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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복음 - 제 1과 - 2018년 9월 2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갈라디아 1장 1 -10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8-08-28 (화) 12:00 조회 : 69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2018년 9월 2일 주일 용  



제 1과



참된 복음



학습구절: 갈라디아 1장 1 -10절


성경진리:

신자들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유일하고 진정한 복음의 메시지를 충실하게 붙들고 있어야 한다.   


주요교리:  구 원 

예수님은 자기를 믿는 자들을 위하여 그의 보혈의 피로 영원한 속량, 곧 죄를 사함 받고 구원을 얻는 길을 열어주셨다.  


암송구절:  갈라디아서 1장 8절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But even if we or an angel from heaven should preach a gospel

other than the one we preached to you,

let them be under God’s curse.     



시작하는 글:


자물쇠가 달린 문을 틀린 열쇠로 열려고 시도한 적이 있는가? 

어쩌면, 그 열쇠는 아예 자물쇠 구멍에 맞지 않는 것일 수 있다.

열쇠가 자물쇠 구멍에 맞는 것일지라도, 열쇠가 돌아가지도 않고 자물쇠가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로 그 자물쇠를 열 수 있는 열쇠는 하나뿐이다.

어떤 열쇠들은 보기만해도 틀린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데 반해, 다른 것들은 맞는 것 같이 보이기는 하는데 맞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유일하고도 참된 복음의 메시지를 믿고 고수해야 하지만, 참된 복음과 다양한 거짓 복음들을 구별 할 수 있어야 한다.



본문배경설명


갈라디아서 1장 1 -10절까지

갈라디아서의 1차적인 수신자가 정확히 누구였느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주석가들 사이에 의견의 차이를 보여오고 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1차 선교 여행 때 갈라디아 지역에서 개척한 교회들, 즉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및 더베 지방에 있던 교회들에게 써 보낸 것으로, 그들이 돌려가며 읽게 한 ‘회람식 편지’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행 13 -14장).

그 같은 뜻은 수신자를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라고 밝힌 데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편지는 바울의 다른 서신들과 비슷한 형태로 시작되었다.

시작하는 인사 말에서, 바울은 자신을 소개하고, 독자들을 밝힌 후에, 그들에게 축복의 말을 하였다 (1: 1 -5).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분을 분명하고도 확고하게 하였다.

이는 갈라디아 지역에 있는 일부 사람들에게 그의 사도직분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다른 편지에서와 같이 독자들에게 감사의 말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 말을 빠뜨린 것은 그들 교회들의 상황에 대해 그가 갖고 있던 염려를 나타냈다.

짧게 인사 한 후에, 바울은 자신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던 긴급하고도 중요한 문제에 대해 말하였다.

6절부터 10절까지는 바울이 편지를 써 보내게 된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다.

어떤 교사들은 갈라디아에서 거짓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유대주의자들’로 알려져 있던, 그들 거짓 교사들은 엄격한 유대교의 배경에서 왔으며 “믿음 더하기 행함”에 의한 구원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할례와 다른 유대교의 의식들, 그리고 선행(善行)이 선행(先行)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은혜와 믿음”이라는 복음의 핵심을 위태롭게 하는 위험한 교리가 되었고, 사람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기본 원리를 부정하는 일이 되고 있다 (롬 1: 17).  

그것은 바로 바울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맥락이 되고 있다.

그 문제는 예루살렘 공회에서 다루어졌던 것이었다 (사도 행전 15 장 참조).

어쩌면 바울 서신의 첫 번째가 될 수도 있는 갈라디아서는 공회 직후에 쓰여 졌을 수 있다.

그렇지만, 어떤 성경 주석가들은 갈라디아서가 예루살렘 공회 이전에 쓰여진 것으로 믿고 있다.

두 가지 견해 모두 가능하다.

그같이 복음이 타격을 받게 되자, 바울은 미숙한 그리스도인들을 믿음을 훼손시키며 참된 복음의 전파를 방해하는 구원에 대한 율법주의적 접근방법에 맞서기 위해 서신을 기록하였다.    

그는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구원에 근거한 참된 복음을 주장하였다.



학습구절 연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사도가 된 바울 (갈라디아서 1장 1 -2절)

1: 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1: 2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1장 1 -2절 바울은 그의 편지인 갈라디아서를 당시의 일반적인 서신 형식을 따라 먼저 발신자인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그는,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가지기 전에는, 유대 이름인 사울로 가장 잘 알려져 있었다.

바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의해 자신의 삶이 변화되고 갈라디아처럼 이방인들의 지역들을 다니며 선교를 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바울”이라는 헬라식 이름 혹은 로마식 이름을 사용하였다 (행 13: 9, 46).

바울은 “사도 된 바울”이란 말로, 자신이 “사도”인 것을 강조하였다.

여기서 사용된 ‘사도’라는 헬라어는 ‘보내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것으로, 그 단어는 그같이 보냄을 받은 사람이 어떤 사명과 그 사명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권한을 부여 받은 사실이 강조되고 있다.

그 같이 보냄을 받은 대사 혹은 사신은 보낸 사람의 전적인 권한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자기를 보낸 사람을 대표하였을 뿐 아니라, 심지어 보낸 사람처럼 행동할 수 있었다.  

예수님은 열 두 제자들을 묘사 할 때 이 용어를 사용하셨다 (막 3: 14; 눅 6: 13).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그의 권세로 말하고 행할 수 있는 특별한 자격을 주셨다.

바울은 그 칭호를 자신에게 사용하였다.

바울은 열두 제자 중 하나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도 직에 대한 그의 주장의 근거에 대해서 질문이 제기되었다.

예수님의 사도는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사역과 그의 부활의 목격자가 되어야 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사도 행전 1: 21 ~22; 고린도전서 15: 8 참조).

바울은 그 어느 요구조건도 충족시키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난 것에 근거하여 사도직을 주장하였다 (사도 행전 9: 1 ~ 6 참조)



한 사람이 특정한 주제에 대해 권위 있게 말하기 위해서 자신의 자격에 대해 말해야 할 때는 언제인가?  한 신자가 예수님에 대한 진리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자신을 어떻게 소개할 수 있는가?  



바울은 자신이 사도로 보냄을 받은 것은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고 “사람으로 말미암은 ”도 아니라고 하였다.

그를 사도로 보낸 것은 어떤 한 인간 집단이나 권력자가 아니었다.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바울은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분이심을 분명하게 밝혔다.

복음의 가장 중요한 사건인, 예수님의 부활은 바울의 메시지의 핵심이되고 있다.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자기와 함께 선교 여행을 하는 동역자들의 이름을 밝혔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서 그의 동역자들을 단순히 “모든 형제”로 인정하였다.

문맥에서는 그 이유가 주어지지 않고 있지만, 그것은, 그의 인사 말에서 암시되고 있는 것같이, 복음이 사람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뒷받침해 주는 일이 되고 있다.

바울은 동역자들이나 다른 어떤 사람의 지원이나 성원이 없이도 복음에 관해 권위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갈라디아서의 수신자는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이었다. 

이들은 사도 행전 13 ~13 장에 기록 된 첫 번째 선교 여행에서 바울이 세운 교회들이었다.


갈라디아서의 주요 주제들

  •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서의 권위를 변호하였다.
  • 바울은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것임을 주장하였다.
  • 크리스찬의 삶은 자유롭게 된 삶의 하나로,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능력을 얻는다.  


하나님의 은혜로 (갈라디아서 1장 3 -5절)

1: 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1: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1: 5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1장 3절 – 사도 바울은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는 간구로 인사를 하였는데, 특별히 ‘은혜가 있기를 원한다’는 말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적절하고도 필요한 것이었다.  

실제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간구하는 말로 갈라디아서를 시작하는 동시에 끝내고 있다 (1: 3; 6: 18).

갈라디아 교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져버리고 (1: 6) 구원을 얻고 유지하는 수단과 방편으로 율법주의에 매여 있었다.

은혜라는 용어의 일반적인 정의는 "전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값없이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호의”가 되고 있다.

그 말에서는 친절과 선의 그리고 관용의 뜻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은혜라는 말은 하나님의 마음이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으며, 노력으로도 얻을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를 통하여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평강”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샬롬”이라는 히브리어와 같은 말이 되고 있다.

두 단어 모두 조화라는 뜻을 전달해주고 있지만, 그 말은 단순한 갈등이나 어려움의 부재(不在) 상태 이상의 것을 의미하고 있다.

샬롬 처럼, 평강이라는 단어자체도 건전함, 온전함, 행복함, 안전함, 번영등, 즉 사람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만드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갈라디아 기독교인들의 영적 건강과 안녕을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갈라디아 신자들이 그가 전한 참된 복음을 흔들리지 않고 지키기를 간절히 원하였다.

간구의 기도에서 바울이 사용한 두 용어의 순서는 의도적이고도 신중하게 된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속의 행위로 표현 되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 만이 완전한 영적 행복과 안녕의 형태로 “평강”을 줄 수 있다.

바울은 “은혜와 평강”의 근원이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가 되심을 강조하였다.

구원의 계획은 하나님 아버지에 의해 시작되었고 그의 아들에 의해 실행되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고유 이름에다 “주”라는 명칭을 덧붙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부르게 된 것은 중요하다.

“예수”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언약의 이름인 “야웨 혹은 여호와는 구원하신다”는 뜻이고, “그리스도”라는 용어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인 “메시야”를 뜻하는 헬라어 명칭이다.

바울이 덧붙인 말인 “”라는 명칭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고 있다.

” 혹은 “주님”이라는 용어는 소유권과 통치권에 익숙했던 이방인 독자들에게 공감이 되는 것이었다.

세 가지 명칭으로 된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와 ‘메시야’가 되시며 ‘하나님’이 되신다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다.  

1장 4절 –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다)”고 하였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다)”는 말은 예수님의 자발적인 희생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자원하여 자기의 목숨을 주시었다.  

바울은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추가의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십자가의 목적은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일)”이 되고 있다.

죄로 번역된 헬라어는 양궁 용어로, 문자적인 뜻은 "표적에 미치지 못하다” 혹은 “과녁을 맞히지 못하다”이다.

그 말은 계시 된 하나님의 삶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다 혹은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다 라는 뜻을 전달하게 되었다.

그 말은 잘못을 행하거나 선을 행하지 않음으로, 죄를 지은 것을 나타내는데 사용되었다. 

우리”라는 말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대속하시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신 모든 죄인들 가운데 자신을 포함시켰다.  

디모데전서 1장 15절에서 바울은 심지어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하였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통해 자기에게 미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예리하게 깨닫고 있었다.

바울은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라는 말로그리스도의 희생적인, 대속의 죽음의 목적을 강조하였다.

이 악한 세대”라는 말은 두 세대에 대한 유대인들의 개념을 반영하고 있다.

유대인들에게 이 세대는 악의 세력이 지배하고 있는데 반해 다가올 세대는 공의가 특징이 될 것이다.

바울이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라고 했을 때, 그 말은 신자들이 회심 직후에 이 악한 세상에서 건져냄을 당한다는 뜻이 아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앞에 놓고 감람 산에서 제자들을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셨을 때도,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존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라고 하셨다 (요 17: 15).

‘악한 세대에서 건짐을 받는다’는 말이 암시하며 강조하고 있는 것은 치명적인 악의 지배력에서 자신을 구출할 수 없는 죄인들의 무력함과 그리스도의 은혜와 능력으로 악의 세력으로부터 구출을 받게 된 것이 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인들이 할 수 없었던 것을 행해 주셨다.

신자들은 악이 번성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계속 살고 있지만,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십자가위에서의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 뒤에는 “하나님” 곧 믿는 자들의 “아버지의 뜻”이 있었다.       

십자가의 처형이, 인간의 기준으로는, 생명을 잃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관점으로는, 구원을 베풀기 위해 자원하여 목숨을 주신 일이 되었다.

1장 5절 –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생각할 때에, 바울은 마음에 기쁨과 감사가 넘쳐흘렀다.

그는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는 말로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   

영광”이라는 용어는 찬양의 개념을 가지고 있지만, 훨씬 더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찬양이라는 헬라는 ‘무겁다,’ ‘유력하다,’ 혹은 ‘중요하다’의 뜻을 담고 있는 히브리어 용어가  

배경이 되고 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은 하나님의 구속적 특성을 나타내고 있는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일을 인해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말이 되고 있다.

아멘”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그렇데 될지어다,’ ‘그렇다,’ ‘확고한 진리이다”는 뜻이 되고 있다.


일부 사람들에 의해 왜곡된 복음 (갈라디아서 1장 6 -10절)

1: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1: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1: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 9   우리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

1: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1장 6절 – 인사와 소개의 말을 간략하게 마친 후에, 바울은 곧장 그로 하여금 편지를 쓰게 한 심각한 문제에 대해 언급하였다.

라디아 교회들이 처한 상황은 위기 의식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었다.

위태롭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확실하고도 참된 복음의 메시지였다 (엡 2: 8).

바울은 갈라디아 신자들에 대한 실망감과 그들이 거짓 교사들에게 쉽게 넘어가는 것에 대한 놀라움을 표현하였다.

참된 복음을 타협하거나 절충하는 그들의 경향은 계속해서 그를 놀라게 하였다.

바울은 그 같은 현상을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노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이같이 속히”라는 말은 거짓 교사들이 도착한 후에 너무나도 빨리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져버린 것을 의미 할 수도 있다.

더 가능한 것은 바울은 이들 신자들이 참된 복음을 받은 후에 어떻게 그렇게 빨리 그 복음에서 떠나게 되었는지를 이상하게 여긴 것이 될 수 있다.

이전에 그들은 구원의 유일한 길로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 들였다.

이제 그들은 그 근본 원리를 흔들어 복음의 진리를 훼손시키는 가르침에 넘어가버렸던 것이다.

바울은 그같이 어리석은 일과 그 일로인해 생길 해로운 결과를 시정하려고 노력하였다.



믿음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 만이 은혜로 인간을 구원하실 수 있다는 복음의 진리를 감소시키는 일이 된다.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만 기인 될 수 있다.

우리는 거기에다 아무것도 더할 수 없다.

믿음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 만이 은혜로 인간을 구원하실 수 있다는 복음의 진리를 감소시키는 일이 된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참된 복음을 떠나서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질책하였다.

다른”이라는 말로 번역된 헬라어는 어떤 것이 이상하다, 전혀 다르다 혹은 불법적이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같은 종류의 것이 아닌 것을 나타냈다.

빌립보서 1장 14절부터 18절까지에서, 사도 바울은 참된 복음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전파되는 것을 기뻐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여러 다른 전파자들이 여러 다른 동기로, 심지어 “투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것을 인정하였다.

바울은 그들 전도자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참된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한 그 같은 인간적인 차이점들은 받아 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갈라디아 지역에 있는 거짓 교사들은 전적으로 다른 종류의 메시지를 가르쳤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과 선한 일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는 거짓되고 치명적인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바울에게, 그 같은 메시지는 기쁜 소식에 정 반대가 되는 소식이었다.

구원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견딜 수 없는 율법의 짐을 어깨에 져야 한다면, 그것은 기쁜 소식이 아니라, 무서운 소식이 될 것이다.

1장 7절  재빨리 시도 바울은 “다른 복음은 없나니”라고 말하면서, 구원의 기쁜 소식은 구원을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얻는 것임을 강조하였다.

거짓 교사들이 전한 복음은 복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용된 “다른”이라는 용어는 같은 종류의 같은 것을 뜻한다.

다른 복음이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다른 종류의 복음을 따랐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의 노력과 성취로 구원을 얻는 복음은 기쁜 소식이 아니다.

유대주의자로 알려진 거짓 교사들은 구원은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음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유대교의 율법에 순종함에도 달려 있다고 주장하였다.

한 예를 들어, 예수님을 믿는 믿음 외에,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그들은 주장하였다.   


1장 8 -9절 바울은 하나의 시나리오를 제시하여 유대주의 자들의 거짓 교리에 대한 자신의 강한 경멸감을 나타냈다.

그는 “하늘로부터 온 천사”에 대해 말했다.  

천사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아 전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사들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런데, 바울은 주장하기를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며 저주를 받(는다)”고 하였다.

바울에게 그 같은 일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복음의 메시지는 그 메시지를 전하는 자보다 더 중요하다.

“저주”란 단어는 어떤 것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파괴되는 것을 가리켰다.

그러므로, 복음을 재정의하거나 변질시키는 일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따르게 된다.

무엇이 바울로 하여금 그같이 강한 어조로 말하게 했을까?  

당시 복음의 진보는 초기 단계에 있었다.

거짓된 혹은 반 진리의 복음이 전파되면, 참 복음이 세상에 전파되는데 방해를 받게 될 것이다.

9절에서 바울은 강조하기 위해 거짓 교사들에 대한 저주를 다시 말하였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고 하였다.

오늘날에도 인간적인 노력과 행함-지향적인 복음이 존재하고 있다.

사람들이 선한 사람이 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거나, 교회에 잘 나가는 것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하며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같은 것들은 구원받은 사람의 특징의 하나가 되어야 하겠지만, 구원을 얻는 방편은 아니다.



복음을 재정의하거나 변질시키는 일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따르게 된다.  



1장 10절  - 이 구절에서 바울이 “이제 내가 사람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고 한 말은 그를 적대하는 자들이 그를 비방할 목적으로 한 말을 되 받아서 질문 형식으로 대답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바울이 구원을 얻는 쉬운 길인 은혜의 복음을 전파함으로 많은 추종자들을 얻었다고 역공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럴 경우, 그들은 복음을 전파하는 바울의 동기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던 것이다.    

그 같은 비난은 바울에게 큰 충격이 되었다.

이에 대해 그는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대답하였다.

바꾸어 말하면, 그 같은 의도로 복음을 전하였다면, 자기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말했던 것이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믿는 자들은 모두 복음을 전하도록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  참된 평강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그의 아들의 희생적인 죽음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게 된다.

●  믿는 자들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 외에 다른 방법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자들을 대적하고, 참된 믿음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은 당신을 누구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불러 주셨는가?  다음 주간에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당신은 어떤 도구들을 사용할 수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