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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구원의 삶 - 제 3과 - 2018년 9월 16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갈라디아서 3장 1 -14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8-09-14 (금) 07:25 조회 : 92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안

2018년 9월 16일 주일 용  



제 3 과



참된 구원의 삶  


학습구절: 갈라디아서 3장 1 -14절


성경진리:

예수님은 우리 죄의 저주를 몸소 짊어 지시고, 우리 대신 죽으셨다.


주요교리:  구 원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개인적인 믿음이 없이는 구원은 없다 (엡 2 : 8).


암송구절:  갈라디아서 3장 11절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Clearly no one who relies on the law is justified before God,

because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시작하는 글:


때로는 한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처벌을 받을 수 있다.

한 형제의 잘못으로 다른 형제가 벌을 받기도 한다.

일부 팀원이 연습 중에 연습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팀원들 전체가 달리기 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들은 잘못하지 않았는데도,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한 대가를 지불했던 것이다.



당신의 잘못으로 인해 누군가가 대신 처벌받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힘든 이유는 무엇인가?




본문배경설명


갈라디아서 3장 1절부터 18절까지

3장에서 바울은 매우 사적인 언어로 사랑과 좌절감이 뒤섞인 감정을 표현하였다.

바울은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들을 사랑하였다.

그들은 복음전파를 위해 커다란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거짓 교사들에게 쉽게 이끌리는 그들의 경향은 바울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문제는 유대주의자들의 율법주의적 가르침이었다.

이들 율법주의 기독교인들은 이방인 개종자들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할례를 포함하여, 유대인의 율법을 준수하여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이 주장한 것은 은혜의 복음이 아니라, 믿음과 율법의 요구 조건이었다.

이에 대해 바울은 갈라디아 신자들에게 그들이 처음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했을 때의 일을 회상해 보라고 하였다 (3: 1-5).

바울은 그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였다.

그들은 그 복음을 믿고 받아들였으며, 그들이 구원을 받은 것은 그 믿음에만 근거한 것이었다.

그런 다음, 바울은 믿음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주장이 정당함을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 입증하였다 (3: 6 -9).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받기 이전에 살았던 인물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율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고 선언하셨다.

바울은 유대주의 자들의 거짓 가르침에 맞서 그들이 도구로 사용하는 “율법 책”을 가지고 싸웠던 것이다.

그는 또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관계 없이,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고 하였다 (3: 7).

바울은 율법의 불완전성과 신앙의 충족 조건을 밝혔다 (3: 10-14).

율법은 죄를 밝혀주며 정죄하였다.

그러나 율법에 순종하는 것으로 죄로부터 구원을 얻을 수 없다.

바울은 율법의 그 같은 불완전성을 저주로 불렀다.

예수님 만이 우리를 심판에서 구속해 주실 수 있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믿음과 예수님의 사역을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에다 연결시켰다 (갈 3: 15-18).

하나님은 모세와 율법의 규정이 있기 훨씬 이전에 아브라함과 은혜의 언약을 맺으셨다.

그 언약은 지금까지 계속 유효하다.

아브라함이 그때 받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대한 언약은(창 15: 6) 율법으로 인해 취소되지 않았다.

예수님은 그 약속을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똑 같이 성취하셨다.



학습구절 연구


성령이 확증하고 있는 복음 (갈라디아서 3장 1 -5절)

3: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3: 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3: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3: 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3: 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3장 1절 –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라는 말에서 나타나고 있듯이바울은 가혹한 어조로 갈라디아 신자들에 대한 실망감과 좌절감을 나타냈다.

어리석도다”는 말은 “분별력이 없다” 혹은 “지혜롭지 못하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그 말을 했을 때, 바울은 특별히 일부 이방인 신자들이 유대주의 신자들의 그릇된 가르침을 받아들인 어리석은 선택을 한 것을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이 크다.

바울은 3장 1절부터 5절까지에서 갈라디아 신자들에게 그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이단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도록 의도된 일련의 질문들을 하였다.

먼저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고 하였다.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처음 선교 여행을 하면서 갈라디아 지방을 방문했을 때, 그 자신이 직접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생생하게 밝히 전하여 주었다.

바울은 자신이 그 복음의 메시지를 그같이 전한 것을 포스터에다 게시하여 가장 잘 보이는 장소에다 전시한 것에다 비유하여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이라고 하였다. 

바울과 바나바가 그같이 복음을 전파하며 가르쳤으므로, 갈라디아 지방의 신자들은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그릇된 가르침에 저항하며 물리칠 준비가 되어 있어야 마땅했다.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로 번역된 헬라어 동사에서는 십자가에서 일어난 일의 최종적인 성격이  강조되고 있다.

그것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을 상기시켜 준다 (요 19:

30).

예수님은 단번에 그리고 최종적으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

그의 구속 사역은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완성되었으며 결코 보완 될 필요가 없다.



눈 앞에서 번쩍이는 거리의 광고판처럼,

예수님의 십자가는 복음의 진리를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3장 2절 – 신자들이 성령님을 선물로 받은 것은 구원을 받은 것에 대한 확실하고도 강한 증거이자 (롬 8: 16) 영원한 영광에 대한 하나님의 보증이 되고 있다 (엡 1: 13 -14).

그러므로 성령님의 임재와 거듭남의 실재는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가 되고 있다 (요 3: 3 -5).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순간에 성령님을 받는다.

그것은 갈라디아의 성도들 모두가 잘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바울은 이제 그들에게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라는 질문을 함으로, 구원은 믿음으로만 얻는다는 은혜의 교리를 확실하게 깨우쳐 주려고 하였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알고 싶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란 대답을 듣기를 기대하였다.


3장 3절 – 바울은 다시 그릇된 교리에 이끌리는 성도들을 어리석다고 하면서 (1절 참조), 너희가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고 질책하였다.

그들은 어떻게 믿음의 삶을 시작하였는가?그들은 “성령으로 시작하였다.”

그들은 성령님을 어떤 선행에 대한 상급이 아니라, 선물로 받았다.

성령님은 그들의 죄를 지적해 주고 꾸짖어 주었으며 그리스도를 믿게 해 주셨다.

그리고 믿는 자들 안에 들어와 거하시며 그들이 믿음으로 자라나도록 도와 주셨다.

그런데, 갈라디아 성도들은 “성령”이 아니라, “율법”에 기초한 믿음생활로 돌아가려고 했던 것이다.  

3장 4절 – 이 구절의 “이같이 많은 괴로움”이란 말이 다른 번역 판에서는 “그 많은 체험”라는 뜻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예를 들어 표준 새 번역), 그것은 원어에 대한 해석의 차이 때문이다.

한가지는 그 원어를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할 때, 그 말은 적대에 직면하다, 고통을 겪다, 혹은 악의 희생물이 되다는 뜻이 되고 있다.

만일 바울이 그 용어를 그같이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였다면, 본문에서처럼, ‘많은 괴로움을 (겪었다)”는 뜻이 되며, 갈라다아 성도들은 어떤 형태로든지 박해와 역경을 겪은 것을 나타내고 이다.

다음으로, 그 헬라어 원어를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하면, 그 말은 경험하다 혹은 체험하다는 뜻이 된다.

만일 바울이 그 용어를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했다면, 그 말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성령님을 받은 일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신앙적으로 겪은 일들을 가리키고 있다.

어느 경우가 되었든지, 바울이 밝히려는 요점은 분명하다.

그들이 겪은 일들은 참된 목적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다.

3장 5절  다음으로, 바울은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고 물었다. 

바울이 바란 것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성령님을 주신 이유와 목적을 알게 되는 것이었다.

바울의 질문은 구원의 문제와 성화의 과정에 미치는 것이 되고 있다.

하나님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았을 때 성령님을 선물로 주셨다.

그리고 성령님을 통해 그들 안에서 능력을 행하시고 계신다.

법에 복종하는 것은 좋은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율법이 죄를 사해주거나 구원을 베풀어 줄 수 없다.

그 일은 오직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나타나는 성령님의 능력에 달려 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아브라함 (갈라디아서 3장 6 -9절)

3: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3: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3: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3: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3장 6절 –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하여, 바울은 자기 주장의 초점을 갈라디아 성도들이 성령을 받은 성령체험으로부터 성경의 가르침으로 옮겼다.

영적인 경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분리되면 잘못 해석되거나 이해되기 쉽기 때문에 성경말씀에 근거한 주장은 필수적이다.

바울이 성경말씀을 근거로 하여 주장한 첫 번째의 것은 구약 족장들의 첫 번째인 아브라함의 사례였다.

창세기 15장 6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바울은 말하기를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고 하였다. 

바울이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깨우쳐 주며 강조하려고 한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에 의해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것은 그의 믿음에만 근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구원을 얻기 위해 율법을 지키는 일이 필요했다면, 아브라함은 결코 믿음으로 의롭다고 선언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조건으로 할례를 주장하는 유대주의자들은 할례가 하나님과의 언약의 필수적인 표시가 되고 있다는 증거로, 창세기 17: 3 ~ 14에 기록되고 있는 대로,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은 일을 가리켰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은 일은 창세기 15: 1-6에 기록 된 사건이 일어나고 수년이 지난 후에 일어났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일을 바울이 언급한 것은 구원은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다는 자신의 주장을 성경적으로 입증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역사적으로 앞을 내다보면서 십자가를 바라 보았는데 반해, 우리의 믿음은 역사적으로 과거로 돌아가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이 되고 있다.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은 역사의 초점을 이루고 있다.

3장 7절 – 유대주의자들은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축복을 얻기 위해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징표인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바울은 아브라함이 한 것과 똑같이, 믿는 사람들이 할례를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거짓 가르침에 대항하였다.

따라서, 이방인 신자들은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뿐이었다.

바울의 주장과 논박은 유대주의 자들의 거짓 메시지의 핵심을 찌른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할례를 구원의 수단이 아니라, 내적 변화의 외적 표징으로 보아야 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언약의 관계를 나타내는 표징으로 할례를 받으라고 지시 하셨지만 (창 17: 10 -13),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고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은 일이 있고 나서 한참 후의 일이 되고 있다 (창 15: 6).

그러므로,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참된 자녀들은 외적으로 할례를 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의 외적 표징을 관계 자체와 혼동하고 있다.

예를 들어, 침례는 신자의 믿음을 외적으로 표현한 상징이다.

그것은 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 할 때 일어나는 내적 변화의 표현이 되고 있다.

침례는 구원이 방법이 아니다.



사람들이 잘못 해석하여 구원의 수단이나 방법으로 혹은 구원에 필요한 것으로 삼고 있는 어떤 다른 징표나 상징들을 열거해 보라.



3장 8 -9절 – 바울은 계속 “성경”을 들어서 이방인 개종자들이 참된 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할례를 받아야 하고 유대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유대주의 신자들의 주장을 대항하였다.

그것은 특정한 구절이나 구약 성경 전체를 가리킬 수 있다.

그는 의인법(擬人法)을 사용하여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였다)”고 하였다.

바울은 창세기 12 장 3 절을 지적하면서, 하나님은 이방인들을 구속의 계획에 포함시키려고 하신 것이 항상 그의 계획이 되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창세기 12장 3절과 18장 18절에 예언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가졌던 것과 똑같은 신앙을 통해, 하나님은 “땅의 모든 족속” (창 12: 3) 혹은 “천하 만민” (창 18: 18)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실 것이다.

그것은 구원의 기쁜 소식 혹은 복음의 메시지가 되고 있다.

바울은 창세기 12장 2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말하기를,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고 하였다.

그 말에 담겨있는 뜻은 아브라함과 같은 신앙을 가진 모든 사람들은,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에 참여할 것이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을 통해 모든 족속을 축복하려는 하나님의 목적의 결과로 인해,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게)” 되었다.

아브라함의 “믿음”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그의 “헌신”과 “순종”이 되고 있다.


저주로 인해 요구되는 복음 (갈라디아서 3장 10 -14절)

3: 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3: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3: 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3: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3: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3장 10절 바울은 율법을 어떤 식으로든 악하게 평가하지 않았다.

율법에는 성취할 목적이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이유와 목적은 무엇인가?

가장 주된 것으로는, 율법은 죄를 확증시켜 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죄 때문에 구원이 필요하다.

인간은 율법을 온전하게 지킬 수 없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자신의 공로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수 없다.

거기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인, “율법의 저주”가 드러나게 된다.

율법에 복종하려는 인간의 어떤 노력과 행동도 부족하다.

바울은 “기록 된” 성경말씀을 가지고 율법의 저주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하였다 (신 27: 26참조).

어느 누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할 수 있겠는가?

아무도 할 수 없다.

율법에 의한 구원은 항상 실패하게 마련이다.

3장 11절 –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을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로 부른다 (롬 3: 24).

“칭의” 혹은 "의롭다 함을 얻다"로 번역 된 용어를 좀더 깊이 이해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부요함과 풍성함을 깨달을 수 있다.

칭의(稱義)는 구원을 법적인 관점에서 묘사해 주는 용어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죄인이 구원을 받는 순간에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에 근거하여 그를 의로운 자로 선언하심으로 의롭게 여기신다.

칭의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초로 되는 것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인간의 노력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롬 3 : 24 참조).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하실 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주시고, 따라서 우리의 죄로 인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생긴 담이 제거되게 된다.

하나님은 율법을 지키거나 노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 의롭다 함을 얻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이는 인간적인 노력이나 행위는 양과 질적인 면에서 결코 충분조건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12절에서 레위기 18장 5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율법은 믿음에 기초되고 있지 않음을 강조하였다.

바울은 또한 3장 11절에서는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한 하박국 2장 4절을 인용하여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자신의 주장이 옳음을 입증하였다.   


3장 12절  -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라는 말로, 바울은 율법이 믿음에 근거한 것이 아님을 지적하였다.

바울은 율법으로 구원받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레위기 18장 5절의 말씀을 인용하였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고 하시면서,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셨다.  

율법의 저주는 인간이 율법을 온전하게 지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율법은 죄인을 구원할 수 없다.


3장 13절 – “율법의 저주”는 율법은 인간이 완전히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지 않으면서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정죄하고 있는 것이다.

그같이 율법의 저주아래 있는 사람들을 향해,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고 선언하였다.  

속량하다”로 번역된 헬라어의 문자적인 의미는 ‘값을 지불함으로 자유케 하다”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 값을 치러주셔서 우리를 죄의 형벌로부터 해방시켜 주셨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한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였다 (고전 6: 19 -20).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셨다.  

바울은 구약 성경의 또 다른 구절을 사용하여 그 말을 설명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하였다 (신 21: 22 -23 참조).

유대인들에게, 십자가 처형뿐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처형은 사체에 저주가 되었다.

처형된 죄인의 시체는, 죽은 후에, 기둥에 매달아 사람들에게 그들의 죄에 대한 수치를 드러내게 하였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일은 죄를 지은 자가 처형을 받고 죽은 후 나무 기둥에 매달려 있던 것을 상기 시켜 주는 일이 되었다.

예수님은 아무 죄도 없으셨지만 (히 4: 15), 자기의 몸을 희생제물로 주셨다.


3장 14절  바울은 예수님께서 죽으신 두 가지 목적을 밝혔다.

첫째로, 예수님의 죽음은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하(였다).”

아브라함의 복”이라는 말은 창세기 12 장 3 절에서 “땅의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한 하나님의 약속을 가리킨다.

그 말은 또한 아브라함이 얻은 축복, 즉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의롭다고 하신 일을 가리킨다 (창 15: 6).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으셨으므로, 우리는 복을 받게 되었다.

둘째로,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되었다.

하나님은 성령님을 신자들 안에 두기를 원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약속해 주셨다 (요 14: 26).

자신의 노력으로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대신에,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그들 안에 거하시며 살아가는 방법을 보여 주시고 또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성령을 의지할 수 있게 되었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삶을 변화시키는 성령님께서 믿는 자들 속에 거하시며 역사하시는 것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으며 인간의 노력과 행위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증거이다.

●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만이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다.

●  율법과 선함을 의지하며 주장하는 사람들은 심판을 받게 된다.

●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은 구속함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