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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 잠기게 된 다윗 - 제 7과 - 2018년 7월 15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사무엘하 13장 15-20, 31-39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8-07-09 (월) 10:33 조회 : 147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2018년 7월15일 주일

 

 

제 7과

 

슬픔에 잠기게 된 다윗

 

학습구절: 사무엘하 13장 15 -20, 31 -39절

 

성경진리:

하나님은 인간에게 가정을 만들어 주셔서 사랑의 관계를 나누게 해 주셨다.  

그러나 죄는 그 관계를 파괴시킨다.  

 

주요교리:  가정

하나님께서는 인간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로 가정을 제정하셨다.  

 

암송구절:  사무엘하 14장 17절

당신의 여종이 또 스스로 말하기를 내 주 왕의 말씀이 나의 위로가 되기를

원한다 하였사오니 이는 내 주 왕께서 하나님의 사자 같이 선과 악을

분간하심이니이다

원하건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과 같이 계시옵소서

And now your servant says,

“May the word of my lord the king secure my inheritance,

for my lord the king is like an angel of God in discerning good and evil.

May the LORD your God be with you.

 

 

시작하는 글:

 

우리가 삶 속에서 계속해서 꾸준히 죄의 파괴력을 지배해 나가느냐 혹은 죄의 파괴력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내버려 두느냐에 따라, 우리의 가정은 세워지거나 파괴되게 마련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사랑을 받는 장소로 가정을 만들어 주셨다.

가족들이 서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대하면, 가정은 건강하고 풍성해 진다.

반면에, 죄는 가족들과 사람들을 분열시키며 파괴시킨다.

 

가족은 당신의 영적인 생활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가?

한 사람의 영적인 생활은 그 사람의 가정 생활에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는가?

 

 

본문배경설명

 

사무엘하 13장 1절부터 14장 33절까지

무엘하 11장과 12장에 기록된 사건들과 사무엘하 13장에 나오는 사건들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세월의 간격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십 년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여러 해가 지난 것으로 보인다.

13장의 사건이 일어났을 즈음에는, 다윗의 아들 중 일부는 다 자라서 자기 집이나 거처를 가지고 있었다 (삼하 13: 20).

한 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성경은 다말이 암논에게 겁탈을 당한 사건을 다윗이 범죄하고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정죄를 받은 일 직후에 기록하고 있는 점이다 (11: 1 -12: 31).

그 사이에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났지만, 성경은 그 모든 이야기들을 무시하고 왕궁 내에서 일어난 강간 사건에 대한 끔찍한 이야기로 직접 옮기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전에 다윗에게 그가 행한 한 일로 인해 그의 가족이 폭력으로 찢겨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12: 10).

성경은 이제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다말의 강간사건은 이스라엘을 내전에 휩싸이게 만들고 급기야는 다윗을 예루살렘에서 도피하게 만든 것으로 절정을 이루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의 시초가 되었다.

13장의 중심적인 사건은 다말이 강간을 당한 일이다.  

그리고 이 사건에 등장하는 주요인물들은 암논과 요나답, 그리고 다말과 압살롬이 되고 있다.

암논은 다윗이 왕이되기 전에 결혼 한 이스르엘 여인인 아히노암 (삼하 2: 1, 대상 3: 1)에게서 태어난 다윗의 아들이었다.

암논은, 실제로, 다윗의 맏아들로, 왕위 계승자로 주정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궁정에서 영향력이 강한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요나답은 (삼하 13: 3) 다윗의 형인 “시므아”의 아들이었다.

그는 다윗의 조카로, 왕위에 오를 가능성은 조금도 없었다.

그는 기회주의 자로, 권력자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암논이 왕궁에서 영향력이 컸으므로, 요나답은 암논의 환심을 살 목적으로 그를 가까이하며 다말을 데려올 수 있는 계략을 암논에게 말해 주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삼하 13: 4 -5).

13장 3절은 요나답을 암논의 “친구”로 부르고 있지만, 그는 암논에 대해 깊은 우정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후에 그가 다윗 왕에게 암논의 죽음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보면 (13: 32 -36), 그는 조금도 감정의 동요 없이 사무적으로 대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말은 그술 왕 달매의 딸로 다윗과 결혼한 “마아가”에게서 태어난 다윗의 딸이었다 (삼하 3: 3).

다윗과 마아가의 결혼은 정략적(政略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두 왕가의 딸이자 공주였던 다말은 높은 명성과 귀한 신분을 누렸을 것이 분명하다.

압살롬은  다말처럼 “마아가”에서 태어난 다윗의 아들로, 다말의 친 오빠이자 다윗의 셋째 아들이 되었다.

그는 맏아들이었던 암논만큼 영향력이 강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을 끄는 힘이 있었으며 추종자들을 모으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다말이 강간당한 사건은, 예상할 수 있듯이, 충격적이고도 불미스러운 이야기가 되고 있다 (삼하 13: 1 -14).

암논은 이복 동생인 다말을 몹시 연모하였지만, 처녀인 그녀를 가까이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병이 나고 말았다 (삼하 13: 2).

이스라엘 가정의 결혼 하지 않은 딸들은, 특별히 부유한 가정의 딸들은, 결혼할 때까지 순결을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격리된 생활을 하였다.

반면에, 암논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는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다.

다말에 대한 경우,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고 더 강한 욕망을 갖게 되었다.

암논은 사촌인 요나답의 계략을 받아 들여 병든 것으로 가장하고, 다말이 와서 자기를 간호하게 일을 꾸미고 아버지인 다윗의 허락을 받았다.

다말이 오자 암논은 다른 사람들을 다 나가게 하고, 다말이 음식을 만들어가지고 침실로 들어오자, 그를 붙잡고 “나의 누이야 와서 나와 동침하자”고 강요하였다.

다말은 “내 오라버니여 나를 욕되게 하지 말라”고 하면서 암논에게 애원하였다 (12: 13).

그 같은 일은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면서, “부끄러운 일”이자 “어리석은 일”이라고 하였다 (레 20: 17).

다말은 또한 “내가 이 수치를 지니고 어디로 가겠느냐”고 하면서 암논의 책임감에다 호소하였다.

만일 자기가 그 같은 방법으로 수치를 당하면, 수치를 면할 길이 없고 아무 곳에도 갈 수가 없다고 하였다.

심지어 다말은 아버지에게 간청하면 자기와 결혼하도록 허락하실 터이니 왕께 말씀 드리라고 암논에게 호소하였다.

그것은 지연작전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말은 그들이 결혼하도록 왕이 허락해 줄 것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율법이 금하고 있었음에도 불고하고, 당시에는 이복 오누이간에 결혼하는 일이 있었다.

다말이 그같이 간청하며 애원했는데도 불구하고, 암논은 그 말을 듣지 않고 다말을 강간하고 말았다.  

 

 

학습구절 연구

 

죄로 인해 깨어진 관계와 삶 (사무엘하 13장 15 -20절)

13: 15 그리하고 암논이 그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마음이 전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한지라 암논이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 가라 하니

13: 16  다말이 그에게 이르되 옳지 아니하다 나를 쫓아 보내는 이 큰 악은 아까 내게 행한 그 악보다 더하다 하되 암논이 그들 듣지 아니하고

13: 17  그가 부리는 종을 불러 이르되 이 계집을 내게서 이제 내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라 하니

13: 18  암논의 하인이 그를 끌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니라 다말이 채색 옷을 입었으니 출가하지 아니한 공주는 이런 옷으로 단장하는 법이라

13: 19  다말이 재를 자기의 머리에 덮어쓰고 그의 채색 옷을 찢고 손을 머리 위에 얹고 가서 크게 울부짖느니라

13: 20  그이 오라버니 압살롬이 그에게 이르되 네 오라버니 암논이 너와 함께 있었느냐 그러나 그는 네 네 오라버니이니 누이야 지금은 잠잠히 있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라 하니라 이에 다말이 그의 오라버니 압살롬의 집에 있어 처량하게 지내니라

 

13장 15- 16절 이복 여동생을 유린하고 수치스럽게 한 후, 다말에 대한 암논의 감정은 갑자기 변하였다.

성경은 다말에 대해 그같이 변한 암논의 감정을 “암논이 그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전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한지라”라고 표현하고 있다.  ‘미워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혐오감을 더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암논은 다말에 대한 어떤 애정도 더 이상 갖고 있지 않았다.

그는 다말이 자기 마음과 시야에서 없어지기를 바랬다.

그러므로, 그는 다말에게 “일어나 가라”고 하였다.    

고대 이스라엘 문화권에서, 다말이 처한 상황은, 비록 공주일지라도, 큰 수치와 비참한 일이 되었다.  

당시에 처녀가 결혼 때까지 순결을 지키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물론, 율법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하고도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신 22: 13 -21).

암논이 다말에게 행한 것은 여러 면에서 한 여인에게 큰 손상을 입히는 일이 되었을 뿐 아니라, 한 인간의 가치를 멸시하고 경멸하는 악한 일이 되었다.

그래서 다말은 암논에게 그가 하는 일이 “옳지 아니하다”고 하면서, “나를 쫓아 보내는 이 큰 악은 아까 내게 행한 그 악보다 더 하다”고 하였다.

그런데도 암논은 다말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죄가 더 큰 죄가 되는 일로 어떤 경우를 들 수 있는가?  설명을 해 보라

 

13장 17 -19  사람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것처럼, 한 인간의 정체성과 자존 감을 파괴시키는 것은 없다.

자기의 욕심을 채운 후에, 암논은 다말을 하나의 물건과 소모품으로 취급하였다. 

암논은 하인들을 불러서 “이 계집을 내게서 이제 내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라”고 명령하였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아버지들이 결혼하지 않은 딸들을 보호할 책임을 지고 있었다.

딸의 순결을 보호해 주며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의 하나가 딸에게 “채색 옷”을 입히는 것이었다.

다윗의 “출가하지 아니한 공주”들로 그 같은 옷으로 단장하였고, 다말이 암논의 집에 갔을 때에도 그같이 하였다.

자기를 유린하고 이용한 것으로도 부족해서, 자기를 집에서 쫓아낸 암논에 대해 다말은 강한 경멸감을 갖게 되었고 자신의 삶에 대해 비통함과 슬픔을 느꼈다.

다말은 “재를 자기의 머리에 덮어쓰고 그의 채색 옷을 찢고 손을 머리 위에 얹고 크게 울부짖으(며)” 자신의 비통함과 큰 슬픔을 나타냈다.

다말이 자기의 채색 옷을 찢은 행동은 자신을 “손상된 물건,” 즉 결혼에 흠집이 생긴 여인으로 낙인(烙印)을 찍는 일이 되었다.

그것은 또한 암논의 이기적인 행동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찢어 버렸는지를 상징하는 일이 되었다.

다말을 더 비통하게 만든 것은 그 모든 일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죄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다.

다말은 죄의 피해자였다. 

 

13장 20절 – 다말이 머리에 재를 쓰고 찢어진 옷을 입고 울면서 찾아온 것을 본 압살롬은 먼저  “네 오라버니 암논이 너와 함께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누이 동생인 다말에게 암논이 못된 짓을 행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압살롬은 다말에게 “누이야 지금은 잠잠히 있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라”고 하면서 다말을 위로하며 진정시키려고 하였다.

그는 다말에게 왕실 내에서의 추문이 모든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일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였던 것이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라”는 말은 충격적인 일을 경시하려는 뜻이 아니라, 인내심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대처할 것을 요구하는 말이다.

십중팔구는, 압살롬은 장차 복수 할 계획을 이미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어찌되었건, 당시 암몬은 오라버니였고, 왕의 맏아들이었다.

압살롬은 누이 동생을 자기 집에 불려드려 지내게 하였다.

다말은 “오라버니 압살롬의 집에 있어 처량하게” 지냈다.

"처량한”으로 번역된 히브리 단어는 큰 재앙으로 인해 생긴, 종종 하나님의 심판과 관계되고 있는 ‘황폐케 된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죄를 지은 다윗에게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시 겠다)”고 하셨는데 (12: 11), 이제 그 같은 일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학대나 다른 범죄의 피해자들이 회복 과정을 시작하도록 돕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무엇인가?

 

 

깊은 슬픔에 빠진 왕궁 (사무엘하 13장 31 -36절)

13: 31  왕이 곧 일어나서 자기의 옷을 찢고 땅에 드러눕고 그의 신하들도 다 옷을 찢고 모셔 선지라

13: 32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 요나답이 아뢰어 이르되 내 주여 젊은 왕자들이 다 죽임을 당한 줄로 생각하지 마옵소서 오직 암논만 죽었으리이다

            그가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욕되게 한 날부터 압살롬이 결심한 것이니이다

13: 33  그러하온즉 내 주 왕이여 왕자들이 다 죽은 줄로 생각하여 상심하지 마옵소서 오직 암논만 죽었으리이다 하니라

13: 34  이에 압살롬은 도망하니라 파수하는 청년이 눈을 들어 보니 보아라 뒷산 언덕길로 여러 사람이 오는 도다

13: 35  요나답이 왕께 아뢰되 보소서 왕자들이 오나이다 당신의 종이 말한 대로 되었나이다 하고

13: 36  말을 마치자 왕자들이 이르러 소리를 높여 통곡하니 왕과 그의 모든 신하들도 심히 통곡하니라

 

성경은 “다윗 왕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니라”는 말로, 암논이 행한 일에 대해 다윗이 크게 화를 낸 것을 언급하였다 (13: 12).

그러나, 다윗은 그 문제에 대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는, 야곱이 르우벤에게 했던 것처럼(창 49: 3 -4), 암논에게서 맏아들의 권리를 박탈 할 수 있었다.

그는 당시 고대 사회에서 흔히 행해지고 있던 벌칙의 하나로, 암논을 추방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윗 왕은 왕궁 내에서 일어난 악한 일에 대해 아무 처벌도 하지 않고 그냥 놔둠으로 더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는 계기를 만들었다.

압살롬은 자기의 누이 동생을 유린한 암논에 대해 즉각적인 보복을 시도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겉으로 자신의 감정을 나타내지도 않았다.

압살롬은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그를 미워하(였지만) 암논에 대하여 잘잘못을” 말하지 않고 있었다 (13: 22),

이는 암논이 왕자들 중에 가장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부왕도 그가 행한 일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조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압살롬은 즉각적인 보복행위를 취하지 않고 암논에 대한 미움과 증오심을 불태우면서 그를 죽일 계략을 꾸미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마침내 기회가 오게 되었다.

만 이년”이 지냈을 때, 양털 깎는 잔치가 열리게 되었는데, 압살롬은 그 기회를 이용하여 암논을 죽이기로 하였다.

압살롬은 양털 깎는 축제를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15마일 정도 떨어진 곳인 “바알하솔”에서 열기로 하였다.

압살롬은 “왕의 모든 아들들을 청하고” 다윗 왕에게 나아가 “왕은 신하들을 데리고 당신의 종과 함께 가사이다”고 하면서 아버지 왕을 초청하였다 (13: 23 -24).

압살롬이 왕을 초청한 것은 의심의 소지를 없애고 암논도 오게 하도록 왕의 허락을 받으려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윗 왕은 “네게 누를 끼칠까 하노라”고 하면서 압살롬의 초대를 사양하였다 (13: 25).

그러자, 압살롬은 황태자인 암논이라도 같이 가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는데, 그것은 다윗을 대신해서 보내달라는 뜻으로 한 것같이 보인다.

다윗이 “그가 너와 함께 갈 것이 무엇이냐”고 물은 것을 보면, 다윗은 압살롬과 암논의 관계를 불안하게 보고 있었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래도 압살롬이 간청하자, 다윗 왕은 암논이 다른 왕자들과 함께 가도록 허락하였다.

암논이 다말을 범한지도 이년이나 지났고, 그 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을 보았을 때, 다윗은 압살롬이 그 일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기로 한 것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더욱이 다른 왕자들도 함께 가게 되었으므로, 다윗은 더욱 안심할 수 있었다.

압살롬은 미리 그의 종들에게 암논이 술에 취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내가 너희에게 암논을 치라”고 명령하거든 그를 죽이라고 말해 두었다 (13: 28 -29).

압살롬의 종들이 명령대로 암논을 쳐 죽이자, 다른 왕자들을 각기 노새를 타고 도망하였다.

우리는 압살롬이 행한 일에서, 그가 얼마나 빈틈 없이 계획하고 그 계획을 수행했는지를 보게 된다.  

13장 31-32절 - 다윗에게 전해진 첫 보고는 바알하솔에서 그의 아들들이 모두 살해되었다는 것이었다 (13: 30).

그 소식을 들은 다윗 왕은 “곧 일어나서 자기의 옷을 찢고 땅에 드러” 누었다.

왕을 모시고 서 있던 신하들도 다 옷을 찢으며 애통해 하였다.

그러자, 다윗의 사촌이자 암논의 친구로 소개되었던 (13: 3) “요나답”이 나서서 “내 주여 젊은 왕자들이 다 죽임을 당한 줄로 생각하지 마옵소서 오직 암논만 죽었으리이다”고 하면서 다윗을 위로하며 안심시켰다.

요나답은 암논에 대한 압살롬의 오랜 증오심과 강한 복수심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확신을 가지고 그 같은 주장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삶을 경험할 때, 우리는 로벗 처럼 무감각한 기계가 아니라, 감정을 가진 인간이다.

어떤 감정은 도움이 되고 건설적 일 수 있다.

그렇지만, 분노 심과 쓰디쓴 감정은 증오에 찬 복수심을 키우는 온상이 될 수 있다.

 

서로 헤어져 있게 된 아버지와 아들 (사무엘하 13장 37 -39절)

13: 37  압살롬은 도망하여 그술 왕 암미홀의 아들 달매에게로 갔고 다윗은 날마다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슬퍼하니라

13: 38  압살롬이 도망하여 그술로 가서 거기서 산지 삼 년이라

13: 39  다윗 왕의 마음이 압살롬을 향하여 간절하니 암논은 이미 죽었으므로 왕이 위로를 받았음이더라

 

13장 37절 – 암논을 살해한 압살롬은 도망하여 “그슬 왕”인 “달매”에게로 갔다.

“그슬”은 작은 도시 국가로, 예루살렘에서 북동쪽으로 80마일이나 떨어진 곳으로 이스라엘의 국경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그슬은 이스라엘과 좋은 관계를 누리고 있었으며, 두 나라 사이에는 전쟁에 대한 기록이 없다.

더욱이, 그슬의 왕은 달매였는데, 그는 압살롬의 어머니인 “마아가”의 아버지로압살롬에게는 외할아버지가 되었다 (삼하 3: 3).

그러므로, 살인이라는 중죄를 지은 압살롬에게 그슬은 안전한 도피처와 피난처가 될 수 있었다.

본문이 어떻게 ‘압살롬이 도망하였다’는 사실을 세 번씩이나 반복하여 언급하고 있는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13장 34, 37, 38 절).

그는 살인을 저질렀고, 유죄로 판결을 받으면, 사형을 당할 위험에 처해있었던 것이다 (민 35: 21).

실제로, 압살롬의 살인 죄는 과실치사가 아니라 계획적인 모살로, 도피성으로 피하여서도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중죄였다.  

반면에, 다윗은 “날마다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슬퍼”하였다.

그의 아들”이라는 말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어떤 성경학자들은 다윗이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정으로 압살롬으로 인하여 슬퍼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른 한편 어떤 성경학자들은 다윗이 슬퍼한 것은 암논 때문이었다고 믿고 있다.

 

죄가 인간 관계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13장 38 -39절 - 압살롬이 그슬로 도망가서 산지가 삼 년이나 지났다.  

그 기간 동안 압살롬은 죄에 대한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고, 다윗은 압살롬을 붙잡아 오거나 불러오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다윗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암논의 죽음을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였다.

반면에, 압살롬에 대한 악감정은 점점 줄어들면서 압살롬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간절해 졌다.

어쩌면, 다윗에게 압살롬이 도망간 일은 그가 사울 왕을 피하여 도망 다녔던 일을 상기시켰을 수 있다.

다윗은 또한, 젊었을 때, 사울 왕을 두려워하여 이방 땅으로 도망가 도피생활을 한 적도 있었다 (삼상 27: 1 -2; 21: 10 -15).

마침내 다윗은 압살롬이 집으로 돌아오도록 허락하였다.

그렇지만, 그가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압살롬을 이년 동안이나 만나주지 않았던 것을 보면(14: 28), 압살롬과 화해의 관계를 이룰 여건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다.

죄는 인간관계를 파괴시킬 뿐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 59: 2).

진정한 화해와 화목의 관계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죄로 인해 가족이 깨어지거나 관계가 멀어진 현대판 예들을 생각해 보자.

이혼이나 별거 중인 부부들, 부모와 떨어져 사는 자녀들, 형제끼리 말하기를 거부하는 관계들은 오늘의 성경이야기에 어떻게 들어 맞고 있는가?  

 

 

사무엘하 14장은 어떻게 다윗이 설득을 받아 압살롬이 도피처에서 돌아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다.

스루야의 아들로 군 사령관인 “요압”은 다윗이 도망가 있는 압살롬으로 인하여 슬픔에 잠겨있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지혜로운 여인” 하나를 데려다가 두 아들에 대한 꾸며낸 이야기를 다윗에게 고하게 하였다.

그것은 그 여인의 두 아들이 들에서 싸우다 형이 동생을 쳐 죽인 이야기이다.

집안 사람들은 동생을 죽인 죄를 갚기 위해 형을 죽여야 한다고 야단인데, 그것은 집안 사람들이 유일한 상속자인 살아있는 아들을 죽이지 못하게 도와 달라는 간청이었다.

다윗은 죄를 지은 아들을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자, 그 여인은 자신의 이야기가 다윗 왕과 압살롬의 관계를 비유한 꾸며낸 것임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14: 19 -20).

이 일에 요압이 관계되고 있는 것을 직감한 다윗 왕은 요압이 시킨 일이냐고 물었다.

그 여인은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다윗 왕은 요압에게, “내가 이 일을 허락하였으니 가서 청년 압살롬을 데려오라”고 하였다.

요압은 구슬로 가서 압살롬을 데리고 왔다.

그러나 다윗은 2년 동안이나 그를 직접 만나주지를 않았다.

마침내 두 사람은 서로 만나기는 했지만, 진정한 화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랫동안 떨어져 있으면서 생긴 관계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던 것이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죄는 비탄에 빠지게 하며, 약속한 것을 지키지도 않으며 이행하지도 않는다.

● 복수심은 더 큰 죄와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강력하고도 파괴적인 감정이다.

● 죄는 가족들과 사람들을 갈라놓으며 대립시킨다.