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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자유 - 제 5과 - 2018년 9월 30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갈라디아서 4장 8 -20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8-09-23 (일) 13:29 조회 : 48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안

2018년 9월 30일 주일 용  


제 5 과



참된 자유



학습구절: 갈라디아서 4장 8 -20절


성경진리: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참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열심히 전해야 한다. 


주요교리:  중 생

중생은 성령님께서 죄를 깨우쳐 주실 때 죄인이 그 죄를 하나님께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마음의 변화이다 (요 3: 3 -7).


암송구절:  갈라디아서 4장 31절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

“Therefore, brothers and sisters, we are not children of the slave woman, but of the free woman.”



시작하는 글:


코치들은 종종 경기장의 사이드 라인에서 엄청난 열정을 보여준다.

그들이 선수들에게 큰 소리로 지시하는 말을 듣거나, 그들의 얼굴표정이나 격렬한 팔 동작 등을 목격할 때, 우리는 그들이 경기에 얼마나 마음과 열정을 쏟고 있는 지를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노련한 코치들은 지나치게 감정에 몰입된 나머지, 가르칠 수 있는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그들은 선수들에게 바른 동기와 확신감을 심어주면 더 좋은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안다.



재능과 열정 중에, 어느 것이 결과에 더 많은 영향을 주는가?  그 이유를 설명해 보라.

의욕이 언제 선하고 경건하며, 그것은 언제 잘못되고 이기적인 것이 되는가?




본문배경설명                                       


갈라디아서 4장 8절부터 31절까지

바울은 갈라디아 신자들의 믿음이 신실하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는 것에 대해 좌절감을 나타냈다.

바울은 이전에 이미 죄의 노예로 사는 삶과 유업을 이을 자로 사는 삶 사이의 분명한 차이점을 그들에게 확실하게 제시해 주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 것을 뜻하는 칭의는 믿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그 주장에 대한 성경적 근거는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한 창세기 15장 6절이 되고 있다.  

칭의를 얻기 위해 믿음과 율법을 융합시키려는 유대주의자들의 시도는 갈라디아의 이방인 신자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바울은 그같이 혼란에 빠진 갈라디아의 이방 신자들에게 옛날의 삶의 방식으로 돌아 가지 말라고 촉구하였다 (갈 4: 8-11).

그들을 위협하고 있는 율법주의의 감옥은 그들이 구원받기 이전에 살았던 이방 감옥과 다른 것이 없었다.

그들은 서로 다른 두 가지 신앙 체계였지만, 그 두 가지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는 길에는 방해가 되었다.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자신의 본을 따르고 율법을 구원의 요구 조건으로 삼는 것을 거절하라고 간청하였다.

바울은 자기와 갈라디아 성도들이 함께 누렸던 이전의 긴밀한 관계를 상기하였다(4: 12-14).

바울은 그 관계가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랬다.

바울은 자신이 갈라디아 신자들의 열심 싸움에 끼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렇지만, 유대주의자들은 불순한 동기에서 열심을 내고 있는데 반해,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을 가족처럼 사랑하며 그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도록 열심을 내고 있었다.

4 장은 노예의 상태와 자유의 상태를 대조시키는 구약의 말씀을 언급하는 것으로 끝나고 있다 (4: 21-31).

마지막으로, 바울은 율법에 대한 유대주의자들의 가르침을 사용하여 그들의 가르침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아브라함의 두 아들은 노예(하갈의 아들인 이스마엘)와 자유(사라의 아들인 이삭)를 대표하였다.

그런데, 사라의 아들만이 약속의 아들이었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고 하였다.

갈라디아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는 약속과 유업을 인정하고 율법주의의 속박을 거부해야 하였다.

바울은 그들에게, 성경말씀대로 “여종과 아들을 내쫓으라”고 하면서,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고 하였다 (4: 30).  


학습구절 연구 


갈라디아의 문제  (갈라디아서 4장 8 -11절)

4장 8절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하였더니


바울은 갈라디아 이방인 성도들이 경험한 두 가지 상황, 즉 복음을 믿기 이전의 상황과 복음을 믿은 이후의 상황 사이의 차이점을 상세히 묘사하였다.

그 때에”라는 말은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던 때)”를 가리키고 있다.

그 때 그 들은 종교심이 많았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갈라디아 지방의 한 도시인, 루스드라 성밖에는 제우스 신당이 있었다 (행 14: 13).

바울과 바나바가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을 고쳐주었을 때, 그곳 사람들은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고 하면서 “바나바는 제우스”라고 하고 바울은 말하는 역할을 했으므로 “헤르메스”라고 부르며 그들에게 제사하려고까지 했었다 (행 14: 11 -15).  

그 같은 일은 갈라디아 사람들의 종교적 배경을 대표하였다.

복음을 받아들이기 전에, 그들은 실제로 우상들에게 매여 있었고, 하나님이 아닌 것들에 종 노릇을 하였다.

그들은 두려움에 차 있었다.


4장 9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갈라디아 성도들은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아들”과 “유업을 받을 자”가 되었다 (4: 7).

그것은 모든 면에서 놀라운 방향전환이었다.    

갈라디아 성도들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됨으로 영적인 자유를 얻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다).”

여기서 바울은 주안점을 바꾸어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도권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찾으셨고,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부터 그들을 구해주셨다.

"알다"로 번역된 용어는 지적인 지식 이상의 것을 함축하고 있으며, 관계적인 용어가 되고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우리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주도권으로 시작되고 있다.

이교도들은 신들을 찾았는데, 이는 생명이 없는 그들 신들은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셨고 우리가 그를 알기 전에 먼저 우리를 아신다.

그 같은 사실을 생각할 때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하는 일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바울은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는 말로 그들을 질책하였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맛본 후에, 그들은 어떻게 우상들에게로 돌아가서 종 노릇을 하려고 하는가?

바울은 유대인들의 율법주의와 갈라디아 성도들이 믿었던 이방 종교들을 동일시 하였다.

그 두 가지는 모두 그것들을 따르며 신봉하는 자들을 그들의 영적 필요를 채워 줄 수 없는 것에다 묶어놓았다.

바울은 참된 신자들이 구원을 잃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바울은 그들의 영적 성장을 저해하는 어떤 그릇된 신앙의 요소들이 그들의 믿음생활에 추가되는 것을 걱정하였다.

초등학문”으로 묘사되고 있는, 당시의 초보적이고도 천박한 종교체계들은 복음의 능력과 가치를 저하시키는 영향력이 될 뿐이었다.



인간적인 방법과 노력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얻으려는 시도와 종교 활동들은 참된 믿음 생활에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고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뿐이다



바울은 갈라디아의 이방인 성도들 중에 속박과 두려움 속에서 살았던 옛날의 상태로 돌아가려고 하는 사람이 있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고 하였다.   

당시에 노예나 종들은 엄하고 힘든 주인 밑에서 일했고, 어떤 권리도 없는 삶을 살았으며, 아무 희망도 없었다.

그러므로, 노예는, 일단 자유 하게 되면, 결코 노예생활로 다시 돌아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갈라디아의 성도들도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것들에게로 돌아가서 영적 속박을 받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4장 10절: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바울은 “너희가 (특별한)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라는 말로, 갈라디아 성도들이 율법주의로 돌아가고 있는 증거를 들었다.

삼가 지키다”라로 번역된 헬라어는 세심하고도 엄격하게 행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 말에서 우리는 유대주의자들의 영향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들 유대주의자들은 참된 구원의 삶에는 그 같은 것들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을 알 수 있다.

유대 달력에서 특별한 “”에는 안식일, 금식의 날, 및 축제의 날 등이 포함되고 있다.

“달”이라는 용어는 음력으로 매달 초하루에 제물을 드리며 축하했던 것을 가리켰을 수 있다 (민 10: 10).

절기”는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과 같은 절기를 가리켰다.

“해”라는 용어는 안식년이나 희년을 가리켰을 수 있다.

어떤 것이 되었건, 갈라디아의 신자들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관계없이, 참된 믿음의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그들의 믿음에다 율법적인 요구조건들을 더해야 한다는 유대주의자들의 압력에 굴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율법주의에 대한 바울의 경고는 우리에게 관련이 있다.

우리는 자칫 잘못하면 예수님과 역동적이고 성장하는 믿음의 관계를 맺는 대신에 종교 의식을 반복하는 습관과 타성에 빠져들기 쉽다.


4장 11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느니라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을 진정으로 사랑하였고, 그들의 영적 삶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자신을 그들의 삶에 깊이 투자하였다.

갈라디아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수고”는 아들이나 딸을 위해 희생적으로 모든 정성과 힘을 쏟는 사랑하는 부모의 것과 같았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을 위해서 애쓴 자신의 수고가 헛될까 두려워하였노라고 하였다.

바울은 참된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한 성도들이 그들의 구원을 잃을까 염려하며 두려워하는 뜻으로 그같이 말한 것이 아니었다.

바울은 성도들이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하고 순진한 것을 가슴 아파하였다.


바울의 간청 (갈라디아서 4장 12 -14절)

4장 12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단원은 우리들로 하여금 목회자의 심정을 들여다보게 해 준다.

먼저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을 “형제들”로 부르면서,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고 하였다.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라고 한 말은 바울이 자주 사용한 반복구가 되고 있다 (고전 4: 14 -16, 11: 1; 빌 3: 17; 살전 1: 6 참조).

여기서 그것은 교만에 차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는 실제로 갈라디아 성도들이 유대인들의 의식이나 규례들을 따르려고 할 것이 아니라, 자기처럼 참 복음을 믿고 따르며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는 믿음을 갖기를 바랬던 것이다 (갈 2: 20 참조).

바울은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하여 그들처럼 되었던 것이다.

그 같은 사회적 혹은 문화적 적응을 통해서, 바울은 결코 자신의 신앙이나 확신하고 있는 것들을 타협하거나 절충하지 않았다.

그것은 바울의 일관성 없는 행동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한 의도된 전략이었습니다.  

바울은 그 같은 뜻을 고린도전서 9장에서도 밝혔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라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고전 9: 19).

“약한 자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를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고전 9: 20).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믿지 않는 세상에다 선교의 다리를 놓아야 한다.

이는 교회와 믿지 않는 세상 사이의 틈이 너무나 넓고 크기 때문이다.

바울이 한 것처럼,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도하기 위해 교회로서 그리고 개인으로서 의도적이고 사려 깊게 행하여야 한다.

그같이 하려면,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희생하는 일이 요구될 때도 있다.

바울은 또한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하였는데, 그 말에 대한 설명은 13절과 14절이 되고 있다.


4장 13 -14절: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그가 처음 선교 사역을 했을 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일부 성경학자들은 바울이 제 1차 선교 여행 때 본래 에베소로 가려고 했는데, 병 때문에 갈라디아에 머물게 되었거나 본래 계획했던 것보다 더 오래 체류하게 되었던 것으로 믿고 있다.

바울이 가지고 있던 육체적 병의 정확한 성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추측들은 안질이나 말라리아, 혹은 간질 같은 것에 집중되고 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는 그 병을 “육체의 가시”로 표현하였다 (고후 12: 7).

바울의 병이 무엇이었든 간에, 그 질병은 제 1차 선교여행 때 받은 박해로 인하여 더욱 악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갈라디아에서 시간을 내어 병을 치료하는 동안에도, 바울은 가만히 쉬고 있은 것이 아니라 그의 소명에 충실하여 복음 열심히 전하였다.

당시 바울은 일상적인 활동에 지장이 될 정도로 병을 앓고 있었거나 어떤 육체적 결함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바울의 그 같은 질병이나 육체적 결함은 사람들에게 “시험”이 될 수 있었다.

그 같은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갈라디아 사람들은 그들 열정에 찬 마음으로 대해주었다.

바울은 말하기를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고 하였다.

갈라디아 성도들은 복음 전파자와 복음의 메시지를 똑같이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들은 바울을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심지어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해 주었다.


복음에 대한 열심 (갈라디아서 4장 15 -20절)

4장 15절: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갈라디아 성도들은 바울이 와서 함께 있으면서 복음과 영적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을 크게 기뻐하며 큰 축복으로 여겼다.

"복”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마태복은 5장 3 -11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팔복”에서 사용되고 있는 ‘복이 있나니’라는 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 용어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생기는 행복한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에 대한 메시지를 받은 결과, 갈라디아 신자들은 영적 축복과 내적 기쁨을 경험하였다.

그렇지만, 율법주의로 돌아섰을 때, 그들은 기쁨을 잃었다.

규칙과 규정에 얽매인 율법에 따라 생활하는 것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영적 축복을 잃는 일이 되었을 뿐 아니라, 바울과 그들 모두에게는 그리스도인 교제의 축복과 기쁨을 잃는 일이 되었다.

그 같은 사실을 강조하며 깨우쳐 줄 목적으로, 바울은 고린도의 성도들에게 “너희의 복이 어디 있느냐”는 수사학적인 질문을 하였다.

다른 한편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자기에게 베풀어주었던 친절과 사랑을 상기시켜 주었다.

바울은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라고 하면서,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고 하였다.

일부 성경학자들은 눈에 대한 바울의 언급은 그를 갈라디아에 체류하게 했던 그의 육체의 질병이 어떤 형태의 안질과 관련이 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고 보고 있다.

반면에, 그 말은 당시에 희생적인 일을 암시하는 격언이었고, 바울은 그 같은 뜻으로 그 말을 사용했을 수 있다.


4장 16절: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어떤 경우가 되었든 간에, 바울이 지적한 점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바울을 돕기 위해서 무엇이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바울을 “원수”처럼 대하였다.

구태여 그같이 된 이유를 들자면,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참된 복음을 전한 반면에 갈라디아 신자들은 유대주의자들의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주의를 따르는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수사학적인 질문으로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바울이 언급한 “참된 말”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참된 복음의 메시지를 가리키고 있다.

진리는 죄인의 악한 마음의 상태를 드러내 줄 때가 많다.  

바울이 언급한 “참된 말”은 참된 복음을 뜻하면서도,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바른 말’을 가리킬 수도 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죄 많고 악한 인간에게 진리가 고통의 대상이 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진리가 필요하다.    


4장 17절:

그들이 너희에게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시켜

너희로 그들에게 열심을 내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그들”이란 대명사는 유대주의자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들은 큰 관심과 선의로 갈라디아 성도들의 환심을 사려고 열심을 내었던 것이 분명하다.

바울은 유대주의자들이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열심을 내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라)”고 하였다.

바울이 여기서 문제로 삼은 것은 유대주의자들의 열심이 아니라, 그들의 “동기”였다.

바울은 “오직 너희를 이간시켜 너희로 그들에 대하여 열심을 내게 하려 함이니라”는 말로 그들의 동기를 밝혔다.  

너희를 이간 시켜”라는 말은 갈라디아 성도들을 바울과 그의 동행자들로부터 이간시킨다는 뜻이 될 수 있지만, 참된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이간시킨다는 뜻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반면에, 유대주의자들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자신들에게 열심을 내게 하려는 이기적인 목적을 가자고 있었다.


4장 18절: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바울은 좋은 뜻으로 열심을 내고 사모함을 받는다면, 그것은 누가 했든지 관계 없이 좋은 일이 되고 있음을 인정하였다.

바울은 유대인의 그릇된 동기와 자신의 순수한 동기를 대조하였다.

바울은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도를 인정하였다.

거짓 교사들은 이기적인 동기에서 행했던 것이다.

바울은 갈라디아 사람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들을 찾았다.

그는 진정으로 믿음 안에서 그들에게 좋은 일들을 원했다.

바울을 갈라디아 성도들이 자기가 없을 때에도 복음의 진리에 충성하기를 간절히 원하였다.

갈라디아 성도들은 변화하지 않는 복음에 충성했는가?

아니면 왔다가 떠나는 인간 지도자들에게 충성하였는가?

교회에서의 지도력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경건한 지도자들을 존경하며 따라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아니라 사람에게 충성하면 실망을 당하게 된다.



우리는 변하지 않는 복음에 충성하고 있는가? 아니면 왔다가 떠나는 인간 지도자들에게 충성하고 있는가? 


   

4장 19절: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바울은 갈라다아 성도들을 “나의 자녀들아”라고 부름으로 그들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나타내다.

바울은 자신을 그들의 영적 부모로 생각했던 것이다.

바울은 그들을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말함으로, 영적 부모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새로운 신자들을 “해산하는” 것으로 보았다.

해산의 수고”에는 견딜 수 없는 통증이 따르고 지치게 만든다.

 바울은 그들에게 사역을 할 때 자신의 있는 힘과 열정을 다 쏟아 부었다.

갈라디아 성도들이 바울 자신이 전하 것과 다른 "복음"을 받아드리고 있다는 소식은 그를 다시 영적인 고통을 겪게 하였다.

그는 갈라디아 성도들이 그가 전한 복음에 계속 충실하기를 간절히 바랬다.

여기서 또 다른 의학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바울은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했는데, ‘형상을 이루다’라는 용어는 본래 태아가 모태에서 자라나는 것을 가리켰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믿음을 인하여 믿는 자들의 삶 속에 들어오실 때 그들에게 일어나는 일을 태아의 성장 과정에다 비유하였던 것이다.

그리스도를 점점 더 닮아가는 것은 성장 과정이다.


4장 20절: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과 떨어져 있는 것을 애석하게 여기며 말하기를,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었으면 싶다고 하였다.   

그는 글로 써서 말하기보다 갈라디아 성도들과 얼굴을 맞대고 앉아서 말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바울은 그들과 직접 만나 말하게 될 경우 “언성”을 높이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갈라디아 지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은 바울을 혼란스럽게 하였다.

바울은 그 같은 상황을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그는 갈라디아 성도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열정으로 인해 그 같은 마음을 가졌던 것이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구원을 얻는다는 참된 복음을 그와 다른 복음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  신자들은 다른 신자들에게 그들이 복음을 처음 들었을 때 얻은 은혜를 기억하도록 간청할 수 있다.

●  복음의 진리는 정죄의 고통을 초래케 할 수 있으나, 그 진리를 전하지 않는 것은 사랑하지 않고 있는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