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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의 삶 - 제 9과 - 2018년 10월 28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야고보서 1장 19 – 27절; 2장 1 -4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8-10-23 (화) 13:43 조회 : 40

장년성경연구 교사 지침

2018년 10월 28일 주일 용  


제 9 과



순종의 삶



학습구절: 야고보서 1장 19 – 27절; 2장 1 -4절


성경진리:

신자들은 예수님께서 그들의 삶 속에서 행하시는 일에 대해 순종과 사랑으로 응답한다.


주요교리:  구 원

회개란 진정으로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며,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과 구세주로 영접하고 그에게 마음과 몸을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다 (막 1: 15).


암송구절:  야고보서 1장  22 절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Do not merely listen to the word, and so deceive yourselves. Do what it says.”



시작하는 글:


편지가 먼 곳에 있는 사람과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때, 사람들은 답장을 받기까지 여러 날을 기다려야 하였다.

전화, 전자메일, 문자메시지, 및 소셜 미디어 등은 그 같은 기다림에 대한 우리의 기대치들을 바꾸어 놓았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답장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상상하지 못한다.


전자 메일, 텍스트 메시지, 또는 소셜 미디어 게시물에 대한 응답을 받는 현실적인 기대치는 무엇인가?  메시지의 출처는 당신의 응답 속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본문배경설명


야고보서 1장 19절부터 2장 13절까지

 야고보는 신자들에게 삶의 시련을 겪는 동안에도 인내하고 믿음을 굳게 지키며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말로 그의 서신을 시작하였다.

시련은 보는 관점에 따라 결과가 180도 달라질 수 있다.

시련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목적을 깨달을 때, 우리는 시련을 기쁨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시련 가운데서도 신자의 믿음이 행함으로 나타날 때, 그것은 참된 믿음의 증거가 되며 영적 성장과 성숙을 이루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신자들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과 관계를 통해 성장하기도 하지만, 시련을 통해 성숙한다.

시편기자는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고 하였다 (시 119: 71).

그런 다음 야고보는 금주의 본문인 1장 19절부터 2장 13절까지에서 그의 초점을 바꾸어 성숙한 신자들에 대한 높은 기대에 관심을 돌렸다.  

점점 자라나며 성숙해 지는 믿음은 그리스도인들의 매일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믿는 자들은 믿음을 행동과 삶으로 옮기는 방법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지침이 필요하다.

야고보는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그 지침이 됨을 지적하였다 (1: 19 ~ 22).

그는 신자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듣고 행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고 그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라고 하면서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고 하였다.

겸손한 신자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방해가 되는 태도와 행동들을 벗어 버린다.  

믿는 자들은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한다.

믿는 자들은 말씀으로부터 배워야 하고 그 말씀을 행하여야 한다 (1: 22 -25).

야고보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하면서,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거울로 자기 얼굴을 보고 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즉시 잊어 버린 사람과 같다고 하였다.

믿는 자들이 말씀을 행할 때, 순종의 결과가 나타난다.

하나님은 말씀을 행하는 신자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야고보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자비로운 사랑과 도덕적 순결이 나타나는 경건한 인격을 지닌다고 하였다 (1: 26 - 2: 4).

야고보는 교회 내에서의 차별과 편애의 문제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것은 사랑에 대한 어떤 주장도 부정하는 일이 되고 있다.

참된 경건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으며 고아와 과부들을 돌본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구별하거나 차별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똑같이 귀중하게 생각한다.

그는 설명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최고의 법”을 잘 지키기를 기대하신다고 하였다 (2: 5-13).

야고보는 최고의 법을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것으로 정의하였다(레 19: 18).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가장 높은 목적과 의도를 어기는 일이 되고 있다.



학습구절 연구 


말씀에 주의(注意)함으로  (야고보서 1장 19 -21절)


1장 19 -20절: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야고보는 그의 독자들을 “사랑하는 형제들”로 부르면서 “너희가 알지니”라고 하였다. 

그 것은 독자들의 주의와 관심을 끌며 집중시키기 위한 목적의 말로, “너희가 잘 들을지니”라는 말로 바꾸어 쓸 수 있다.

그가 하려는 말은 믿는 자들 모두가 꼭 들어야 될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19 절에서 그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세 가지 중요한 권고의 말을 하였다.

먼저, 야고보는 독자들에게 “듣기는 속히 하(라)”고 하였다.

그것은 18절에서 언급된 “진리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듣는 일이 되고 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였다 (롬 10: 17).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큰 기대감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

둘째로, 야고보는 독자들에게 “말하기는 더디 하(라)”고 하였다.   

그 말은 ‘깊이 생각한 후에 말하라’는 뜻으로 바꾸어 쓸 수 있다.

인간 생활에서 강조하고 강조해도 부족한 것을 들라면 ‘말의 중요성’이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하느냐는 일상생활에서뿐 아니라, 믿음의 생활에서 매우 중요하다.  

잠언은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라는 말로 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잠 18: 21).

사도 바울은 믿는 자들에게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덕을 끼치게 하라”고 하였다 (엡 4: 29).   

셋째로, 야고보는 “성내기도 더디 하라”고 하였다.

그 것은 화나 분으로 표현되는 감정을 잘 다스리라는 뜻의 말이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불의를 보고 화나 분을 낼 수 있지만, 여기서 ‘성을 낸다’는 말은 폭발적인 혹은 파괴적인 성격의 감정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분이나 화에게 지배를 받을 것이 아니라, 잘 다스려야 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하였다 (엡 4: 26 -27).

잠언은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한다 (잠 16: 32).         

야고보는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라고 하였다.   

분노는 하나님의 목적을 훼손시킬 수 있다.

“하나님의 의”라는 말을 사도 바울은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선물로, 즉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반해 (롬 5: 17), 야고보는 3장 18절에서 말한 것처럼, ‘의의 열매’ 혹은 ‘의로운 삶’을 강조하고 있다.  


‘속히 듣는 것’과 ‘더디 말하는 것’그리고 ‘분을 더디 내는 것’의 세 가지 중에

어느 것이 하기가 쉬운가?  가장 하기가 힘든 것은 어떤 것인가?  설명해 보라. 

            

1장 21절: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그러므로”라는 말은 앞에서 언급한 파괴적인 분노심에 대한 경고와 뒤에 나오는 권면의 말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올바른 삶을 나타내기 위해서 믿는 자들은 “성내기도 더디(해야 할 뿐)” 아니라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려(야)” 한다.

내버리다”라는 핼라어는 ‘벗어서 버리다’는 뜻이 되고 있다.

야고보가 묘사하고 있는 것은 한 사람이 낡고 더러워진 옷을 벗어서 버리는 것처럼 악한 태도와 행동들을 벗어버리는 것이다.

야고보는 “악”이 넘쳐나는 것으로 묘사하였다.

그 모든 것들을 벗어버린다는 말은 그같이 하면 믿는 자들이 죄 없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 아니다.

죄를 버리거나 피하는 일은 믿는 자들이 하늘 나라에 갈 때까지 평생 동안 힘써야 될 목표와 과정이 되고 있다.

믿는 자들은 죄가 많고 사악하며 부도덕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 같은 세상 속에서, 믿는 자들은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아야)” 한다.

핼라어로 “온유함으로”라는 말은 ‘가르칠 수 있는 태도’와 ‘배우려는 마음’을 가리킨다.  

헬라어로 “심어진”이라는 말은 ‘태어나는 것’ 혹은 토양에 뿌려진 씨앗처럼 ‘심겨지는 것’을 뜻할 수 있다.  

말씀”이라는 용어는 복음 혹은 진리의 말씀을 가리키고 있다.

‘마음에 심어진 말씀’이라는 말은 말씀에 열려있는 마음, 말씀을 받아들이는 마음, 말씀이 싹이 나서 뿌리를 내리도록 기다리는 마음 등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라는 말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악하고도 파괴적인 죄의 영향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준다는 뜻이 될 수 있고,

또 다른 하나는 구원을 온전하게 이루는 것을 뜻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성도들에게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하였다 (빌 2: 12).


말씀을 행함으로 (야고보서 1장 22 -25절) 


1장 22절: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야고보는 말씀을 듣는 것 자체가 믿음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위험성을 지적하였다.

마음에 심어진 말씀”은 (21절) 싹이 나고 자라나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고 성령의 열매와 행함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신자들의 믿음 생활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마음에 받아들이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되고 있다.  

그래서 야고보는 믿음의 성도들에게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는 자)”가 되지 말라고 하였다.

헬라어로 “행하는 자가 되(라)”는 말의 시제는 지속적인 행동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지속적인 생활 방식이 되고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는 말씀으로(눅 11: 28), 말씀을 듣고 행하는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야고보는 말씀을 들었다고 주장하면서 그대로 행하지 않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일로 규정하였다.  


1장 23 -24절: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야고보는 일상 생활로부터 한 예를 들어 “진리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그 말씀에 따라 행하지 않는 것이 전적으로 부적절함을 강조하였다.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것)”은 실제의 경우가 되고 있다.

어떤 신자들은 설교와 성경공부 혹은 소 그룹모임을 통해 진리의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 믿음생활을 잘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야고보는 그같이 하는 신자들을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에다 비교하였다.

1 세기 당시의 거울들은 놋쇠나 구리 판에 광택을 내서 만든 것이었다.

가장 좋은 거울이라도 울퉁불퉁하고 흐릿하여 얼굴을 희미하게 비추었고 온전하게 볼 수 없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얼굴을 거울에다 비추어보고 얼굴에 더러운 것이 묻었으면, 지워버린다.

요즘은 거울이 좋아서 여자들은 거울을 보고 얼굴을 아름답게 치장을 한다.

사람들이 거울을 보는 목적은 자기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리고 얼굴에 더러운 것이 묻지 않았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야고보는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는 신자들을 거울에다 자신을 비쳐보고 돌아서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는 사람에다 비유하였다.

야고보의 요점은 분명하다.

거울에 자신을 언뜻 비쳐보기만 하고 곧 잊어버리는 사람처럼,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영적 성장과 성숙에 아무런 도움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야고보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울에다 비유하였다.

이와 같이 성경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나타내 주며 우리 모습을 비추어준다.  


1장 25절: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본문 구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들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는 말이 되고 있다.   

야고보는 그리스도께 진정으로 헌신된 성도의 세 가지 특징을 들었다.

첫째로, 참된 신자들은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고 있는 자”이다.  

여기서 “들여다 보고 있(다)”는 말은 어떤 것을 자세하게 살피기 위해 몸을 굽혀서 보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란 말은 복음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죄인들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죄와 죽음의 권세로부터 자유를 얻었다.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에 오신 것은 율법을 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는데 (마 17), 모세의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전한 율법”이 되었다.

둘째로, 신실한 신자는 진리의 말씀을 집중하여 열심히 들을 뿐 아니라, 잊지 않도록 마음에 새겨 놓는다.

그 말은 어떤 것을 끊임 없이 계속한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셋째로, 그리스도께 헌신된 신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라, 행하는 자이다.

야고보에게, 참된 신자는 듣고 배운 것을 행하는 사람이다.


사랑을 베풀므로 (야고보서 1장 26 -27; 2장 1 -4절) 


1장 26절: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그리스도인의 인격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들 중의 하나이자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되고 있다.

야고보는 “스스로 경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 말하였다.

야고보는 “경건하다”는 말을 어떤 의미로 사용하였는가?

그 용어는 외적으로, 그래서 관찰할 수 있는 믿음의 삶의 특성들을 가리키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경건 혹은 종교적인 행위를 기도하는 것, 금식하는 것, 헌금하는 것, 예배에 참석하는 것, 및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것으로 다른 독실한 일들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야고보에 따르면, 그렇지 않았다.

야고보는 참된 경건은 복음에 의해 변화된 마음에서 생기는 일들로 보았다.

야고보는 바른 동기에서 비롯된 경건의 몇 가지 예를 들었다.

첫 번째의 예는 말을 바르게 잘하는 일, 즉 혀를 다스리는 일이 되고 있다.

우리는 “말하기는 더디하(라)”고 한 야고보의 명령을 회상하게 된다 (1: 19).

야고보는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는)” 경건은 쓸모 없는 “헛것”이라고 하였다.

야고보는 쓸모없는 경건에 사로 잡힌 사람은 자기 마음을 속이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참된 경건은 하나님에 의해 변화된 삶에서 나온다.

인간의 노력은 항상 부족하다.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그리스도인의 품격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들의 하나로 가장 두드러진 것이 되고 있다


1장 27절: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혀를 재갈 물리는 것 외에도, 믿는 자는 자신의 믿음을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을 통해 나타낸다.

1장 27절에서 야고보는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믿음을 나타내는 일들을 열거하였다.

그는 특별히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경건을 예로 들었다.

1 세기 문화권에서, 고아와 과부는 사회에서 아무 신분적 지위나 자신들을 부양(扶養)할 능력이 없었다.

돌보다”는 말은 "도와주다”의 뜻이 되고 있다.

그리고 ‘환난’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고통의 뜻을 담고 있다.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는 일)”은 시간과 돈이 들고, 힘들고 어려움이 따르며, 고맙다는 말을 듣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실한 믿음의 성도들은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돌보아 줌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베풀기를 힘쓴다.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사역



하나님께서는 고아와 과부에게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갖고 계신다.



신 10: 18; 시 10: 14 -18; 68: 5; 146: 9;

호 14: 3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고아와 과부들을 돌보아 주라고 명하셨다.


출 22: 22 -24; 신 24: 17; 27: 19; 시 82: 3; 사 1: 17; 스 7: 10; 약 1: 27



야고보는 또한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을 참된 믿음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의 증거로 강조하였는데, 이 말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세상의 죄악과 그 영향력이 되고 있다.

신자들의 목표는 죄 많은 악한 세상에서 믿음을 굳게 지키는 것이다.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려면, 신자들은 매일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이루기를 힘쓰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님도 세상을 떠나시기 전 제자들을 위한 마지막 기도에서 그들이 “악에 빠지지 않게” 되기를 기도하셨다 (요 17: 15).


2장 1절: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야고보는 당시 교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던 것이 분명해 보이는 상황을 설명함으로써 참된 경건의 주제를 계속 다루었다.

야고보는 믿음의 성도들을 “내 형제들아”라고 부르면서,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고 하였다  

차별하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며 구별한다는 뜻이 되고 있다.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에서는 예수님의 신(神)적인 존재와 구세주와  메시야가 되심이 강조되고 있다.

믿는 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는 방법의 하나는 차별을 하지 않는 것이다.

외모나 인종, 혹은 경제적 상태나 사회적 지위에 근거하여 사람들을 구별하고 차별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의 규범을 어기는 악한 일이 되고 있다.   



2장 2 -4절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 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야고보는 낯선 두 방문자가 모임에 참석하러 회당에 나온 예를 들었다.

회당”이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유대인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이는 장소를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헬리어로 ‘시나고그’(synagogues)란 그 용어는 다른 모임 장소를 가리킬 수도 있다.

야고보는 교회 모임을 가장 염두에 두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 사람은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 들어왔다.

손에 끼고 있는 값진 보석과 몸에 입고 있는 멋진 의복만 보더라도, 그는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었고 중요한 사람처럼 보였다.

두 번째의 사람은 “남루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가 입고 있는 옷만 보아도 가난한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었고,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분명해 보였다.


외모나 인종 혹은 경제적인 상태나 사회적 지위에 근거하여 사람들을 구별하고 차별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의 규범을 어기는 악한 일이 되고 있다.


“하면”이라는 조건부에서 나타나고 있듯이, 3절은 야고보가 예측해서 한 말이 되고 있다.

교인들은 화려한 옷차림을 한 사람에게는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라고 하면서 특별한 호의를 보였다.

교인들은 가난한 사람에게는 정반대로 대하였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고 하였다.

그 말은 뒤쪽으로 가서 서 있든지 아니면 마루 바닥에 앉으라는 뜻이 될 수 있다.

그같이 말한 후에 야고보는 그 같은 차별을 호되게 꾸짖었다.

그는 교인들에게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이냐”고 물었다.

그들은 예배를 법정으로 바꾸어서 두 방문자를 외모로 판단했던 것이다.

야고보의 주장은 그의 독자들도 알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레위기 19 장 15 절과 유사하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하라)”고 하셨다.

사람들을 차별하는 일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 되고 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신다 (롬 2: 11; 엡 6: 9); 골 3: 25).

하나님은 마음을 보신다.

야고보는 교인들이 사람들을 편애하는 것을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것에 비겼다.

그들은 외모에 근거하여 판결을 내렸던 것이다.


야고보는 신자들에게 말은 신중하고도 조심스럽게 하고, 궁핍한 사람들을 사랑으로 돌보아 주며, 모든 사람들을 공평하게 대우하라고 경고하였다.

그의 말은 오늘 날 믿는 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말과 행동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동정심 그리고 공의를 나타내야 한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에 주의하며, 믿음 생활에 장애물이 되는 것들을 제거해 버려야 한다.

●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에게 계시된 진리에 따라 살아간다.

●  믿는 자들은 말과 행동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동정심과 공의를 나타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