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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의 반역을 저지한 다윗 - 제 10과 - 2018년 8월 5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사무엘하 20장 1 -2, 14 -21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8-08-01 (수) 21:44 조회 : 68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2018년 8월5일 주일     

     


제 10과



세바의 반역을 저지한 다윗



학습구절: 사무엘하 20장 1 -2, 14 -21절


성경진리: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재능과 기술을 사용하셔서 그의 목적과 목표를 성취하신다.  


주요교리:  전쟁과 평화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마음과 가르침에 따라,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야 한다.   


암송구절:  시 34편 14절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Turn from evil and do good; seek peace and pursue it.   



시작하는 글:


사람들은 모두 여러 가지 다른 재능을 갖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모두에게 그같이 다른 재능들을 선물로 주셨다.

이 선물들은 일반적으로 종자 형태로 주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삶 속에서 이들을 개발하고 키워야 한다.

우리가 어떤 재능을 받았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중요한 사안이긴 하지만, 아주 중요한 질문은 아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우리가 받은 능력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냐 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재질과 재능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 목적은 사람마다 다른가 아니면 같은가?  둘 다일 수 있는가?  설명해 보라  


인간의 마음은 불만(不滿)의 번식지(繁殖地)이다.  

그리 힘들이지 않고도, 불만의 불씨를 부채질하여 불길로 타오르게 만들 수 있다. 

이스라엘 지파들 간의 갈등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또 다른 반란이 발발(勃發)할 여건은 성숙되어 있었다.

사무엘하 20장에서, 다윗과 요압 그리고 아벨 성의 여인이 상황과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기술과 재능을 사용했는지를 찾아보라.



본문배경설명


사무엘하 20장 1절부터 26절까지

19 장은 다윗이 그 자신의 지파인 유다 지파에게 보인 분명한 편애로 인해 생긴 유다 지파와 북쪽 열 지파 사이의 분노심과 상호 비난으로 끝났다.

우리는 당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유다 지파를 가장 중요한 주도적(主導的)인 지파로 인정하였을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그같이 생각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다윗의 계보와 유다 지파를 통해 오셨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모든 지파들은 비교적 다윗 지파보다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특별히 유다지파가 후에 남왕국이 되어 신앙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의 초기 단계에서는 에브라엠 지파가 다른 지파들보다 더 강하고 우세했으며, 가나안 땅의 중심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유명하거나 거룩한 성읍들 가운데서 많은 곳이 에브라임 지파 지역 안이나 근처에 있었다.

그들 성읍에는 세겜, 미스바, 실로, 아이, 무깃도, 도단 등이 포함되었으며, 후에 북 왕국의 수도가 된 사마리아도 들어 있었다.  

나중에, 에브라임 지파의 위치가 북쪽 지파들 사이에서 매우 우세하였기 때문에 북 왕국 전체를 단순히 "에브라임"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예, 사 7: 2; 11: 13; 17 : 3; 31 : 18-20, 겔 37 : 16, 호 4 : 17).

압살롬의 죽음으로 반란은 끝이 났지만, 그렇다고 이스라엘 내의 지파들 간의 긴장과 갈등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19: 40-43 참조).

실제로, 다윗 왕이 통치권을 회복(回復)하고 왕이 예루살렘으로 귀환(歸還)하게 된 일은 베냐민 지파 사람으로 “시바”라고 하는 자가 일어나 북쪽 지파들을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킨 계기가 되었다.

결과는 북쪽 지파에 속한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 왕을 따르기를 그치고 반역하는 세바를 따랐으며, 유다 사람들은 다윗 왕에게 계속 충성을 하였다 (20: 1 -2).

예루살렘의 궁전으로 돌아온 후, 다윗 왕은 먼저 전에 예루살렘을 떠날 때 남겨두어 왕궁을 지키게 했던 “후궁 열명”을 붙잡아 별실에 가두고 감시케 하는 일을 하였는데, 그들은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계략에 따라, 아버지이자 왕인 다윗에게 굴욕감을 주고 자신의 왕권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동침했던 여인들이었다 (왕하 16: 21).

그 다음으로, 다윗 왕은 요압 대신에 군대 사령관으로 임명한 “아마사”에게 유다 사람들 중에서 정선(精選)한 군사들을 불러 모아서 세바를 찾아 제거함으로 북쪽 지파들에 의한 반란을 진압(鎭壓)하라고 명령하였다 (20: 4 -22).

군사를 모집하러 간 아마사가 정하여 준 기일 내에 돌아오지 않자, 다윗 왕은 요압의 아우인 아비새에게 그의 용병들을 이끌고 세바를 추격하여 제거하도록 명령하였다 (삼상 26: 6; 삼하 10: 10).

다윗 왕은 지체할 경우 세바가 견고한 성읍으로 피하게 될 것을 염려하였던 것이다.

아비새가 군사들을 이끌고 출동하자, 요압과 그의 군사들도 합류하였다.  

그들이 “기브온 큰 바위 곁에” 이르렀을 때에, 군사를 모집하러 나갔던 아마사를 만나 합류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요압이 그 대신 군 사령관에 임명된 아마사를 죽일 수 있는 기회와 계기가 되었다 (20: 9 -10).

요압은 아마사가 압살롬의 반란에 동조하여 군 사령관까지 한 것에 대한 복수로 그를 살해했을 수도 있지만 (삼하 17: 25), 더 중요한 동기는 군 사령관의 직책을 되찾으려는데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자, 군사들과 용병들은 자연히 요압의 지휘를 따르게 되었다.

그러는 중에, 요압의 군대는 시바를 따라 잡게 되었는데, 그는 아주 먼 북쪽지역에 있는 “벧마아가 아벨”이라는 한 견고한 성읍에 피해 있었다.

요압의 군대는 그 성읍을 포위하고 토성을 쌓아 성벽 위로 올라가 성벽을 헐려고 하였다.

그 성읍에서 “지혜로운 여인 한 사람”이 요압과 협상을 벌여 요압이 성읍을 공격하지 않는 조건으로 시바의 머리를 베어 “그의 머리를 성벽에서 당신에게 내어 던지리라”고 약속하였다 (20: 14 -22).

그 여인은 그의 지혜로 온 성민을 설득하여 세바의 머리를 잘라서 요압에게 던져 주었다.

요압은 공격을 그치고 그 성읍에서 떠났다.

20 장의 마지막 네 구절은 다윗의 주요 관리들의 이름과 직책들을 열거하고 있다.

그 목록의 목적은 다윗 왕국이 안정을 찾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 되고 있다.



학습구절 연구


분열(사무엘하 20장 1 -2절 )

20: 1   마침 거기에 불량배 하나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세바인데 베냐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이었더라 그가 나팔을 불며 이르되 우리는 다윗과 나눌 분깃이 없으며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우리에게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장막으로 돌아가라 하매 
20: 2    이에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 따르기를 그치고 올라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따르나 유다 사람들은 그들의 왕과 합하여 요단에서 예루살렘까지 따르니라


사무엘하 19장 15절은, 다윗 왕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 위해 요단강에 이르렀을 때, 유다 지파 지도자들이 “왕을 맞아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길갈로 오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실제로, 다윗 왕에게 환궁하라고 제일 먼저 청했던 사람들은 “이스라엘”로 대표되고 있는 북쪽 10지파 지도자들이었는데 (19: 9 -10), 유다지파 지도자들은 다윗 왕의 요청을 받고 나중에 길갈로 와서 북쪽 지파 지도자들과 의논도 하지 않고 자기들이 나서서 왕의 일행이 요단강을 건너게 하는 일을 주도하였다.

북쪽 10지파 지도자들은 그 일을 “형제 유다 사람들이” “왕을 도둑하여 왕과 왕의 집안과 왕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가게” 한 것으로 표현하였다 (19: 41).

유다 지파 지도자들은 북쪽 10지판인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너희가 어찌 이 일에 분 내느냐”고 하면서 “왕은 우리의 종친인 까닭이라”고 하였다 (19: 42).

20장 1절 – “적시 적재 적소(適時 適材 適所)라는 말이 있다.

적절한 때와 장소에 그 때와 장소에 맞는 사람이 있다는 뜻의 말이다.

그렇지만, 정반대의 현상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다윗 왕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문제로 인해, 유다 지파 지도자들과 이스라엘 지파 지도자들 사이에 갈등과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때에, “세바”라고 하는 “베냐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이 그곳에 있었다.  

세바는 사울과 같은 지파 사람이었으며, 다윗의 집과 사울의 집 사이에는 확연한 적대감이 있었다 (삼하 16: 5 - 8).

시바는 “불량배”로 불려지고 있는데, 히브리어 본문에서 “불량배”는 “벨리알”이라는 말로 표기되고 있다.  (고후 6: 15).

그 말의 정확한 뜻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성경학자들 간에 다른 의견들이 있다.

유대교 율법학자들은 전통적으로 ‘벨리알’이라는 말을 지하 세계와 연결시켜 사용하였다.

따라서 1 세기경에 이 용어는 사탄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될 수 있었다 (고후 6: 15).

그러나 ‘불량배’라는 용어가 나타내고 있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세바가 불만과 불화의 씨를 뿌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바는 다윗 왕을 예루살렘으로 호위하기 위해 길갈로 왔던 베냐민 지파 사람들의 사령관이었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그는 “나팔을 불며” 다윗 왕이 귀환하는 문제로 불평과 불만에 가득 차 있던 북쪽에서 온 지파 사람들에게 “우리는 다윗과 나눌 분 깃이 없으며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우리에게 없도다”고 하면서 “각각 장막으로 돌아가라”고 하였다.

각각 장막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은 먼저 왕의 행렬에서 물러나 자신의 지역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라는 요구였다.

그뿐 아니라, 그 명령은 또한 온 이스라엘이 한 통치자 밑으로 회복되는 것을 거부하라는 암묵적인 요구가 되었다.

이 운명적인 말이 솔로몬이 죽은 후에 다시 표출되었고 이스라엘 백성이 두 왕국으로    분리하게 된 것을 보면, 유다 지파와 나머지 10지파들 사이에 갈등의 골이 얼마나 깊었던 지 그리고 그들을 통일왕국으로 만든 다윗의 지도력이 얼마나 탁월했는지를 알 수 있다 (열왕기 상 12 : 16 참조).

20장 2절 본문은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 따르기를 그치고” 세바를 따랐다고 밝히고 있다.

이스라엘이라는 명칭은 구약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그것은 문맥에 따라 인종적, 정치적, 혹은 종교적인 뜻을 가질 수 있었다.

종종 그 명칭은 집합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을 가리켰다.

족장 야곱의 이름은 그가 브니엘에서 하나님과 씨름을 한 후에 이스라엘로 바뀌었다 (창 32: 28 참조).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이기신다’는 뜻이 되고 있는데, 야곱의 후손들은 종종 이스라엘 민족 혹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불려졌다.

그 명칭은 또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하신 약속들을 반영하고 있다 (창 12: 1-3, 15: 5; 17: 3 -8; 26: 2 -5 참조).

성경의 다른 곳에서, ‘이스라엘’ 이라는 명칭은 정치적인 뜻을 담고 있어서, 북쪽의 열 지파가 연합하여 정치적인 구성체로 만든 북 왕국을 가리켰다.

남 왕국은 그 지파이름인 유다를 그 명칭으로 사용하였다.

시바의 정치적인 분리의 요구는 즉각적인 호응을 얻었다.

“온 이스라엘(북쪽 10지파) 사람들이 다윗 따르기를 그치고 올라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따(랐다).”

반대로, “유다 사람들은 그들의 왕과 합하여 요단에서 예루살렘까지 따(랐다).”  

다시 말하면, 유다 사람들은 앞장서서 다윗을 보호하며 예루살렘까지의 나머지 길을 호위하였던 것이다.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돌아 오는 일은 상징적인 의미와 실용적인 의미가 있었다.

먼저 상징적인 면에서, 그것은 다윗이 하나님의 백성의 유일하고도 합당한 통치자로 세움을 받은 사실을 다시 한번 나타내 주었다.

시바가 원했던 통치에는 수도가 없었다.

실용적인 면에서,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돌아 온 것은 왕국의 모든 기능을 회복하는 일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왕국에 대한 정책을 시행하기에 충분한 힘과 자원을 소유하고 있은 것은 세바가 아니라, 다윗 왕이었다.

죄는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시고 공급해 주시는 자원들과 세워주시는 지도자들에 대해 의혹을 품게 한다.

죄는 또한 삶을 위한 하나님의 지시와 인도를 거부하고 이기적인 욕망을 추구한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

종종 그들은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도록 세워주신 지도자들을 따르기를 거부한다.


내전(內戰)  (사무엘하 20장 14 -16절)

20: 14 세바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 두루 다녀서 아벨과 벧마아가와 베림 온  땅에 이르니 그 무리도 다 모여 그를 따르더라  

20: 15 이에 그들이 벧마아가 아벨로 가서 세바를 에우고 그 성읍을 향한 지역 언덕 위에 토성을 쌓고 요압과 함께 한 모든 백성이 성벽을 쳐서 헐고자 하더니

20: 16 그 성읍에서 한 지혜로운 여인 한 사람이 외쳐 이르되 들을지어다 청하건대 너희는 요압에게 이르기를 이리로 가까이 오라 내가 네게 말하려 하노라 한다 하라  


20장 14절 – 다윗 왕은 시바의 반역에 즉각적이고도 적극적인 방법으로 대응하였다.

그는 압살롬의 반란을 겪었을 때처럼, 불시에 당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하였다.

예루살렘에 돌아오자 마자, 다윗 왕은 요압 대신 군지휘관으로 삼은 아마사에게 (17: 25) 삼일 동안 안에 유다 백성들 중에서 군사를 모집하여 세바를 추격하도록 명령하였다.

아마사는 정해진 기일 내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군사들을 모집하는데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윗 왕은 요압의 아우인 아비새에게 왕의 친위대를 이끌고 가서 세바의 반란을 진압하라고 명령하였다.

다윗은 세바의 반란이 압살롬의 반역보다 더 위험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세바는 북쪽 지파들 중의 하나인 베냐민지파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세바의 반란은 왕국을 영구히 분열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었다.

다윗은 또한 세바가 세력을 규합하고 견고한 성읍들의 호응을 얻어 강해질 것을 염려하였다.

그같이 될 경우, 그를 쳐부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을지라도, 매우 어려운 일이 될 것이 분명하였다.

아비새가 군사들을 이끌고 출동하자, 요압도 그의 군사들을 데리고 합류하였다.

그런데, 그들은 도중에 아마사와 그가 모집한 군병들을 만나게 되었다.

요압은 아마사를 살해하게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요압은 군 지휘권을 행사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다윗 왕의 신속하고도 즉각적인 추격으로 인하여 북쪽 지파들로부터 군사를 모집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시바는 피난처를 찾기 위해 북쪽으로 도피하였다.

그는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가운데로 다니다가 “벧마아가 아벨”이라는 한 견고한 성읍으로 피하게 되었다.

20장 15절 – 튼튼한 성벽으로 둘러 쌓여있던 “아벨 성읍”은 외부의 공격을 막을 만큼 강하였다.  

그러므로, 병사들이 그 성을 직접 공격할 경우, 수 많은 사상자가 생길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요압의 군대는 에바 성읍을 포위하고 “그 성읍을 향한 지역 언덕 위에 토성”을 쌓았다.

포위 공격 전략의 일부는 성읍에 식량과 물의 공급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포위 공격 전략의 또 다른 부분은 성벽을 파괴하거나 우회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포위공격은 장기화 하여 먹을 양식과 마실 물이 떨어지면 항복하게 만드는 전략을 짤 수도 있었다.

20장 16절 – 또한 포위 공격은 종종 전체 인구가 학살 당하는 겉잡을 수 없는 폭력으로 끝나기가 쉬웠다.  

당시 포위 공격은 장기간의 전투였다.

포위 공격을 하는 동안, 성 밖에서 공격하는 병사들은 성안에서 수비하는 병들보다 더 큰 위험에 직면할 수 밖에 없었다. 

진입로나 토성을 쌓는 동안, 성 밖에 있는 병사들은 성 안에 있는 병사들의 공격에 노출될 수 밖에 없었다.

공격군에게 사상자가 생길 경우, 분노에 찬 군사들은 성을 점령한 후에 힘 없는 일반 사람들에게 까지도 보복을 할 수 있었다.  

그 같은 사태와 상황을 내다보고, 그리고 자기가 살고 있는 성읍을 그 같은 참사와 악몽에서 구하기 위해, “지혜로운 한 여인”이 요압과 말할 것을 요청하였다.

지혜로운”으로 말로 번역된 단어는 상황판단이 빠르고 민감한 문제들을 이해하고 다룰 수 있는 사람을 나타내고 있다.

이 여인은 자기 성읍이 항복하지 않을 경우, 요압이 자기 성읍에 어떤 자비도 베풀지 않을 것을 알았다.

요압은 주민들을 모두 반역자로 생각할 것이 분명하였다.

병사들이 마침내 성벽을 허물고 성안으로 침범해 들어올 경우, 그들의 분노는 폭발할 것이다.

더욱이, 성의 주민들은 세바에게 빚진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초대 받은 것도 아닌데 그들의 성읍에 와서 재앙을 자초하고 있었다.

그 여인이 공격하고 있는 병사들을 향하여 “들을지어다 들을지어다”라고 큰 소리로 외친 것을 보면, 성읍에서 크게 인정을 받고 있었거나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 여인은 군 사령관인 요압에게 드릴 말씀이 있으니 “이리로 가까이 오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하였다.

그 여인은 요압이 포위당한 자기 성읍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것을 알고 있었다.

위기에 직면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한다.

지혜는 지식의 적절한 적용으로 정의 될 수 있다.

하나님의 지혜와 인간의 지혜는 다를 때가 많다.

인간의 지혜는 문제를 더 나쁘게 만들 수도 있는데 반해, 하나님의 지혜는 문제를 해결해 준다.


지혜가 승리하다  (사무엘하 20장 17 -21) 

20: 17 요압이 그 여인에게 가까이 가니 여인이 이르되 당신이 요압이니이까 하니 대답하되 그러하다 하니라 여인이 그에게 이르되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하니 대답하되 내가 들으리라 하니라 

20: 18 여인이 말하여 이르되 옛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아벨에게 가서 물을 것이라 하고 그 일을 끝내었나이다 

20: 19 나는 이스라엘의 화평하고 충성된 자 중 하나이거늘 당신이 이스라엘 가운데 어머니 같은 성을 멸하고자 하시는도다 어찌하여 당신이 여호와의 기업을 삼고자 하시나이까  

20: 20 요압이 대답하여 이르되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삼키거나 멸하거나 하려 함이 아니니 

20: 21 그 일이 그런 것이 아니라 에브라임 산지 사람 비그리의 아들 그의 이름을 세바라 하는 자가 손을 들어 왕 다윗을 대적하였나니 너희가 그만 내 주면 내가 이 성벽에서 떠나가리라 하니라 여인이 요압에게 이르되 그의 머리를 성벽에서 당신에게 내어 던지리이다 하고


20장 17절 – 아벨 성읍의 지혜로운 여인은 먼저, “당신이 요압이니이까”라는 질문으로, 자기에게로 가까이 오고 있는 군인이 요압인지를 확인하였다.

이 여인은 사령관인 요압 만이 자기의 청원을 들어 줄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 여인이 매우 신중하게 취한 행동이었다.

요압은 그 여인에게 “그러하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지혜로운 그 여인은 요압에게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라고 간청하였다.

그러자, 요압은 “내가 들으리라”고 대답하였다.

이 여인이 요압에게 취한 전체적인 접근 방법은, 신중하고도 회유적인 자세로 한 것으로, 기술적이고도 지혜의 특징들을 담고 있다.



지혜와 기술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한 사람이 기술만 있고 지혜가 없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20장 18 -19절 - 그런 다음 그 여인은 요압에게 자신과 자신의 성읍을 위해 열심히 탄원하기 시작하였다.

그 여인은 먼저 옛 부터 전해내려 오는 그 성읍에 대한 ‘한 속담’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아벨에게 가서 물을 것이라”는 말은 과거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툼이나 분쟁이 생길 경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얻기 위해 그 성읍을 찾아왔던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 여인은 또한 “그 일을 끝내었나이다”라는 말로, 그렇게 해서 무슨 일이든지 해결하였다고 하였다.

그 여인이 요압에게 속담을 인용한 일에서는 두 가지 뜻이 암시되고 있다.

하나는, 요압의 군대가 아벨 성을 공격하는 문제도 여기서 충분히 해결될 수 있다는 뜻이 되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요압의 군대가 아벨 성을 파괴하는 것은 지혜의 성으로 알려져 있는 소중한 곳을 멸하는 어리석은 일이 되고 있는다는 것이다.

문제 해결의 핵심 요소는 관련자들이 진정으로 상대방의 말을 들으려고 하느냐였다. 

그 여인은 자기를 “이스라엘의 화평하고 충성된 자 중 하나”로 묘사하였다.

화평하다”라는 말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갈등이나 폭력의 부재 이상의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그 말이 암시하고 있는 강한 뜻은 그 여인이 언약의 말씀에 순종하며 충성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 되고 있다.  

반면에, ‘화평하고 충성된 자”라는 말은 그 여인 자신 뿐 아니라, 그 성읍도 포함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 같은 뜻은 그 여인이 아벨 성읍을 “어머니 같은 성”으로 묘사한 것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다음 단계로 그 여인이 접근한 방법은 요압의 의도와 동기를 캐묻는 것이었다.

요압이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고도 확실하였다.

문제는 “어찌하여” 요압이 그 같은 일을 하고 있느냐였다.

아벨 성의 지혜로운 여인은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하나는, 그가 “이스라엘 가운데 어머니 같은 성을 멸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그가 “여호와의 기업을 삼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여호와의 기업”이라는 말은 아벨성을 가리키고 있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그 여인이 하고 있던 일을 "생각을 가시화하는 과정”으로 묘사하고 있다.

생각을 가시화하는 과정”은 자기가 어떤 결정이나 결론에 도달하게 된 생각의 과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되고 있다.

당신이 어떻게 해서 그 같은 입장을 취하게 되었는지를 다른 사람들이 보도록 돕는 일은 가능한 해결책을 용이하게 해 주는 방법이다.

아벨 성의 지혜로운 여인은 요압으로 하여금 그가 하고 있는 일을 왜 하고 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해 주었던 것이다.



당신이 어떤 특정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 생각의 과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은 갈등이나 분쟁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20장 20 -21절 – 그 여인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요압은 그의 군대가 아벨 성을 포위하여 공격하고 있는 그의 목적과 동기를 분명하게 밝혀 주었다.

먼저 그는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고 거듭 부인함으로, 아벨 성을  “삼키거나 멸하거나 하려 함이” 그의 목적이 되고 있지 않은 것을 강조하였다.



종종 타협의 기술과 기교가 필요한 때와 장소가 있기는 하지만, 결코 핵심 가치와 신념을 훼손시키지 말아야 한다.



요압이 하고 있는 것은 역사적인 성읍을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한 반역자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요압은 “에브라임 산지 사람 비그리의 아들”로 “그의 이름을 세바라고 하는 자”라는 말로 그 반역자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밝혔다.

그리고, 요압은 세바가 “자기 손을 들어 왕 다윗을 대적(한 자)”임을 밝혔다.

요압은 또한 “너희가 그만 내 주면 내가 이 성벽에서 떠나가리라”는 말로 해결책의 조건을 제시하였다.

그 지혜로운 여인은 요압의 말을 귀담아 듣고 그의 조건에 동의하였다.

그 여인은 “그의 머리를 성벽에서 당신에게 내어 던지리이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여인의 말은 어디까지나 잠정적인 성격의 것이었다.

그 조건이 시행되려면, 성읍 사람들이 동의가 필요하였다.

그 여인은 “그의 지혜를 가지고 모든 백성에게 나아가” 요압의 요구조건과 합의 조건을 설명하였고 그들은 요압의 조건을 승인하였다 (20: 22).

그들은 “비그리의 아들 세바의 머리를 베어 요압에게 (던져 주었다)”

마침내, 그날 지혜가 승리를 하였다.

 그 여인과 요압은 아벨 성읍을 살리는 타협안에 합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지혜로운 여인은 효율적인 의사 소통을 위해 어떤 원리들은 보여주었는가? 요압은 의사 전달의 어떤 원리들을 보여주었는가?



믿는 자들은 다른 사람들과 타협을 지혜롭게 그리고 기술적으로 함으로 서로에게 유익이 되는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타협이나 합의(合意)를 위해 노력하면 분쟁 당사자들은 유익한 결과를 얻고 분쟁을 종식시킬 수 있다.

그렇지만, 신자들은 절대로 성경의 핵심적인 가치와 신념을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먹는 음식과 같은 문제를 놓고 다투는 일 같은 것을 하면 안 된다고 경고하였다 (로마 14: 1-3).

동시에, 바울은 “은혜에 의하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것”과 같은 중요한 진리에 대해서는 타협하기를 거절하였다 (엡 2: 8).


현재 가정이나 교회 혹은 지역 사회 내에 어떤 갈등들이 존재하고 있는지 혹은 잠재해 있는지를 살펴보자.

그 같은 갈등들을 피하거나 완화시킬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자.

시편 34편 10절 말씀을 읽고 묵상하자.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도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죄는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시고 공급해 주시는 것들과 세워주시는 지도자들에 대해 의혹을 품게 한다.  

● 위기에 직면 하게 될 때, 신자들은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한다.

● 신자들은 쌍방에게 유익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기술적으로 협상을 벌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