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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의 삶 - 제 8과 - 2018년 10월 2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야고보서 1장 2 -15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8-10-17 (수) 03:29 조회 : 45

장년성경연구 교사 지침

2018년 10월 21일 주일 용  

 

제 8 과

 

 

인내의 삶

 

 

학습구절: 야고보서 1장 2 -15절

 

성경진리: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시련과 역경을 이길 수 있다.

 

주요교리:  성화의 삶

성화는 체험의 과정으로, 믿음으로 새로 태어날 때 시작되며, 믿는 자들은 그 성화의 과정에 의해 하나님의 일에 택함을 받으며, 성령님의 임재와 능력을 통하여 영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성장하며 성숙해 간다,

 

암송구절:  야고보서 1장  2 -3절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Consider it pure joy, my brothers and sisters, whenever you face trials of many kinds, because you know that the testing of your faith produces perseverance.”

 

 

시작하는 글:

 

우리의 삶 속에서는 갖가지 문제와 시련이라는 불청객이 찾아 올 때가 많다.

그들은 아무 경고도 없이 오며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많은 경우 우리에게 남는 것은 답이 없는 질문들이 되고 있다.

우리는 그것들을 견디어내는 방법을 알려고 몸부림칠 때도 있다.

사람들은 자주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것으로 시련에 대처한다.

그들은 화를 내며 이겨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삶의 시련들을 겪을 때, 하나님은 우리가 그 같은 시련들을 어떻게 대처하기를 원하실까?

삶의 시련과 어려움을 겪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것을 이길 수 있도록 그의 지혜를 구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문제나 질문에 답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가 시련과 역경을 이기고 믿음이 더 강하게 자라며 성숙해 지는데 필요한 지혜와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주신다.

 

 

본문배경설명                                       

 

야고보서 1장 1절부터 18절까지

야고보는 예수님의 형제였고 순교 당하기 이전까지는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다 (갈 2: 9, 12).

야고보는 그의 서신을 당시의 전형적인 서신 형식을 따라 먼저 “야고보”라는 발신자인 자기 이름과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라는 수신자의 이름을 밝히는 인사로 시작하였다 (1: 1).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라는 말은 스데반이 순교를 당한 후 핍박으로 인해 예루살렘으로부터 흩어졌던 신자들을 가리켰을 것으로 보인다 (행 7: 54 -60; 8: 1 -4).

야고보는 시련을 겪은 신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서신을 썼다.

야고보는 시련에 대해 취해야 될 바른 태도를 말하였다 (1: 2 -4).

그는 시련이 믿음을 성장시키며 성숙하게 하는 방법과 수단이 됨을 지적하였다.

시련의 마지막 결과가 성숙한 믿음이 되고 있는 것을 알 때, 믿는 자들은 삶 속에서 시련을 겪을 때 그것을 기쁘게 여길 수 있다 (1: 2).

야고보는 신자들에게 인생의 시련에 직면 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구하라고 하였다 (1: 5 ~ 8).

하나님은 지혜를 구하는 신자들에게 후하게 베풀어 주신다.

지혜가 부족한 자들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야고보는 그의 독자들에게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고 하였다 (1: 6).

야고보는 그의 독자들에게 이 땅의 것들은 일시적인 것인 반면에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은 영원하다는 사실을 상기 시켜 주었다.

현재의 시련들은 순종하는 신자가 장차 받을 “생명의 면류관”에 비하면 아주 작은 것이다 (1 : 9-12).

그리스도인들은 외적인 시련에 맞서고 있지만 유혹의 형태로 내적인 시련을 겪었습니다 (1 : 13 -15).

그리스도인들은 외적인 시련에 맞서 싸우고 있지만, 또한 유혹의 형태로 내적인 시련을 겪기도 한다 (1: 3 -15).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믿음이 약하여 유혹에 이끌리고 죄에 빠져 하나님을 비난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믿음의 생활을 잘 해야 한다.

야고보는 하나님은 후하시고, 사랑이 많으시며, 변함이 없으시다고 단언하였다 (1 : 16-18).

그리스도인의 매일의 삶의 투쟁은 현실적인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불완전하고 죄 많은 세상에서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붙들어 주시며, 확신과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해 주신다.

 

 

학습구절 연구 

 

믿음이 자라나는 것으로 인한 기쁨 (야고보서 1장 2 -4절)

 

1장 2 -4절: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야고보는 그의 독자들에게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하였다.

아무도 어려운 상황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 기쁨이라는 용어는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며 도와주신다는 확신에서 생기는 영적 기쁨이 되고 있다.

외적인 상황이나 여건은,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관계 없이, 신자의 기쁨이나 확신을 결정하는 요인이 아니다.

삶의 어떤 폭풍이 불어 닥칠지라도, 우리는 믿음 가운데서 확고한 기쁨을 경험할 수 있다.

시련은 예상할 수 없거나 비논리적일 수 있으며, 종종 우리의 삶 밖에 있는 세력으로부터의 공격이 될 수 있다.

시련이란 말은 걱정이 되는 문제나 고난 또는 불행을 의미 할 수 있다.

시련은 “여러 가지” 형태를 취할 수 있다.

끝나지 않는 목록에는 육체적인 질병, 두려움, 의혹, 공포, 슬픔 및 경제적 어려움 등이 포함될 수 있다.

당시 야고보의 독자들은 물론 오늘 날 세계적으로 많은 신자들에게, 그 목록은 핍박을 포함할 수 있다.

야고보는 시련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일상적인 부분이 되고 있음을 강조할 목적으로 “당하거든”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문제는 만일 그들이 시련을 겪게 되거나 당하게 된다 면이 아니라, 당할 때이다.  

시련이라는 헬라어에서 “해적”이라는 말이 파생되었다.

시련은 해적처럼 매복하고 있다가 불시에 성도들을 엄습한다.

 

당신의 믿음은 참된 것인가?  시련은 당신의 믿음의 실체를 드러내 준다.

 

야고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는 말로, 그의 독자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것은 시련이 “믿음의 시험”이 된다는 것과 그 믿음의 시험이 “인내”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이 되고 있다.

어떤 것을 시험한다는 것은 그것이 참된 것인지 아닌지를 증명하는 것이다.

당신의 믿음은 참된 것인가?

시련은 성도의 믿음이 진실하고 참된지를 증명해 준다.

야고보는 성도들에게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고 하며,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는 말은 시련의 목적을 온전히 이루라는 뜻이 되고 있다.

그리고 “온전”이라는 말은 죄가 없거나 흠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시련을 통해 성도의 믿음이 더욱 성숙해 지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지는 것을 가리킨다.

아무도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온전히 이루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러나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완전한 형상을 이루어나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야고보서의 주요 주제

 

1. 야고보는 독자들에게 시련을 긴 안목으로 바라보도록 요구하고 있다.

2.  참된 신앙은 한 사람의 태도와 말 그리고 행동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하나님께 대한 확신 (야고보서 1장 5 -8절)

 

1장 5절: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야고보는 그의 독자들에게 삶의 시련을 당할 때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고 하였다.

지혜의 개념은 유대교에 기초한 사람들과 헬라 문화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의미를 지녔다.

헬라 문화권에서 지혜는 지적으로 뛰어난 것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지혜는 지식 이상의 것을 의미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따라 행하는 것을 뜻하였다.

그리스도인들도 그 같은 종류의 지혜를 추구해야 한다.

모든 신자는 어떤 시점에서 지혜가 부족하다.

지혜의 가치는 신자들이 지혜의 원천이자 목표인 그리스도를 닮아가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는 최종적인 결과에 달려있다 (4 절 참조).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없으면,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목적을 확실히 알고 실현하기에 부적절하다.

우리는 어떻게 시련을 이기는데 필요한 자원인 하나님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가?

야고보는 그의 독자들에게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였다.

그런 다음 말하기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하였다.

 

1장 6 -8절: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야고보는 지혜를 구하는 신자의 기도에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 그는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구하는 자가 꼭 믿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지혜를 주시기를 원하시며 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야고보는 “의심하는 자”를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에다 비겼다.

물결이 바람에 밀려서 요동하는 것처럼, 의심하는 자도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그릇된 생각들과 의심으로 이리저리 밀려다니고 있다.

7절에서, 야고보는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였다.

야고보는 의심하는 자를 두 가지 방법으로 묘사하였다.

첫째로, 그는 “두 마음을 품(은 자)”라고 하였다.  

둘째로, 그는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라고 하였다.    

우유부단 함은 하나님의 길에 대한 충성과 죄의 길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사람의 특징이 되고 있다.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들은 결심하지 못한다.

아무도 동쪽과 서쪽을 동시에 바라볼 수 없다.  

 

자신의 말로 지혜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겠는가?  지혜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강화시켜 주는가?

 

생명의 면류관에 초점을 맞춘 삶 (야고보서 1장 9 -12절)

 

1장 9 -10절: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우리는 인생을 제한적인 관점으로 본다.

우리는 ‘지금과 여기’라는 수렁에 빠져, 이 세상의 문제들이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지배하게 만들 수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영원한 관점에서 보신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는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관점에서 삶을 바라보고 경험하게 해 준다.

가난과 부요의 예를 들어, 야고보는 인간의 관점과 하나님의 관점의 차이를 설명하였다.

가난 자체가 심각한 시련이 될 수 있다.

야고보는 “낮은 형제”라는 말로 가난을 대표하였다.

형제”는 동료 기독교인을 의미하였다.

낮은”이란 말은 가난하고, 억압을 당하며, 천하며,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취급 받는 것을  묘사해 준다.

당시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어려움과 차별을 당하고 고통을 겪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노예나 종으로 살았다.

병이 들면 치료비를 내지 못하여 병에 시달리며 고통을 겪는 사람들도 많았다.

가난한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단계에 처해 있었고, 일반인에게 중요하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많은 경우, 가난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기피의 대상이 되었다.

초대 교회역사를 보면,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계층의 사람들이었다.

어쩌면, 야고보는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에서 썼을 수 있다.

누가는 예루살렘 기독교인들이 살았던 당시의 어려운 상태를 기록하였다.

기근과 핍박으로 인해 예루살렘의 많은 신자들은 극심한 궁핍과 억압을 겪었다.  

그 같은 상황은 예루살렘 밖의 신자들로 하여금 구호 활동을 벌리게 하는 계기까지 되었다  (사도 행전 11: 28 ~ 29 참조).

초대 교회역사를 보면,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계층의 사람들이었다.

야고보는 가난하고 억압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라)”고 하였다.

문맥으로 볼 때, ‘자랑한다’는 말은 자랑거리로 삼는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들을 돌 보아주시는 것으로 인해 기뻐하며 감사한다는 뜻이 되고 있다.

가난한 성도들은 가난한 것으로 인해 영적 축복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난한 것으로 인해 하나님을 더 믿고 의지하면, 가난은 영적 축복과 부요함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야고보는 이제 부자들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그는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나”라는 말로, 부자들은 겸손해 지기를 힘쓸 것을 당부하였다.

먼저 부자들은 하나님께서 재물을 주시며 또 그것을 가져가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야고보는 부자들이 영적으로 낮아짐을 자랑해야 될 이유는 그들이 “풀의 꽃과 같이” 곧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1장 11절: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지중해의 기후는, 이른 아침에는 푸른 풀과 꽃에 이슬이 내린다.

그러나, 해가 나면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려)” 버린다.

뜨거운 바람은 사막의 열풍을 가리키고 있다.    

메마른 사막지대에 내려 쪼이는 태양열은 뜨거운 열풍을 만들어 풀들을 시들게 하거나 말려버린다.

꽃잎들도 떨어져서 한 때 뽐내던 아름다운 모습과 자태는 없어져 버리고 만다.

야고보는 부자들을 사막의 꽃에다 비교하였다.

그는 결론적으로 말하기를,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고 하였다.

부는 한 동안 즐길 수 있다.

그렇지만, 부의 일시적인 성격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시신에 입히는 옷에는 주머니가 없다고 한다.

그것은 인간이 죽으면 아무 재물도 가져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궁극적으로, 부자도 가난한 자와 똑같이 이 세상을 떠난다.

그러므로, 경건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모든 신자들의 최종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인생의 덧없음은 물질적인 것들에서 안전을 얻으려는 것에 대한 경고가 되고 있다.   

 

1장 12절: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야고보는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는 말로, 시험을 이긴 성도가 받는 복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 복은 부자든 가난한 자이든 관계 없이 받는 것이다.

그 복은 시련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련 혹은 시험을 이기는 데에 있다.

참된 믿음으로 시험을 이기는 것은 승리 자체가 되고 있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나 팀이 승리를 하면 승리를 축하하며 기뻐한다.

그런데, 그 승리에는 혜택이 있는데, 그것은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 일이다.

면류관”으로 번역된 용어는 당시에 운동경기에서 승리한 선수의 머리에 씌어주었던 월계관이었는데, 야고보는 그 용어를 여기에다 사용하였다.

실제로 면류관의 가치는 경기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잘 마쳐서 승리를 거둔 것에 대한 인정과 찬사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믿음의 시련을 잘 이겨내고 믿음의 승리를 한 성도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계 2: 10). 

인내를 온전히 이룬 성도들에 대한 상급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이다.

하나님은 충실한 신자들에게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성숙해 가도록 그와의 관계를 누리는 복을 베풀어 주신다.

 

시련은 어떻게 신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목표들을 재조명하고 재정립하게 해주는가?

시련을 당할 때, 영생에 대한 약속은 어떻게 희망을 주는가?

 

죄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라 [1장 13 -15절]

 

1장 13절: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 하시느니라

 

야고보가 13절부터 15절에서 ‘시험을 받다”는 말로 사용한 용어는 2절의 ‘시험을 당하다’로 사용된 용어와 같은 어근이 되고 있다.

첫 번째 용어는 어려운 상황을 묘사하는 것으로 보고 두 번째의 것은 시험으로 묘사하는 것은 완전히 정확한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이 시련 혹은 시험을 당할 때, 그 사람이 그 시련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시험”은 ‘믿음의 시련’으로 그의 믿음을 성숙하게 만들 수 있지만, ‘유혹으로’ 죄를 짓게 만들 수도 있다.

시험이 유혹이 될 경우, 믿는 자들 안에서는 싸움이 일어난다 (롬 7: 21 -24).

인간은 죄를 지을 경우,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행한 이래 (창 3: 12), 그 죄에 대한 책임을 남에게 돌리려는 속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유혹의 존재를 어떻게 설명 해야 할까?

어떤 사람들은, 아담처럼, 그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려고 한다.  

그 같은 생각에 대해, 야고보는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라며 강하게 반박하였다.

야고보는 유혹이 하나님으로부터 올 수 없는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하였다.

첫째로,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 아니하신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죄를 짓도록 유혹을 받으실 수 없다.

둘째로, 하나님은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신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우리가 옳고 바른 것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허용은 하시지만 (창 22: 1; 욥 1: 12), 죄를 짓도록 유혹은 하지 않으신다.

 

왜 사람들은 종종 자신들의 죄에 대해 하나님을 비난하려고 하는가?

 

1장 14 -15절: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야고보는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라는 말로 시험 혹은 유혹의 원천(源泉)에 대해 설명하였다.  

14절에서 사용된 “끌려 미혹됨이니”라는 헬라어는 낚시질을 연상케 하는 말이 되고 있다.

‘끌려가다’는 말은 물고기가 낚시에 걸려 물 밖으로 끌려가는 상태를 보여준다.

미혹되다’라는 말은 물고기가 낚시를 물도록 유혹하기 위해 낚시에 달린 미끼를 물고기 앞에 내려 놓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신자들을 유혹하여 낚시에 걸리게 하는 미끼는 무엇인가?

범인(犯人)은 욕심이 되고 있다. 

인간의 욕구(欲求)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욕구에는 선한 것과 악한 것이 있다.

본문에서 언급되고 욕구는 하나님의 뜻밖에 있는 것을 얻으려고 하는 것으로, 유혹에 이끌리는 욕심이 되고 있다.

유혹을 받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유혹에 넘어갈 때 죄가 된다.

예수님도 사탄의 유혹을 받으셨지만, 죄를 짓지는 않으셨다.

야고보는 아기의 임신과 출생 그리고 성장의 예를 들어 유혹에 넘어가 악을 선택한 결과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욕심이 잉태한즉”이라는 말은 한 사람의 의지가 욕심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된 상태를 묘사해주고 있다.

그 같은 일이 일어날 때, 결과적으로 잉태되는 것은 “죄”로, 죄는 삶의 규범과 행위를 위한 하나님의 목표 혹은 표적을 놓친 것을 가리킨다.  

야고보는 또한 경고하기를,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느니라”고 하였다.

야고보는 영적 죽음을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끊임 없이 시험에 드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부족하다는 증거이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는 신자들이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따라 살기를 힘쓰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유혹을 물리치는 것을 의미한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하나님은 삶의 시련을 사용하여 신자들의 믿음이 자라나며 성숙하게 해 주신다.

  신자들은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수 있다.

  신자들은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사는 영생의 삶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의 시련들을 견딜 수 있다.

  신자들은 삶의 시련들로 인하여 죄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삶의 시련들은 어떻게 당신의 삶 속에서 당신에게 영적 성숙을 이루게 하는 힘과 요인이 되었는가?  그 같은 상황을 사용하셔서 영적인 당신의 삶을 형성시켜주시고, 빚어주시고, 도야(陶冶) 시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