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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권의 복원 - 제 9과 - 2018년 7월 29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사무엘하 19장 1 -15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8-07-22 (일) 00:22 조회 : 94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2018년 7월29일 주일


제 9과



왕권의 복원



학습구절: 사무엘하 19장 1 -15절


성경진리:

하나님을 섬기는 지도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들 자신에게 두고 있는 신뢰심을 키울 수 있는 기회들을 잘 관리하며 수행한다.


주요교리:  전쟁과 평화  

그리스도인들의 중요한 의무와 책임의 하나는 공의(公義)의 원칙에 따라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기를 힘쓰는 것이다.  


암송구절:  시 37편 3절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 지어다

Trust in the LORD and do good:

dwell in the land and enjoy safe pasture.  



시작하는 글:


신뢰는 부서지기 쉬운 필수품으로, 쌓기는 힘들고 무너뜨리기는 쉽다.  

지도자는 어떻게 신뢰를 쌓아가는가?

진정으로 위대한 지도자들은 따르는 사람들이 자신들과 강한 인간 관계를 맺게 하는 방법으로 자신들의 인간성을 보게 한다.

그렇지만, 유능한 지도자들은 역경에 직면하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더라도 일을 중단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



한 지도자가 자신의 취약점을 공개했을 때, 그 지도자에 대한 당신의 견해는 어떻게

바뀌는가?  당신은 그것을 그 사람의 강점으로 보는가 아니면 약점으로 보는가?

설명해 보라.



한 유명한 목사가 한번은 예수님께서 일반 사회에서 리더십의 원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들을 어떻게 어기 셨는지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지도자는 위기 상황에서 결코 개인의 약점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가정이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위기 상황에 직면하셨을 때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같이 하셨다.

그는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셨다 (마 26: 38).

다윗의 인간적인 측면은 압살롬의 반역을 둘러싼 사건들에서 분명하게 나타났다.

자신의 슬픔과 비탄을 겉으로 나타내고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도 전쟁터에 나가겠다고 한 일등은 당시의 사람들이 그를 따르게 하며 그를 왕의 자리로 회복시키게 한 요인과 영향력이 되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생활영역에서든지, 지도자가 용기 있게 자신의 인간성을 가식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사람들은 그를 더 신뢰하고 존경하게 된다.



본문배경설명


사무엘하 18장 1절부터 19장 43절까지

사무엘 하 17 장에 보면, 다윗의 모사였다가 압살롬의 모사가 된(15: 12) “아히도벨”은 압살롬에게 자기가 “만 이 천명”의 군사들을 모집하여, 다윗의 군사들이 요단 강 서쪽에 있을 때 추격하여 그들이 “곤하고 힘이 빠졌을 때에” 기습하겠다고 하였다.

그것은 압살롬에게 성공을 안겨 줄 좋은 기회였다.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도 다 그 말을 옳게 여겼다 (17: 1 -4).

그런데, 압살롬은, 매우 중요한 사안임으로, “후새”라는 다른 모사를 불러 그의 전략을 듣기로 하였다 (17: 5).

후새는 압살롬에게 “이번에는 아히도벨이 베푼 계략이 좋지 아니하나이다”고 하면서 다른 전략을 제시하였다 (17: 7 – 13).

그것은 전국적으로 군사들을 모은 다음, “친히” 왕이 그들을 이끌고 전장에 나가서 단번에 전멸시킴으로 용맹을 떨치자는 전략(戰略)이었다.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렉 사람 후새의 계략은 아히도벨의 계략보다 낫다”고 하면서 후새의 계략을 따르기로 하였다.

그런데, “후새”는 다윗의 권고에 따라 압살롬에게 위장 전향한 모사였다(15: 32 -32 -37), 실제로, 후새는 거짓 권고로 압살롬의 계략을 막았던 것이다 (17: 5 -14).

그리고 후새는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을 통하여 다윗 왕에게 압살롬의 계략을 알려주면서 “오늘밤에 광야 나루터에서 자지 말고 아무쪼록 건너가소서”라고 하였다 (17: 16).

자기 계략이 시행되지 못함으로 자존심이 크게 상하고 왕과 백성에게 명성과 영향력을 상실한 아히도벨은 고향으로 돌아가 스스로 목매어 죽음으로 자살로 일생을 끝맺고 말았다 (17: 23).   

후새가 압살롬에게 조언한 전체적인 요점은 압살롬을 지체시키고, 지치고 피곤한 다윗의 군대가 요단 강 서쪽에 있을 때 공격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성경은 그 모든 것이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행하신 것으로 밝히고 있다 (삼하 17: 14).

다윗의 군사들은 요단 강을 건너 “마하나임”에 이르렀고,

압살롬은 모든 이스라엘 사람과 함께 요단을 건너” “길르앗 땅”에 진을 쳤다 (17: 24, 26).

다윗의 군사들이나 압살롬의 군사들은 똑같이 보급 물자가 부족하였다.

압살롬의 군대는, 대부분이 전투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광야 전투에 부적합하였다.

반면에, 다윗의 군사들은 대부분 다윗과 함께 전투경험이 많은 노련한 용사들이었다.

삼하 18장 6절은 다윗 군대와 압살롬의 군대가 전투를 벌린 곳으로 “에브라임 수풀”로 밝히고 있는데, 우리는 그 같은 전투가 벌어진 정확한 장소와 때를 알지 못한다.

여호수아 17: 14-18은 이 장소를 간접적으로 가리키는 기록일 수 있다.

그 장소는 요단 강 동쪽의 마하나임 근처였던 것으로 보인다.

왕을 위해 싸우겠다고 찾아오는 자원 병들로 인해 군대가 급성장할 뿐 아니라, 전투에 임할 준비를 갖추기 위해, 다윗은 군대를 세 부대로 조직하는 일을 시작하였다.

그런 다음, 한 부대는 “요압”에게, 두 번째 부대는 “아비새”에게, 그리고 세 번째 부대는 “잇대”에게 맡겨 지휘하게 하였다.

다윗 왕은 “나도 반드시 너희와 함께 나가리라”고 하면서 전쟁터에 나가겠다고 하였다 (18: 2).

다윗의 군사들은 “왕은 나가지 마소서”라고 하면서 다윗이 전쟁터에 나가는 것을 극구 만류하였다.

대적들은 왕을 표적으로 삼을 것이며, “우리가 절반이나 죽을지라도 우리에게 마음을 쓰지 아니할 터이라”고 하였다.

왕은 우리 만 명보다 중하시오니 왕은 성읍에 계시다가 우리를 도우심이 좋으니이다”고 하였다 (삼하 18: 3).

다윗 왕은 싸우러 나가는 세 장군들에게 “나를 위하여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우하라”고 명령하였다.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모든 군 지휘관에게 명령할 때” 군사들은 다 들었다 (삼하 18: 5).

다윗의 군대는 “에브라임 수풀에서” 압살롬의 군사들과 싸움을 벌려 완전이 패배시켰다 (18 : 6 -8).

수풀 속에 흩어져서 서로 쫓고 쫓기며 싸우는 중에, 압살롬은 자기 군사들에게서 떨어져서 다윗의 군사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압살롬은, 노새를 타고 급히 도망가다가, 큰 상수리 나무 가지에 머리가 걸리게 되었다 (삼하 18: 9).

다윗의 병사들은, 아들을 해하지 말라고 한 왕의 명령을 기억하고, 나뭇가지에 달린 상태로 남겨둔 채 사령관인 요압에게 보고하였다.  

요압은 그 기회를 이용하여 창으로 압살롬을 찔렀다.

요압의 무기 병들이 그를 쳐서 죽이고 수풀 가운데 있는 “큰 구멍”에다 장사하였다.  

압살롬이 죽자, 반역으로 왕권을 잡으려는 시도도 끝나고 말았다 (18: 9 -18).

제사장인 “사독의 아들 아하마아스”가 승전의 기쁜 소식을 왕에게 먼저 전하는 공을 세우고 영예를 차지하기를 원하였다.

요압은 압살롬의 죽음으로 인하여 다윗 왕에게 그것이 기쁜 소식이 아니라 슬픈 소식이 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소식을 “구스 사람”을 시켜 전하게 하였다 (18: 19 -32).

아들이 죽은 것을 알게 된 왕이 걷잡을 수 없는 슬픔에 빠지자, 그 날의 승리로 인한 기쁨과 축하는 도리어 슬픈 분위기로 변하고 말았다(18: 33 – 19: 4).

요압 장군은 그같이 슬퍼하고 있는 왕을 찾아가 왕을 책하는 말로 간청하였다.

그는 왕께 직접 나가 그의 군사들을 위로하며 축하해 주어야 한다고 하였다 (19: 5 -7).

다윗 왕은 요압의 말을 듣고 그같이 하였다 (19: 8).

사무엘하 19장 9절부터 30 절까지에는 승리한 왕에게 충성을 되새기기 위해 여러 개인들과 그룹들이 보인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유다 족속의 장로들은 “왕을 맞아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길갈”로 나왔다(19: 9 -15).

베냐민 지파 사람이자 사울 왕의 친족이었던 “시므이”는 다윗 왕이 예루살렘에서 도망 할 때 그를 향하여 돌을 던지며 저주했었는데(삼하 16: 5 -13), 이제 그는 요단 강으로 달려와 왕에게 용서를 빌었다 (삼하 19: 10 -23).  

시므이가 다윗 왕을 저주했을 때, “아비새”가 화가나서 쫓아가 죽이겠다고 하는 것을 다윗 왕은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라고 하면서 그냥 놔두라고 했었는데 (삼하 16: 9 -10), 다윗 왕은 이제 “네가 죽지 아니하리”고 하면서 시므이를 용서하였다 (삼하 19: 23).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도 예루살렘에서 나와서 다윗 왕을 맞았다 (19: 24).

그는 다윗에게 그가 다윗을 따라 가지 않은 것은 “내 종이 나를 속이고” 모함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삼하 16: 3 -4).  

다윗 왕은 또한 그에게 친절을 베푼 사람들에게는 보상하려고 하였다.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는 다윗 왕이 “마하나임에 머물 때에” 그를 공궤한 큰 부자인데, 그도 왕이 요단 강을 건너는 일을 도우려고 나왔다.

다윗 왕은 그에게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바르실래는 왕의 호의를 사양하면서, 자기는 나이가 많으니 고향으로 돌아가게 허락하고, 그의 아들같이 여겨지는 “김함”을 데리고 가 달라고 부탁하였다 (19: 37 -40; 왕상 2: 7).

왕이 환궁하는 일은, 다윗을 왕으로 모셔오는 일에, 유다 지파와 다른 여러 지파들 사이에 누가 더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으며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느냐는 문제로 긴장과 갈등이 생기게 되었다 (19: 41 -43).   


학습구절 연구


애통(哀痛)에 찬 다윗 (사무엘하 19장 1 -4절 )

19: 1   어떤 사람이 요압에게 아뢰되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울며 슬퍼하시나이다 하니 

19: 2    왕이 그 아들을 위하여 슬퍼한다 함이 그 날에 백성들에게 들리매 그 날의 승리가 모든 백성에게 슬픔이 된지라  

19: 3    그 날에 백성들이 싸움에 쫓겨 부끄러워 도망함 같이 가만히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19: 4    왕이 그의 얼굴을 가리고 큰 소리로 부르되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니 


19장 1절 – 다윗 왕의 조카인 요압은 전투경험이 많은 장군이었다.

요압은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이 되어 다스릴 때부터 다윗과 함께 있었다(삼하 2: 1 -4).

그는 다윗이 사울의 집을 섬기는 북쪽 이스라엘 지파들과 싸울 동안에 다윗의 군대를 지휘하였다.

그는 전투 경험이 많고 강인하고도 노련한 군인이었다.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마하나임으로 돌아오자, 요압은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울며 슬퍼하시나이다”라는 보고를 들었다.

아들의 죽음에 대한 아버지의 슬픔은 예상되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요압은 다윗의 슬픔이 지나칠 뿐 아니라, 때에 적절치 않다고 보았다.

다윗 왕은 성문 위의 다락방으로 올라가 소리 내어 울었다.

그의 슬픔이 얼마나 컸는지는 그가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라고 되풀이해서 부르며 운 것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18: 33).

다윗은 차라리 자기가 아들 대신 죽었으면 좋았겠다고 하였다.

19장 2절 – 다윗의 군대는 사랑하는 왕을 위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싸웠으며 결정적인 승리를 쟁취하였다.

그들은 수적으로 크게 열세였지만, 그들의 지휘관들은 나무들이 많은 숲을 그들의 이점으로 활용하였다.

다윗의 군대는 반란 군을 쳐부수고 반란군의 지도자인 압살롬을 죽였다.

그 승리는 왕의 군사들과 그에게 충성하는 백성들에게 큰 기쁨이 되었다.

그러나, 왕의 행동으로 인하여 그날의 승리가 슬픔으로 바뀌었다.

왕이 아들로 인하여 슬퍼한다는 소식은 급속히 사람들 사이에 확산되었다.

병사들은 혼란에 빠졌을 것이 분명하다.

압살롬은 배신자였다.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이스라엘의 왕을 전복시키려 한 것은 실제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거부한 일이 되었다.

19장 3 -4절 –다윗이 슬퍼한다는 말이 그의 군대에 퍼졌고, 그것은 군인들의 승리감과 사기에 찬 물을 끼얹는 일이 되었다.

생명의 위험이 따르는 전투에 참여하는 일에는 강한 감정이 생기게 된다.

전투에서 싸워 이긴 직후에, 군인들은 종종 큰 기쁨과 승리감을 경험한다.

다윗의 군대의 경우, 군사들이 더 크게 기뻐하며 자랑스러워 한 것은 왕에 대한 충성심의 산물이었다.

이들 군사들은 수적으로 열세여서 승산이 없어 보이는 전투에 참가했지만,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다.

그들은 왕을 적법한 왕좌로 회복시키기 위해 생명의 위험까지 무릅썼다.

그들의 동료들 중 일부는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그들의 왕이, 승리를 기뻐하며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을 위해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들은 “싸움에 쫓겨 부끄러워 도망함 같이 가만히 성읍으로” 들어왔다.

4절에서 성경은 왕이 슬픔에 가득 차 있는 사실을 거듭 밝히고 있다 (18: 33).

왕은 얼굴을 가리고 큰 소리로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하면서 부르짖었다.

이스라엘의 적법한 왕좌를 굳건히 지키게 된 것은 온 나라가 축하할 일인데, 다윗은 그 일에 대해 비참한 패배를 당한 것처럼 반응하였다.

사람들은 그들의 감정표현이 삶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야 한다.

한 사람의 감정과 태도는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영향력을 행사한다.


왕에게 직언한 요압 (사무엘하 19장 5 -8절) 

19: 5   요압이 집에 들어가서 왕께 말씀 드리되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과 비빈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부하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19: 6   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지휘관들과 부하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

19: 7   이제 곧 일어나 나가 왕의 부하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옵나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할지라 그리하면 그 화가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모든 화보다 더욱 심하리이다 하니 

19: 8   왕이 일어나 성문에 앉으매 어떤 사람이 모든 백성에게 말하되 왕이 문에 앉아 계신다 하니 모든 백성이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 


19장 5절 – 요압은 직선적이고도 행동적인 사람이었다.

왕이 사람들이 보는 데서 슬퍼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요압은 백성을 대신하여 왕에게 간청하기 위해 왕의 집으로 찾아갔다.

먼저 그는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과 비빈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부하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한다)”고 하였다.

5 절의 히브리 본문에서, “오늘”로 번역된 말은 강조의 뜻을 담고 있다.

첫째로, 요압은 오늘이라는 말로 왕이 승리한 군사들을 축하하고 그들과 함께 기뻐하는 날이 되어야 하는데, 도리어 모든 병사들을 부끄럽게 하는 날이 되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둘째로, 요압은 오늘은 바로 그들 군사들이 왕과 그의 모든 가족들의 생명을 “구원한” 날이 되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압살롬과 그의 군대가 전투에서 승리했다면, 왕과 자녀들, 그리고 처첩들은 확실히 처형당하였을 것이다.

다윗은 그 날의 큰 의미와 중요성을 알아야 하였다.

그것은 또한 오늘이 왕국의 장래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19장 6절 –요압은 “이는 왕께서 미워하시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지휘관들과 부하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고 하였다.

구약에서 사랑과 미움이라는 말은 종종 충성과 불충성의 뜻을 나타낼 때가 있다 (삼상 20: 17).

그러므로 요압 사령관이 다윗 왕에게 한 말은 다음과 같이 바꾸어서 표현할 수 있다.

“왕께서는 충성하지 않는 자는 사랑하시며 충성하는 자는 미워하십니다.”

그날 수 많은 사람들이 왕을 위하여 싸우다 죽었다.

그런데, 왕이 행하는 것을 보면 그같이 한 “지휘관들과 부하들”이 왕에게 조금도 중요한 것같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서, 요압은 과장된 표현 방법을 써서 말하기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라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 하였나이다”고 하였다.

그 말을 뒤집어서 그리고 좀더 과장해서 생각하면, 그것은 다윗 왕이 압살롬을 살리기 위해서는 기꺼이 다른 모든 사람들을 희생시켰을 수도 있었다는 뜻으로 들릴 수 있었다.  

19장 7절 - 5절과 6절에서, 요압은 “오늘” (욤)이라는 히브리어를 다섯 번이나 사용하여 상황과 사태의 긴급함을 강조하였다.

그 같은 상황과 사태의 긴급성에 비추어서, 요압은 다윗 왕에게 “이제 곧 일어나 나가 왕의 부하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소서”라고 진언하였다.

마음을 위로하여 말하다’라는 말의 문자적인 뜻은 ‘마음에 대하여 말하다’가 되고 있다.

잠언은 마음에 대하여 말하기를,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네 마음을 지키라”고 하면서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하고 있다 (잠 4: 23).

고대 이스라엘 사상에서는, 특별히 마음은 인간의 감정과 의지와 생각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 되었다.

그러므로, 요압은 다윗 왕에게 그의 군사들이 왕에 대한 충성심을 새롭게 하는 방법으로 말해달라고 간청하였던 것이다.    

이제 곧”이라는 말은 긴박감을 나타내고 있다.

그 같은 긴박감은 요압이 그 다음에 한 말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그는 “내가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옵나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할지라”고 하였다. 

요압은 다윗 왕에게 즉각적인 행동을 구했던 것이다.

다윗의 군대가 그를 버리고 떠나면, 왕은 그의 전 생애에서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같은 상황은 요압이 “그리하면 그 화가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모든 화보다 더욱 심하리이다”라고 한 말에서 잘 표현되고 있다. 

19장 8절 – 고맙게도, 다윗 왕은 요압의 말을 들었고, 마하나임 성의 성문 위 다락방에서 슬퍼하던 왕은 힘을 내어서 밖으로 나와 “성문에 앉(았다).”

당시 성벽으로 둘러 쌓여있던 성읍의 “성문”은 그 성읍의 지도자들이 모여 중요한 일들을 결정하며 재판하던 장소였다.

다윗이 ‘성문에 앉았다’는 사실은 그가 왕으로 왕권을 행사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음을 나타냈다.

승전을 하고 돌아와서 왕이 기뻐하며 축하하는 것을 보려고 모였던 군사들과 백성들은, 요압이 예견했던 대로, 이미 흩어졌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왕이 문에 앉아 계신다”는 말이 급속히 퍼졌고, 모든 백성은 왕 앞으로 나아왔다.

믿는 자들은 그들의 행동의 결과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한 개인의 사적인 감정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사역보다 2차적인 믄제이다.

그들은 실망에 빠져 있을 때에도 믿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할 수 있다.


왕궁으로 돌아 오는 다윗 (사무엘하 19장 9 -15절) 

19:  9  이스라엘 모든 지파 백성들이 변론하여 이르되 왕이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셨고 또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나 이제 압살롬을 피하여 그 땅에서 나가셨고 

19: 10 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은 싸움에서 죽었거늘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올 일에 잠잠하고 있느냐 하니라

19: 11 다윗 왕이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되 너희는 유다 장로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왕의 말씀이 온 이스라엘이 왕을 왕궁으로 도로 모셔오자 하는 말이 들렸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궁으로 모시는 일에 나중이 되느냐 

19: 12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오는 일에 나중이 되리요 하셨다 하고 

19: 13 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네가 요압을 이어서 항상 내 앞에서 지휘관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라노라 하셨다 하라 하여 

19: 14 모든 유다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 같이 기울게 하매 그들이 왕께 전갈을 보내어 이르되 당신께서는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돌아오소서 한지라 

19: 15왕이 돌아와 요단에 이르매 유다 족속이 왕을 맞아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길갈로 오니라


19장 9 -10절 – 압살롬이 죽었다고 해서,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일은 간단하고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그 같은 사실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 백성들이 변론하여 이르되”라는 말에서 잘 반영되고 있다.

모든 지파 백성들이 변론하다”는 말은 다윗이 환궁하는 일에 대해 백성들의 의견이 일치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을 때, 그를 따르며 충성했던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일에 선뜻 환영하고 나서지 않았거나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연이 다윗 왕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문제에 대해 의견이 갈리고 의논이 분부하게 되었다. 다윗의 환궁을 환영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이 싸움에서 죽었거늘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올 일에 잠잠하고 있느냐”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힐책하였다.

기름을 부었다는 말은 한 사람의 머리에 기름을 발라서 그가 특별한 일에 부름을 받은 것을 인정하는 하나의 의식을 가리키고 있다.

왕들이나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직분을 맡았다는 표시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

기름을 붓는 행위는 또한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함께 해 주셔서 맡겨진 직분을 잘 수행하게 해 주신다는 뜻이 되었다.

그런데 압살롬은 싸움에서 죽고 말았다.

그 사실이 나타내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실제로 그와 함께 해 주시지 않으셨다는 뜻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압살롬을 피하여 예루살렘을 떠난 다윗 왕을 예루살렘으로 환영해 들여야 마땅하다고 하였다.

다윗이야 말로 이스라엘의 왕으로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고 (삼상 16: 13) 유다 지파 사람들이 기름을 부어 그들의 왕으로 삼았던 사람이었다 (삼하 2: 4).    

특별히 다윗은 이전에 백성을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었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한 일들을 행한 유능한 왕이었다.

19장 11 -12장 – 다윗도 그 나름대로 자기가 환궁하는 일에 유다 지파의 전적인 지지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그는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들로 하여금 “유다 장로들에게” 권유하여 그가 환궁하는 일에 앞장 서게 해 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사독과 아비아달 제사장은 압살롬의 반란 기간 동안에도 다윗에게 계속 충성을 다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유다 장로들은 유다 지파의 원로들로 지도자들이었다.

다윗은 또한 유다 지파 사람들에게 “온 이스라엘(북쪽 지파들)이 왕을 왕궁으로 모셔오자 하는 말이 왕께 들렸(다)”는 소식도 전하였다.

그런데 유다 지파 사람들은 왕을 모셔오는 일에 잠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윗 왕은 유다 지파 사람들에게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궁으로 모시는 나중이 되느냐”는 말을 전하게 하였다.

그러면서 다윗 왕은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오는 일에 나중이 되리요”라고 물었다.

그는 유다가 앞장 서서 그에게 환궁하도록 권유해야 될 이유로 자신의 혈연관계에다 호소하였던 것이다.


19장 13절 – 다윗 왕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서 제일 먼저 행한 일은 “아마사”를 요압 대신에 이스라엘의 새로운 군 사령관으로 임명한 것이다.

아마사는 반역 기간 동안에 압살롬의 군대를 지휘한 반란군 사령관이었다 (삼하 17: 25).

아합이 다윗의 군대를 이끌고 승리를 거둔 것을 생각할 때, 그리고 아마사는 반란군의 사령관이었던 것을 생각할 때, 그것은 언뜻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 되고 있다.  

그것은 또한 충성된 사령관인 요압에게 매우 가혹한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경학자들은 다윗 왕이 그 같은 결정을 한데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내전 후의 왕국의 화합과 연합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던 다윗 왕에게, 직선적이고 강경한 성격의 요압보다는 아마사가 유다 사람들에게 적대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적은 인물로 보였던 것이다.

실제로, 요압은 다윗 왕에게 가끔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키곤 하였다. 

그는 아브넬을 살해하였고(삼하 3: 27), 압살롬도 죽였으며 (삼하 18: 14), 후에 일어난 일이긴 하지만, 아마사까지도 죽이게 되었다 (20: 8 -10).

그 같은 사실을 고려할 때, 다윗이 아버지에게 반역을 하고 큰 죄를 지었지만, 압살롬을 살려 들려고 하고, 그가 죽은 것을 크게 슬퍼한 것에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이 있었겠지만, 그보다 더 큰 뜻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19장 14절 유다의 충성은 다윗에게 중요하였다.

다윗의 수도인 예루살렘은 유다 지파의 북쪽 경계지역에 위치해있었다.

왕에게 더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크고 가장 강력한 지파인 유다의 지원이었다.

모든 유다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 같이 기울게 하매”라는 말은 다윗이 그의 지파인 모든 유다 족속의 마음과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는 뜻이 되고 있다.

그들의 많은 부분은 이전에 압살롬에게 마음이 끌려 왕권에 대한 그의 시도를 지지했던 사람들이었다. 

이제 그들은 마음을 다시 다윗에게 돌렸다.

그들은 다윗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당신께서는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돌아오소서”라고 청하였다.

여기서 우리가 유의할 점은 다윗이 유다 지파 사람들의 마음을 사서 그들의 왕으로 청함을 받은 사실이다. 

하나님의 왕국에서는 사람들을 억지로 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따라오게 해야 한다.

강압적인 방법은 진정한 리더십의 빈약한 대안이다.

다윗의 그 같은 지도력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은 재 연합되었고, 계속적인 유혈사태는 피하게 되었다.

이전에 양치기 소년이었던 위대한 왕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사랑을 받고 신뢰를 얻는 방법으로 목양하였다.

이것은 오늘날 지도자들에게도 계속 본이 되고 있다.

19장 15절 – 다윗 왕이 예루살렘으로 돌아 오는 여정 길을 시작했을 때, 유다 지파 사람들은 “왕을 맞아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길갈”에 모였다.

길갈은 므낫세 지파의 영역으로, 마하나임과 헤브론의 중간 지점쯤이 되었다.

길갈은 여호수아 당시로부터 역사적으로 중요하며 뜻 깊은 장소가 되고 있다.

길갈은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으로 진을 친 곳으로, 이스라엘 자손은 요단강을 건너온 기념으로 “열두 돌”을 세운 곳이자(수 4: 1 -9) “할례를 시행한” 장소였다 (수 5: 2 -9).

그러므로, 다윗이 길갈에 도착한 것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이 약속의 땅을 다시 차지하고 있는 것을 상징하는 일이 되었다.

압살롬의 반역은 실패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윗의 왕국을 회복시켜 주셨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사람들은 그들의 감정표현이 삶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야 한다.

● 그들은 실망에 빠져 있을 때에도 믿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할 수 있다.   

● 신자들은 하나님과 그의 택함을 받아 섬기는 지도자를 신뢰함으로써 연합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