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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찬양 - 제 12과 - 2018년 8월 19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사무엘하 22장 26 -36, 50 -51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8-08-15 (수) 04:12 조회 : 77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2018년 8월19 주일    

    

 12과



감사의 찬양



학습구절: 사무엘하 22장 26 -36, 50 -51절


성경진리: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의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주시고 공급해 주시며 충족시켜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감사의 찬양을 드려야 한다.  


주요교리: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께 가장 큰 사랑과 존경심과 순종심을 나타낼 의무가 있다.  


암송구절:  사무엘하 22장 31절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진실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시로다

As for God, his way is perfect:

The LORD’s word is flawless; he shields all who take refuge in him.    



시작하는 글:


감사하는 것은 우리가 행하는 어떤 것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감정이 되고 있다.

감사하는 마음에는 다른 부정적인 감정이 자리를 잡을 수 없다.

어떻게 한 사람이 미워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가?

감사한 일이 생기면, 두려움과 불안은 사라진다.

감사의 미덕은 감정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게 하는 것 같다.



감사는 다른 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한 사람이 감사를 표하면서도 하나님과 그가 누구이신지를 깨닫지 못할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무시하면서도 여전히 감사를 하나의 미덕으로 가리킬 수 있다.

경험만으로도 감사가 삶의 더 좋은 방법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성경은 항상 이 감사의 미덕을 그 미덕의 근원인 하나님과 그의 가치에 기초를 두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열매 (감사)와 뿌리(하나님 자신)를 분리시키는 실수를 하고 있다.

감사의 행위와 미덕은 단지 살아가기 좋은 방법만 되는 것은 아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찬양과 감사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 심을 알고 있었다.



본문배경설명


사무엘하 22장 1절 23장 39절

지난 주의 ‘본문 배경설명”에서 언급했듯이, 사무엘 하의 마지막 네 장인 21장부터 24장까지에는 여섯 개의 서로 다른 사건들 혹은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들은 다윗의 삶의 여러 다른 시기에 일어난 것들을 수집한 것이다.   

사무엘 하 21장은 두 가지 사건을 담고 있는데, 하나는 다윗 왕이 기브온 사람들에게 공의를 베풀어준 일이고 (21: 1 -14), 다른 하나는 다윗의 용사들이 블레셋의 거인족의 자손들을 죽인 일이 되고 있다 (21: 15 -22).

사무엘하 22 과 23장은 추가로 3개의 이야기를 제시하고 있다.

그들은 다윗이 하나님께 드린 ‘감사의 노래’ (22: 1 -51)와 ‘다윗의 마지막 말’ (23: 1 -7), 그리고 다윗의 용사들에 대한 두 번째의 보고(報告)이다 (23: 8 -39).  

사무엘하 22장 1절부터 51절까지의 “감사의 노래”는 시 18편과 극히 유사하다.

시 18편은 “여호와의 종 다윗의 시”로 돌리고 있는데, 그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그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와 사울의 손에서 건져 주신 날”에 “노래의 말”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노래의 출처를 밝히고 있는 말은 사무엘하 22장 1절의 서두에서도 언급되고 있는데, 아마도 그것은 다윗이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하나님께서 계속적으로 보호해 주신 것을 돌이켜 본 때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다윗 왕은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통해 많은 대적이나 원수들로부터 그를 구해주신 것을 감사하게 생각했는데, 사울은 결코 그들 중 작은 대적이 아니었다.

다윗은 감사의 노래를 은유(隱喩)들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강한 보호자로서 묘사하는 호칭 기도로 시작하고 있다 (22: 2 ~ 3).

그런 다음, 다윗 왕은, 특정한 상황이나 구체적인 시기를 밝히지 않고, 고난과 역경의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도움을 구했던 일을 기억하였다 (22: 4 -16).

매번 하나님은 그의 간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다윗보다 더 강한 대적으로부터 구해 주셨다 (22: 17 -20).

다윗은 하나님께서 구해주시는 일과 자신의 행함 사이에 상관 관계가 있는 것을 인정하였다 (22: 21-25).

그는 자신의 안전과 성공의 결과를 하나님의 은혜에다 돌리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다윗이 22: 26 -29에서 한말은 그리스도의 팔복의 메시지를 예시(豫示)하고 있다 (마태 복음 5: 3 ~ 11 참조).

다윗은 한 사람의 공의 혹은 불의(不義)에 따라 인류를 다루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묘사하였다.

다윗 왕은 자신의 업적, 특히 군사적인 성공을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돌렸다 (22: 50 -51).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죄로부터의 하나님의 구원은 훨씬 더 심오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윗은 구원과 영원한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찬양하는 것으로 그의 노래를 끝 맺고 있다 (22: 50 -51).

사무엘하 23장 1 ~7 절은 ‘다윗의 마지막 말”을 기록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다윗은 왕으로서 자신의 성공을 여호와께 돌렸다. 

다윗 왕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그와 더불어 세우신 “영원한 언약”을 감사하였다.

23장은 다윗의 용사들에 대한 추가 언급(23: 8-23)과 왕의 시위대에서 섬긴 사람들의 이름을 열거한 목록으로 끝나고 있다(23:  24-39).



학습구절 연구


거룩하신 하나님 (사무엘하 22장 26 -29절 )

22: 26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22: 27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리이다

22: 28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를 살피사 낮추시리이다

22: 29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어둠을 밝히시리이다  


이 감사의 시는 1 -3절에서, 여호와를 “반석”과 “요새” 및 “피난처” 등의 일반적인 은유들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

그 은유들은 분명히 군사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같은 언어는 많은 시편에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감사와 찬양의 노래의 일반적인 도입부분이 되고 있다.

4절부터 7절까지에서 우리는 물에 빠져 있는 것으로 표현된 은유를 보게 된다.  

다윗은 고통 가운데 빠져 있었고 하나님은 그를 깊은 고통의 물에서 구해 주셨다.

다윗의 경우, 그것은 순전히 은유였다.

요나도 같은 용어를 사용했는데, 그것은 말 그대로 물에 빠진 일이 되고 있다 (요나 2장 참조).

다시, 깊은 곳으로 떨어지는 은유도 보편적인 것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시 69: 2, 14-15 참조).

8-19 절에서, 하나님은 전사(戰士)로 묘사되고 있다.

그는 하늘에서 내려와 적으로부터 다윗을 구해주신다.

이 감사의 노래가 다윗의 전투와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에게 승리를 주셨는가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20 -25절에서, 다윗은 그의 첫 번째 주제(主題)를 전개하였는데, 주제는 ‘그가 의롭고 적들은  사악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구원하셨다’는 것이다.

22장 26 -27절 – 이들 구절은 직설적인 응징의 교리(膺懲의 敎理)를 제시해 준다.

21절에서, 다윗은 “여호와께서 내 공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따라 갚으셨으니”라고 하였다.  

한 사람이 신실하게 행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신실하게 대해 주실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악한 자들은 악하게 대하실 것이다.

26절과 27절은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대로, 그의 눈 앞에서 내 깨끗한 대로 갚으셨도다”고 한 25절의 설명이 되고 있다.  

언뜻 보면, 이것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비를 얻는 것이지, "행위에서 난 아니니”라고 한 말(엡 2 : 8-9)과 모순이 되는 것 같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사무엘하 22장 25 -27절의 말씀과 에베소서 2장 8 -9절의 말씀에 대해 똑같이 조심해야 한다.

에베소서의 말씀은 우리가 제멋대로 죄를 지울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리가 “그 은혜에 의하여” 구원을 받았다는 말은 죄인이 감옥에서 풀려나 자유롭게 되었으므로, 이제는 제멋대로 부도덕한 생활을 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좋은 것들만 받으며 살 수 있다는 허가증이 아니다.

바울은 로마서 6장 15절에서 “그런즉 어쩌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는 말로 그 같은 그릇된 주장을 반박하였다.    



은혜는 단순히 죄를 사함 받을 수 있는 수단과 방법 만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그같이 죄를 사함 받고 믿음의 생활을 하는 신자들이 의로움과 친절 그리고 신실함과 사랑 등으로 자라나게 하는 변화의 힘이 된다.


다윗은 여호와께서는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신다)”고 하였다.  

본문의 ‘자비한 자’라는 용어는 ‘신실한 자들’이라는 말로 이해될 수 있다.

구약에서 그 용어는 언약관계 속에서, 특별히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관계 속에서 가장 자주 나타나고 있다.

다윗이 여기서 여호와께서 그의 자비하심을 자비한 자에게 나타내셨다고 했을 때,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요점은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자비 혹은 신실하심의 품성을 나타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품성은 신자의 품성을 분명하게 밝혀주며 그같이 닮아가도록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그 같은 뜻을 밝혀주는 것이 요한일서 4장 10 -11절이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냈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한다. 

“완전한 자”로 번역된 용어는 구약에서 종종 희생 제물로 드리기에 합당한 짐승들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바꾸어 말하면, 적절한 종류의 짐승들로, 흠이나 상처가 없고, 병들지 않은 것들이었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이 세상에서 결코 흠이 없고 완전할 수 없다.

그 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완전하셨다 (히 4: 15).

그렇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뜻에 순종하기를 힘쓰며 우리의 죄를 담당하는 그의 의를 신뢰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그러면, 사무엘하 22 장 26 절의 본질은 하나님과 그의 언약 백성들은 같은 품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고 자라날 때, 더 많이 아들의 형상을 닮아간다 (롬 8: 29).

다윗은 또한 여호와께서는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리이다”고 노래하였다.  

깨끗하다”로 번역된 용어는 야금술(冶金術) 용어로, 정제된 금속을 가리킨다.

정제 공정은 도가니에다 극도의 열을 가하여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수한 금속 만 남기는 과정이다.

다윗은 그 용어를 비유적으로 사용하여 하나님의 “깨끗하심”을 나타내는 특징인, 하나님의 백성의 순수성을 묘사하였다.

산상 수훈에서,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하시며, 그들이 복이 있다고 하셨다 (마 5: 8).

악한 자(들)”로 번역된 용어는 하나님을 모르는 죄인들의 왜곡되고 비뚤어진 본성을 묘사하고 있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대조적으로, 날카로울 것이다.

22장 28 -29절 – 다윗은 또한 노래하기를, 여호와는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를 살피사 낮추시리이다”고 하였다.

곤고한 백성”으로 번역된 말은 어떤 장애나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고 있다.

그 말은 종종 약하고 극빈층에 속한 사람들을 지칭하기도 한다.

곤고한”으로 번역된 용어는 신체적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을 가리킬 수도 있다.

그 고통은 질병이나 환경여건에서 생겨날 수도 있다.

다른 한 편으로, 경제적 혹은 육체적 압박은 정신적인 고통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어떤 것이 되었건, 본문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겸손인 것 같이 보인다.

그런데, 악하고 교만한 사람들은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학대하며 멸시한다. 

여호와께서는 곤고한 사람들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사람들은 낮추신다.

구원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는 가능한 폭 넓은 의미를 갖고 있다.

그 용어의 기본적인 개념은 고통으로부터 구출을 받다 이다.

 군사적인 맥락에서, 그 용어는 적을 이기는 승리를 가리킬 수 있었다.

그 구원은 군대와 같은 어떤 인간적인 매개체를 통해 이루어졌다 할지라도, 그 일이 너무나 놀라워서 구원받은 사람이나 백성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알았다.

이 용어는 또한 하나님께서 개인들의 죄를 사해주심으로 구원해 주시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켜 주시는 영적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곤고한 백성을 구원하시는 반면에, “교만한 자를 살피사 낮추(신다).”

교만한 자(들)”은 겸손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과는 정 반대의 사람들이다.

교만한 자들은 성공을 위해 자신의 능력과 지력을 의존한다.

그들은 긍정적인 결과를 자신의 적성과 재능으로 돌린다.

사무엘하 22장의 많은 구절들은 성경의 다른 곳에 대응(對應) 구절들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라는 29절의 말은 시 119편 105절에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두 구절 모두 “”(燈)이라는 비유를 사용하고 있다.

시 119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등이라는 은유로 삼아 “내 길에 빛”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반해, 사무엘하 22장 29절은 여호와 하나님을 “등불”로 비유하여, “여호와께서 나의 어둠을 밝히시리이다”고 하고 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등불처럼, 그에게 삶의 상황과 방향에 대한 비전과 통찰력을 주셨다고 하였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믿는 자들은 삶의 길을 헤쳐나갈 때 위험과 기회에 직면하게 된다.

죄의 암흑과 하나님을 거역하는 길을 걸을 때, 현실들은 왜곡되거나 숨겨져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믿는 자들이 가는 길을 비추어 준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거룩한 성품에 신실하신 것을 믿어야 한다.


방패이신 하나님 (사무엘하 22장 30 -36절)

22: 30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진으로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넘나이다    

22: 31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진실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시로다

22: 32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

22: 33  하나님은 나의 견고한 요새시며 나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시며

22: 34  나의 발로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

22: 35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

22: 36   주께서 또 주의 구원의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의뢰한다고 하였다.

그는 자기가 성취한 모든 선한 일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통해 일하신 결과라는 것을 알았다. 

22장 30절 – 이 구절은 다윗이 초인적인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적진으로 달리며” “성벽을 뛰어 넘었다”는 뜻의 말이 아니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을 “의지”했을 때, 다윗은 용기와 담대함을 얻어 적진을 향해 진군하며 성벽을 공격할 수 있었다.

22장 31절 – 다윗은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진실하(다)”고 노래하였다.

”(道) 혹은 “”로 번역된 히브리어 명사는 “밟다” 혹은 “짓밟다”라는 뜻의 어근 동사에서 파생한 것이다.

그러므로, 길이란 말은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 생긴 길을 가리켰다.

비유적으로, 그 용어는 또한 그 같은 길을 따라 걸어 가는 삶의 여정, 특히 긴 여정을 묘사할 수 있었다.

다윗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길을 따라 감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라고 촉구하였다.

이는 여호와의 길은 “완전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길”로 부르시면서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다 (요 14: 6).

완전하다”로 번역된 원어는 인간이 삶의 여정에서 성취 할 수 있는 하나님의 표준을 나타내주고 있다.

죄 많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이 이 표준을 어떻게 성취할 수 있을까?

전쟁에서의 승리는 여호와께서 도와주신 은혜인 것을 알았던 것처럼, 다윗은 인생 여정에서의 성공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은혜인 것을 알았다.

믿는 자는 “여호와의 말씀” 안에 있는 그의 명령과 가르침에 따라 행함으로 하나님의 완전한 길을 걸어갈 수 있었다.

다윗 왕 당시의 성경은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의 다섯 권의 율법서로 되어 있었다.

그 말씀은 “진실”하고 틀린 것이 없었다.

다윗은 군대 배경을 끌어들여 계속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로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시라”고 하였다.

고대에 병사들이 맞붙어 싸울 때, 방패는 중요한 방어 무기였다.

여호와께서 방패가 되신다는 말은 우리 믿는 자들이 영적 전쟁을 할 때 그는 우리의 확실한 방어자가 되신다는 뜻이다 (엡 6: 16 참조).

22장 32절 –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라는 말로, 다윗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만이 존재하시며, “여호와”가 바로 그 하나님이 되심을 단언하였다.

여호와” 혹은 “야웨”라는 이름은 출애굽 이전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밝혀주신 언약의 이름으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이 되고 있다 (출 4: 14 -15).

다윗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신(多神)을 숭배하며 섬기던 시대에 살았다.

그런데, 그 같은 현상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사람들이 수 없이 많은 우상들이나 신들을 믿고 섬기고 있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 즉 이스라엘과 믿음의 언약을 세우셨고, 나중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와 구원자로 자신을 나타내신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시다.

22장 33 -35절 – 다윗은 계속해서 은유법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설명하며 묘사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자신의 “견고한 요새”로 부르면서 자기를 안전하게 지켜 주시는 것을 찬양하였다.

하나님은 자기 발을 암 사슴 발 같게 해 주셔서 높은 곳에 올라 서게 해 주신다고 하였다.

군인들은 훈련이 필요하다.

다윗은 자기가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훈련을 잘 시켜 주셨기 때문으로 승리의 공적을 하나님께 돌렸다.

22장 36절 – 사무엘하 22장 31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에게로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가 되시는 것)”으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이제 본 절에서 다윗은 “주께서 또 주의 구원의 방패를 내게 주(셨다)”고 한다.

구원에 대한 히브리 사람들의 개념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억압과 죽음으로부터 구해주신 것이었다.

그 같은 이해는 특별히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의 속박에서 구출을 받은 일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홍해가 이스라엘 백성 앞에 가로 막고 있고 애굽 병거들이 그들 뒤를 쫓고 있었을 때, 모세가 백성에게 큰소리로 이르기를,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고 하였다 (출 14: 13).

다윗도 그의 삶 속에서, 어떤 때는 전쟁터에서 그리고 어떤 때는 개인적인 상황에서 그 같은 위협을 경험하였다.

매 번마다, 하나님은 다윗을 속박과 죽음에서 구원해 주셨다.

더 나아가서, 다윗은 여호와께서 자기의 죄를 사해 주셨을 때, 더 깊은 의미의 구원을 경험하였다 (삼하 12: 13, 시 32: 1 ~ 5 참조). 

우리는 신약에서 하나님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로부터 구원을 얻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으며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엡 2: 8-10).


영원하신 하나님 (사무엘하 22장  10 -14)

22: 50  이러므로 여호와여 내가 모든 민족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

22: 51  여호와께서 그의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하도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를 택하여 왕으로 삼아주시고 영원한 보좌를 약속해 주신 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해 주신 약속은 궁극적으로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고 있다.

22장 50절 – “이러므로”라는 말은 하나님께 드리는 다윗의 감사의 노래가 끝나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노래 전체를 통해, 다윗 왕은 자신과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엄청난 역경을 겪었을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구원을 베풀어주신 일들을 회상하였다.

이제 그는 “여호와여 내가 모든 민족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라는 말로 감사하며 찬양하려는 자신의 결단을 표현하였다.

모든 민족 중에서” 혹은 “모든 이방 중에서”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다윗이 개인적으로 항상 한 분이신 참 하나님께 대한 충성의 본을 보일 것이라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다윗은 여호와께 감사할 뿐 아니라, 행함과 노래로,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 것이다.

22장 51절 - 다윗은 하나님에 대한 세 가지 선언으로 그의 노래를 마쳤다.

첫째로, 여호와는 “큰 구원을 주시(는 분)”이시다.

둘째로, 다윗은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 혹은 ‘변함 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것으로 인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구약성경 당시에, 왕들과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직분을 맡게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

그 같은 일은 하나님의 능력이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받은 지도자들에게 함께 하신다는 것을 나타내었다.

셋째로, 다윗은 그와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통치를 약속해 주신 여호와를 찬양했다.

이 놀라운 약속은 궁극적으로 “만왕의 왕”과 “만주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성취되었다 (눅 1: 32, 계 19: 16 참조).

신자 들로서, 우리는 아들이신 예수를 통해 구원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한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거룩한 성품에 신실하신 것을 믿어야 한다.

● 구원은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베풀어 주시는 구원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