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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좌에서 물러나게 된 다윗 - 제 8과 - 2018년 7월 22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사무엘하 15장 10 -16, 24 -30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8-07-15 (일) 10:02 조회 : 112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2018년 7월22일 주일

 

 제 8과

 

 

권좌에서 물러나게 된 다윗

 

학습구절: 사무엘하 15장 10 -16, 24 -30절

 

성경진리:

이기적인 야망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며 불필요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주요교리:  성부 하나님  

성부 하나님은 그의 은혜의 목적에 따라 그가 지은 우주와 만물과 그리고 인간 역사의 흐름을 다스리며 통치하신다.

 

암송구절:  시 131편 1절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My heart is not proud, LORD, my eyes are not haughty; I do not concern my-self with great matters or things too wonderful for me.

 

 

시작하는 글:

 

대부분의 우리는 차례를 기다리는 일을 잘 하지 못한다.

자동차를 몰고 고속도로 입구로 진입할 때, 다른 차 앞으로 끼어들 수 있으면 우리는 그렇게 하려고 한다.  

그 입구에서 또 다른 한 자동차를 앞설 수 있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앞서는 삶의 기쁨을 느낀다.

어떤 사람들은 놀이 공원에서 긴 줄에 서서 기다리는 것이 지루하고 싫어서 혹은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들어가려고 돈을 더 내고 우대권(fast pass)을 산다.  

우리에게 인내가 필요하고 귀한 것은 바로 우리 앞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이 있을 때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것을 힘들어 하며 싫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기다리지 않고 어떤 일을 떠맡으려고 할 때의 위험성은 무엇인가?

 

 

압살롬은 자기가 암논을 살해한 것을 아버지 다윗이 즉시 처벌하지 않고 유예시켜 주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함을 나타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암논을 죽인 것에 대한 어떤 양심의 가책도 보이지 않았다 (삼하 14: 32).

이기적인 야망에 사로잡힌 압살롬은 도리어 그 자신이 왕위를 차지할 목적으로, 다윗을 깎아 내리기 시작하였다.

 

 

본문배경설명

 

사무엘하 15장 1절부터 17장 29절까지

문학작품에서 가장 큰 악역을 맡은 사람들은 형용할 수 없고 구제할 수 없을 정도로 악한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들이 옳다고 확신하며 불의를 당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가장 큰 악역을 맡은 사람들은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재능과 심지어 좋은 자질까지도 갖고 있다.

인간 역사에서, 실제로 위험하고 악한 운동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한 사람들에 의해 비롯되었다.

공산주의자들은 수세기 동안의 억압으로부터 노동자들을 해방시키고 있다고 믿었으며,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은 신의 뜻을 행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 같은 사람들이 행하는 악한 일은 단순히 일시적으로 탐욕을 내거나 공격적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악랄하고 조직적이며 강하고 지속적이다.  

압살롬의 불만은 진정한 것이었으며, 그는 좋은 자질과 놀라운 재능을 갖고 있었다.

그의 누이 동생인 다말은 암논에게 강간을 당하였고, 아버지인 다윗 왕은 그 문제에 대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암논을 왕위 계승자로 그냥 놔두고 있었다.

압살롬은 강간 사건 이후에 슬픔과 고통에 차 있는 누이 동생을 자기 집에 와 있게 하였다.

우리가 복수로 저지른 살인을 정당화 할 수는 없지만, 다말이 2년 동안 슬픔과 고통에 차서 지내는 것을 보는 일은 그를 매우 슬프게 하였으며, 동생에 대한 측은한 마음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압살롬이 암논을 죽인 후에, 다윗은 압살롬을 처벌하거나 사면하거나 간에 어떤 조치나 행동을 취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둠으로 문제를 더 악화시켰다.

한 여인의 꾸며낸 이야기로 압살롬이 돌아오도록 허락할 때까지, 다윗은 그가 도망가서 계속 살게 버려두었다.  

예루살렘에 돌아 온 후에도, 다윗은 2년 동안이나 아들을 만나주지 않았다 (14: 28).

압살롬이 격분한 것은 잘못된 것이지만, 그가 요압에게 “이제는 네가 나로 하여금 왕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하라 내가 만일 죄가 있으면 왕이 나를 죽이시는 것이 옳으니라”고 요구한 것은 정당하였다 (삼하 14: 32).

압살롬의 관점에서 볼 때, 다윗은 암논의 사건 전체를 다루는 데있어서 무능하고 부당하였다.

압살롬은 유능한 사람이었다. 

그는 잘 생겼고, 군중을 설득하고 움직이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많은 현대 정치인들처럼, 그는 백성들의 문제들이 권력자들의 무관심과 무능으로 인해 생긴 것이며, 자기는 다르다고 설득함으로 추종자들을 모았다.

왕자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긴 하지만, 그는 정치 무대를 알고 있었다.

그는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여 50 명의 호위병들을 거느리고 공공장소에 나타남으로, 강한 구세주처럼 보이게 하였다.

그는 군중을 움직일 수 있었고, 평민들과 어울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인내심이 있었다.

그는 암논에 대한 복수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전에 2년간이나 기다렸고, 공개적으로 왕에게 등을 돌리기 전에 4년이나 준비하여 기다렸다 (삼하 15: 1 -7).

압살롬은 가장 계략적(計略的)이고 가장 위험한 종류의 악당이었다.

 

 

 학습구절 연구 

 

왕권을 주장하고 나선 압살롬(사무엘하 15장 10 -12절)

15: 10  이에 압살롬이 정탐을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 두루 보내 이르기를 너희는 나팔 소리를 듣거든 곧 말하기를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 하라 하니라

15: 11  그 때 청함을 받은 이백 명이 압살롬과 함께 예루살렘에서부터 헤브론으로 내려 갔으니 그들은 압살롬이 꾸민 그 모든 일을 알지 못하고 그저 따라 가기만 한 사람들이라

15: 12  제사 드릴 때에 압살롬이 사람을 보내 다윗의 모사 길로 사람 아히도벨을 그의 성읍 길로에서 청하여 온 지라 반역하는 일이 커가매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이 많아 지니라

 

15장 10절 4년동안 기다리며 준비를 한 후에, 압살롬은 아버지에 대한 반역을 일으키는 거사를 시작하였다.

그는 그 일을 헤브론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하였다.

다윗의 영향력과 세력이 강한 예루살렘에서 그 같은 일을 하는 것은 현명치 못했다.

그래서 압살롬은 다윗 왕에게 그가 그술에 도망가 있을 때 하나님께 서원한 것이 있는데, 헤브론으로 내려가서 그 서원을 이루게 허락해 달라고 하였다 (15: 7).

그러면서 그는 설명하기를, 하나님께서 자기를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헤브론으로 가서 여호와께 예배를 드리겠다고 서원하였다고 하였다 (15: 8).

다윗 왕은 압살롬에게 “평안히 가라”고 하면서 허락하였다.

헤브론은 다윗과 압살롬에게 특별한 장소가 되었다.

헤브론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20마일 정도 떨어져 있던 성읍으로, 다윗이 예루살렘 이전에 수도로 삼았던 곳이며 압살롬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였 다 (삼하 3: 3).

헤브론에 도착하여 일단 다윗의 손에서 벗어나자, 압살롬은 놀라운 선전방법을 사용하여 자신을 왕으로 선포하는 일을 하였다.

그는 비밀리에 사람들을 이스라엘의 중요한 곳에 보내어, 그들로 하여금 특정한 시간에 나팔을 불며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고 소리를 치게 하였다.

통신 수단과 방법이 발달되지 않았던 당시에, 그것은 기발한 생각이었다.

실제로는, 실질적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스라엘 전역을 통해 사람들은 압살롬이 왕이 되었다고 믿었으므로, 사실상의 모든 목적을 위해서는 압살롬은 왕이 되었던 것이다.

15장 11절 – 그때 “이백 명이 압살롬과 함께 예루살렘으로부터 헤브론으로” 내려갔다.

그들은 압살롬이 꾸민 그 모든 일을 알지 못하고 그저 따라가기만 한 사람들”이었다.

그들 “이백 명”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압살롬의 특별한 초청을 받고 따라온 사람들도, 왕실에서 중요한 책임을 지고 있던 인물들로 보인다.

반란이 시작될 때에 그들이 다윗 성에 없는 것은 반란에 대응하는데 크게 불리한 조건이 되었을 수 있다.

200 명의 사람들이 압살롬의 순례의 진정한 목적을 알았을 때, 두 가지 반응이 가능했다.

한가지는, 그들이 반역의 물결에 휩싸여서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압살롬의 세력에 합류했을 수 있다.

또 다른 한가지는, 왕의 충실한 종들인 이백 명은 반역자들에게 도전하고 일어났을 것이고, 그 경우 그들은 압살롬의 군사들에게 제압을 당했을 것이며, 살아남은 사람들은 인질이 되었을 것이다.

15장 12절 – 압살론이 다윗 왕에게 자기가 서원한 것으로 헤브론에 가서 희생제물을 드리며 여호와를 예배하겠다고 한 것은 계략적인 성격이 강한 것이긴 하지만(15: 7 -8), 그는 헤브론에 가서 희생제물을 드리며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였다.

그러나 압살롬은 그 일을 홍보적인 목적으로 하였을 수 있다.

그 같은 사실은 그가 “제사 드릴 때에”, 사람을 보내어 “다윗의 모사”였던 “아히도벨”을 청하여 그의 측근으로 영입하는 등 반역활동을 활발하게 편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아히도벨은 현명한 지도자로 이스라엘에서 인정을 받고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그 같은 사실은 “아히도벨이 베푸는 계략은 사람이 하나님께 물어서 받은 말씀과 같은 것이라”는 평가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삼하 16: 23).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압살롬과 함께 모반한 자들 가운데 아히도벨이 있나이다”고 전하자, 다윗이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라고 하나님께 기도한 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삼하 15: 31).

아히도벨이 다윗을 버리고 압살롬에게로 전향한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당시에 아히도벨이 예루살렘이 아니라, 헤브론에서 약 6마일 정도 떨어진 “길로”에 살았던 사실을 지적하면서 다윗과의 관계가 가깝지 않았던 것으로 보고 있다.

어찌되었건, 당시 모사로 명성을 떨치고 있던 아히도벨이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한 일은 다윗에게 치명적인 일이 된 동시에 반대로 압살롬에게는 큰 자산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같이 “반역하는 일이 커지매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이 많아(졌다).”

 

 

부당한 일을 당한 것에 대한 부도덕 한 행동은 정당화 될 수 있는가

당연히 자신의 것이라고 믿은 것을 속임을 당해 다른 사람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할 때, 그것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설 권리가 있는가? 오늘 날의 세계에서, 사람들이 당연히 자신의 것으로 주장하고 나서는 예들로 어떤 것을 들 수 있는가?

 

 

 

두려움에 찬 다윗 (사무엘 15장 13 -16절)

15: 13       전령이 다윗에게 와서 말하되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나이다 한지라

15: 14 다윗이 예루살렘에 함께 있는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일어나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중 한 사람도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 빨리 가자 두렵건대 그가 우리를 급히 따라와 우리를 해하고 칼날로 성읍을 칠까 하노라

15: 15 왕의 신하들이 왕께 이르되 우리 주 왕께서 하고자 하시는 대로 우리가 행하리이다 보소서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하더라

15: 16 왕이 나갈 때에 그의 가족을 다 따르게 하고 후궁 열명을 왕이 남겨 두어 왕궁을 지키게 하니라

 

15장 13-14절 – 한 “전령이 다윗에게 와서” 보고하기를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나이다”라고 하였다.

그 말은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압살롬에게로 기울어졌다는 뜻이다.

압살롬은 아버지에게 반역을 일으킬 목적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백성들의 마음을 훔쳤던 것이다 (15: 6).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키고 백성들의 마음이 그에게로 쏠렸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된 다윗은 신속하게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다윗은 “예루살렘에 함께 있는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리기를 “일어나 도망하자”고 하였다.  

반란 군이 곧 쳐들어 올 것이라는 사실은 왕이 예루살렘 밖에서의 통제력을 이미 상실하고 있음을 뜻하였다.

압살롬이 간계(奸計)로200명이나 되는 다윗의 신하들을 예루살렘에서 빼내어 헤브론으로 데리고 간 것은 왕의 방어력(防禦力)을 약화시켰다.

더욱이, 다윗은 압살롬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내에 얼마나 많이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따라서, 다윗이 당장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와 그의 가족이 도망하여, 왕궁과 성읍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것은 다윗이 그의 탁월한 군인 생활에서 도망하라고 명령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빨리 가자”라고 한 말에는 긴박감이 나타나고 있다.

다윗은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중 한 사람도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고 하였다.   

두렵건대 그가 우리를 급히 따라와 우리를 해하고 칼날로 성읍을 칠까 하노라”고 하였다.  

다윗이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을 경우, 예루살렘은 전쟁터로 변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게 될 것이 뻔했다.

다윗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예루살렘을 전쟁터로 만드는 것과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게 되는 것을 피하려고 하였다.

15장 15 -16절 – 왕의 신하들이 왕에게 “우리 왕께서 하고자 하시는 대로 우리가 행하리이다”라고 대답하며 “보소서 당신의 종들이니이다”라고 하였다.

왕의 신하들이란 말에는 군사령관들도 포함되고 있다.

그들은 왕을 무조건 믿었고 전적으로 충성하였다.

다윗이 상황과 사태를 판단했을 때, 두 가지 즉각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일이 필요하였다.

첫 번째의 목적은, 다윗 자신의 생명과 왕의 가족들과 중요한 신하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이었다.

그의 목표는 자신의 생명과 신하들의 생명을 보존하는 그 자체보다는 왕국을 보존하고 안정을 유지하는 일이 되고 있다.  

다윗은 적법한 한 나라의 왕이었다.

다윗이 반역에 의해 죽을 경우, 왕국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것이며, 장차 반역에 대한 하나의 전례로 계속 남을 것이다.

신생 왕국인, 이스라엘 왕국은 정권 이양을 이전에 한번만 한 적이 있었다.

그나마 다윗이 왕좌에 오르기 까지는 오랫동안의 격렬한 내전을 겪어야 하였다.  

두 번째의 목적은, 다윗이 왕궁을 계속 돌보게 하는 일이었다

부득이 예루살렘과 왕궁을 떠날 수 밖에 없었을지라도, 다윗에게 왕궁은 매우 중요한 장소였다.    

그래서, 그는 “후궁 열 명”을 남겨 두어 “왕궁을 지키게” 하였다.  

또한 왕은 압살롬이 자기에게 반기를 들었다 할지라도, 민간인이자 아버지의 후궁들인 여인들을 죽이지 않고 안전하게 왕궁에 있게 해 줄 것으로 생각했던 것같이 보인다.

그런데, 압살롬은 후궁들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아히도벨이 베푸는 계략을 따라, “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 앞에서 그 아버지 후궁들과 동침함으로” 아버지의 왕권을 자기가 차지한 것을 온 나라에 알리는 하나의 징표로 삼았다.

다른 한편 그 일은 또한 다윗이 은밀이 행한 일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 나타난 한 방법이 성취된 일이 되었다 (삼하 12: 10 -12).   

 

예루살렘을 떠나는 다윗 (사무엘 15장 24 -30절)

15: 24 보라 사독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레위 사람도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다가 하나님의 궤를 내려 놓고 아비아달도 올라와서 모든 백성이 성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도다

15: 25 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15: 26 그러나 그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하리라

15: 27 왕이 또 제사장 사독에게 이르되 네가 선견자가 아니냐 너는 너희의 두 아들 곧 네 아들 아히미아스와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을 데리고 평안히 성읍으로 돌아가라

15: 28 너희에게서 내게 알리는 소식이 올 때까지 내가 광야 나루터에서 기다리리라 하니라

15: 29 사독과 아비아달이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도로 메어다 놓고 거기 머물러 있으니라

15: 30 다윗이 감람 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고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 가니라

 

예루살렘 성을 떠나기 전에, 다윗은 “먼 궁”에서 잠시 멈추어 서서 그와 함께 떠나는 일단의 사람들을 열병(閱兵)하였다.

그의 모든 신하들이 그의 곁으로 지나갔는데, 특별한 것은 가드에서 온  “육백 명”의 사람들이  왕 앞으로 행진하여 지나간 것이었다.

그때 다윗은 지도자인 가드사람 잇대에게 자기는 정처 없이 떠나는 몸이고 그는 외국 사람이니, 네 “동포들”을 데리고 돌아가라고 하면서 “은혜가 진리가 너희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고 축원하였다 (15: 19 -20).

그런데, 잇대는 다윗 왕에게 대답하기를,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 곳에 있겠나이다”라고 하며 충성을 다짐하였다 (15: 21).

그 한 예에서 보게 되는 것은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간 것)” 같았을지라도 (15: 13), 실제로는 다윗에게 충성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이 사건에서 보게 되는 또 한가지는 그 같이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사심 없이 행하고 있는 다윗이 모습과 지도력이다. 

15장 24 -26절 다윗은 예루살렘을 떠날 때 “기드론 시내”를 건너 광야로 가는 길을 택하였다 (15: 23).

그런데 보니,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이 모든 레위 사람들을 데리고 “하나님의 언약 궤”를 메고 와서 기드론 골짜기에다 내려놓고 “모든 백성이 성에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도 다윗과 함께 예루살렘 성을 탈출할 계획으로 나와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다윗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 가라”고 하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것을 명령하였다.

그러면서,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고 하였다.

다윗이 그 같이 한 일에서 우리는 몇 가지 관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로 생각할 수 있는 점은, 다윗은 압살롬에게 패배를 당하고 그의 권좌를 영원히 상실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또한 다윗은 하나님의 궤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왕국에 속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과 왕국을 연결시키는 가시적이고도 상징적인 표가 되었다.

비록 왕일지라도, 그는 언약 궤를 고수할 귄리가 없었으며, 단순히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보다는 옳은 일을 하였다.

만일 언약 궤가 군대들과 함께 광야로 나가게 되거나 싸움터 근처에 있게 될 경우, 언약 궤에 불운이 닥칠 수 있었다.

언약 궤가 예루살렘에 남아 있게 된다면, 전에 일어난 일처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길 위험은 없을 것이다 (삼상 4: 11).

둘째로 생각할 수 있는 점은, 다윗이 행한 일은 그가 믿음을 하나의 물건인 궤가 아니라, 하나님께 두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의 언약 궤에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그것을 소유 한 군대가 싸움에서 승리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삼상 4: 3).

다윗은 자신의 운명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으며, 언약 궤가 제아무리 거룩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소유하는 것으로 상황을 바꿀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윗은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든 하나님의 뜻을 따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는 26절에서 고백하기를, 여호와께서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라고 하겠다고 하였다.  

15장 27 -29절 - 다윗이 제사장들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낸 것은 하나님의 언약 궤가 있을 곳은 예루살렘이고 제사장들은 언약 궤가 있는 곳에 있어야 되는 이유도 있었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다윗은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과 형편을 알아서 자기에게 전해 주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다윗 왕은 사독 제사장에게 “네가 선견자가 아니냐”라고 하면서, 네 아들 “아히마하스”와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을 데리고 성읍으로 들어가라고 하였다.

사무엘이 제사장과 선지자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겼던 것처럼, 다윗은 그들 제사장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기에게 알려 주기를 원하였던 것이다.

그럴 경우, 다윗은 제사장들에게 이 두려운 상황을 처리할 때 왕에게 지침을 줄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듣고 경청하도록 지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다윗은 “너희에게서 내게 알리는 소식이 올 때까지 내가 광야 나루터에서 기다리리라"고 하였다.

광야에서 도피 생활을 했던 다윗은 광야의 지형과 요단강의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우기에 요단강은 쉽게 건널 수 없었다.

다윗은 제한된 수의 병력으로 요단 강 유역을 방어 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요단 강 동쪽 지역을 수도를 탈환하고 왕권을 복원하기 위한 힘을 재건하기 위한 기지로 사용할 수 있었다.

15장 30절 – 다윗 왕과 그의 일행이 탈출구로 삼은 것은 예루살렘의 동쪽에 있는 여리고와 요단강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먼저 기드론 시내를 건너 감람 산 길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같이 산 언덕을 올라갈 때, 예루살렘이 그들 뒤에 내려다 보였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고 하였지만, 그 길은 생명의 위협에 처하여 피신하는 그리고 언제 돌아 올지 모르는 슬픔과 애통의 길이었다.

다윗은 그 같은 슬픔과 애통의 표시로 머리를 가리고 슬퍼하면서 맨발로 걸어갔다.

모든 백성들로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갔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이기적인 야망은 자신의 능력을 과장한다.    

  적대관계가 생기면 진정한 친구가 서로의 우정과 의리를 나타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신자들은 위협에 직면할 때 위험 요소들을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구출해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