으로만 받는 것이지 행위가 아니라는 점을 주장하기 위해 그같이 하였다.

바울은 자신의 요점을 밝히기 위하여 성경말씀을 인용하였는데,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는 말씀이다 (롬 4: 3; 창 15: 6).

2장 23절에서, 야고보도 창세기의 같은 구절을 인용하여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를 의로 여기셨다”고 하였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바울과 야고보는 믿음과 행함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의견의 차이가 없었다.

그들은 서로 다른 두 가지 상황을 다루고 있었으며 믿음과 행함에 관해 다른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사도 바울은 행함이 구원의 전제조건(前提條件)이나 칭의(稱義)의 수단과 방법이 된다고 가르치는 자들을 반박하고 있었다.

야고보는 행함이 믿는 자들에게 선택 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신자들을 반대하고 있었다.

바울과 야고보는 똑같이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 되고 있음을 믿었다.

선행은 바로 그 구원의 믿음에서 흘러 나오는 것이 되고 있다 (엡 2: 8-19 참조).

 야고보는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치고 있는 아브라함을 지적하였다 (창 22: 1 -18).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지만, 그의 믿음에는 그것이 참됨을 증명해주는 행함의 결과가 나타났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다).” 

그의 순종은 그의 믿음이 온전함을 보여 주었다.

헬라어로 온전하게 되었다는 말은 어떤 것을 그 의도된 상태, 즉 성숙된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을 뜻한다.

야고보는 믿음과 행함의 협력작용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여러분은 분명히 아브라함의 믿음이 행함 속에서 역사한 것과 행함으로 참 믿음이 입증된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2: 22).

그런 다음, 그는 결론적으로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고 하였다.  

 

믿음과 행함을 경쟁자가 아니라, 협력자로 보는 것이 왜 중요한가?

 

2장 25절: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마지막으로, 야고보는 “기생 라합”의 예를 들어서 믿음과 행함이 어떻게 일하는지를 보여주었다.

기생 라합의 선택은 아브라함과 극적인 대조를 이루었다. 

아브라함은 유대인들의 조상으로 존경을 받았다.

라합은 이방인이었고 죄인이었다.

라합은 이스라엘 자손이 약속의 땅을 정복 할 때 여리고 성에 살았었다 (수 2: 1 ~ 21).

여리고 성을 정탐하러 왔던 두 명의 히브리인 정탐꾼은 기생 라합의 집에 유숙하였는데, 라합은 큰 위협을 무릅쓰고 그들을 보호해 주고 안전하게 피하도록 도와주었다.

그때 라합은 히브리 정탐꾼들에게 그들의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였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수 2: 11).

라합은 단지 말로 믿음을 고백하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고, 이스라엘의 사자들을 보호해 주고 도와주었던 것이다.

야고보는 라합이 그같이 행한 것을 보고,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고 하였다.

라합의 믿음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서도 행함으로 나타낸 것이었다.

신약성경은 라합을 믿음으로 행한 믿음의 선진들의 대열에 포함시켰다 (히 11: 31).

그뿐 아니라, 라합은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 (마 1: 5).

 

2장 26절: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야고보는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는 말로  

믿음과 행함의 관계에 대한 논쟁을 결론지었다.

믿음과 행함의 관계는 마치 몸과 영혼의 관계와 같다.

창세기 2장 7절에서, 하나님이 최초의 인간을 지으셨을 때, 먼저 흙으로 몸을 만드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셔서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몸은 눈으로 볼 수 있지만, 영혼은 볼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이 죽을 때 영혼은 몸을 떠난다.

야고보는 2장 17절에서 말한 것처럼, 여기서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하였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신자가 자신이 고백한 믿음에 순종과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 그것은 참 믿음이 아니다.

●  참 믿음은 지적으로 받아들이고 따르는 것 이상의 것이 되고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전적으로 신뢰함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되고 있다.

●  참 믿음은 믿는 자를 움직여 경건한 삶을 살게 해 준다. 

  

당신은 믿음을 고백하고서도 자신의 구원에 대해 확신이 없고 의심하기 시작하는 신자들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가?

그들이 그 같은 의심을 극복하도록 돕기 위해, 오늘 배운 내용들 중 어떤 것들을 사용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